온라인 중금리대출 '위비뱅크' 출시 주도한 고정현 우리은행 스마트금융부장

"핀테크 부서 발령난 지 한 달 됐습니다. 매일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입니다"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익명(匿名) 앱 블라인드의 은행원 전용 게시판에는 스마트금융·핀테크 부서 담당 직원들이 고충을 털어놓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매뉴얼과 규정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데 익숙한 은행원들이 부서만 바뀌었다고 IT회사나 광고회사 직원처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정현 우리은행 스마트금융부장(사진)도 지난해 말까지는 전형적인 은행원이었다. 개인고객본부, 상품전략부 등에서 근무하며 전통적인 은행 상품을 만들고 점포 전략을 짜는 게 그의 주 업무였다. 그랬던 고 부장이 이젠 스마트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출시 예정인 스마트 금융서비스를 일일이 직접 써보고 직원들에게 피드백을 주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스마트폰을 다루는 손가락 놀림도 웬만한 20~30대보다 민첩하다.

"온라인 뱅킹을 주로 이용하는 고객의 상당수는 자신을 드러내길 싫어합니다. 창구 등에서 대면으로 상담받는 것 자체를 꺼려하고 전화만 받아도 바로 끊어버리기 일쑤죠. 일본처럼 1인 가구가 늘고 타인과의 접촉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 따른 현상으로 파악됩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은행 톡(문자 메신저) 상담 건수가 6만5000건에 달했어요. 비대면 고객의 이런 여러 특징을 파악해 모바일 뱅킹의 편리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스마트금융부로 자리를 옮긴 그는 반년 만에 '위비(WiBee)뱅크', '원터치 리모콘' 등 모바일 전용 서비스를 다른 은행들보다 한발 앞서 선보이며 은행권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이런 성과가 고 부장 한 사람의 힘으로 된 건 아니지만 고영배(개인영업전략부), 고영수(핀테크사업부) 부장 등과 함께 우리은행 내에서 '쓰리(3) 고 부장(고씨 성을 가진 3명의 부장이라는 의미)'으로 불릴 정도로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

◆ 적막만 흐르던 본점 6층의 변신…30%의 시간은 창의력에 쓰자

위비뱅크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앞두고 은행, IT업체 간 경쟁 열기가 뜨거워지는 가운데 우리은행이 국내 시중은행 중 가장 먼저 선보인 모바일 뱅크 앱이다. 토종 곤충인 청벌을 모티브로 전용 마스코트도 만들어 우리은행 브랜드와 별도의 브랜드를 구축 중이다.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20~40대 고객층을 따로 공략하기 위해서다. 서울보증보험(SGI)과의 독점 제휴를 통해 다른 시중은행들보다 빨리 서비스를 내놔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을 앞두고 우리은행이 선점 깃발을 꽂았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원뱅킹' 등 비슷한 서비스 출시를 준비했던 기업은행의 권선주 행장이 우리은행에 선수를 빼앗긴 실무진에게 진노했다는 후문이다.

위비뱅크가 지난 5월 출시한 '위비 모바일 대출'은 신용등급 1~5등급의 고객들이 모바일 기기로 연 7~8%의 중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은행 창구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최소한 30분 넘게 걸리지만 위비 모바일 대출은 빠르면 5분만에 모든 절차가 끝난다. 모바일 대출의 누적 대출액은 출시 한 달만에 100억원을 돌파했고, 최근에는 300억원을 넘었다.

위비뱅크팀이 새로 터를 잡은 본점 6층 사무실은 지난해 말까지 만해도 은행 감사실이었다. 수북이 쌓인 감사 자료와 파쇄 용지 속에 둘러 쌓여 인적도 드물고 적막했던 '서슬퍼런' 방이었지만 지금은 활기가 넘친다. 고 부장 자리 옆켠엔 'Play hard, Work hard(놀땐 놀고 일할땐 열심히 일하자)'는 문구가 붙었고, 옆 부서 고영수 핀테크 부장실 바로 앞엔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북돋을 삼행시도 붙여놨다.

"직원들에게 30%의 시간은 창의력을 높이는 데 할애하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몇 년전까지 만해도 은행 영업점은 1선, 2선, 3선으로 나뉘어 과장급 직원도 뒤로 빠져있었죠. 지금은 부지점장급도 전부 1선에서 영업 중입니다. 모두들 이런 변화에 괴로워했죠. 하지만 지점 방문 고객 수는 앞으로 더 줄어들 것입니다. 은행원이라면 영업점에서 한번쯤 오프라인 업무를 겪어 봐야하지만, 은행원들의 필수 핵심 역량이나 역할은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고 부장은 기존 업무 관행으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으기 쉽지 않아 '스컹크팀'도 만들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대리급 이하 직원들이 모이는 회의다. 이전에는 권위에 눌려 입 밖으로 꺼내길 주저했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내놓을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다. '스컹크팀'은 본래 U-2 정찰기 개발로 이름을 알린 미국 록히드사 내 극비 프로젝트팀에서 유래했다.

◆ 원터치 리모콘에서 모바일 대출까지…해외진출 발판

"오프라인 영업 현장에서 불가능했던 서비스부터 만들어보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스마트금융 부서가 지난 4월 처음 선보였던 서비스가 '원터치 리모콘' 앱(사진)이다.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받으면 이용자의 우리은행 계좌를 스마트폰으로 제어할 수 있다. 예를들어 인터넷뱅킹 앱에서 본인 계좌를 '오프(OFF) 상태'로 잠그면 정기적으로 쓰는 자동이체를 제외한 다른 계좌로 돈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은행들이 지금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비대면 고객만이 원하는 서비스가 있고, 또 온라인에서만 구현 가능한 서비스도 많습니다. 금리 조건에 차이가 있어도 고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배경이죠."

'중금리 소액대출'을 목표로 출시한 위비뱅크의 모바일 대출도 마찬가지였다. 영업점 근무 시절부터 중금리 신용 소액대출의 수요가 많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이를 오프라인에서는 집행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중금리 대출의 평균 대출액은 약 400만원인데, 100건을 성사시켜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 한건과 비슷한 공로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핵심성과지표(KPI)에 '남북통일'이라는 목표를 넣으면 진짜로 통일도 가능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은행 간 영업 경쟁이 치열한 현실에서 은행원들이 소액신용대출을 늘려야할 유인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틈새를 온라인 방식으로 메운 게 바로 위비뱅크다.

위비뱅크는 대출뿐 아니라 최근 송금·결제 기능을 추가했고, 게임 서비스에 이어 음악 서비스도 연내 제공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BNP파리바의 인터넷전문은행 자회사인 '헬로뱅크' 처럼 모든 은행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은행은 또 위비뱅크의 역량을 궤도에 올려 해외 진출의 밑거름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고 부장은 "현재 계열사 직원들을 포함해 420여명의 개발 인력을 갖추고 있다"며 "외주 보다는 내부 개발 역량을 끌어올려 장기적으로는 해외 진출에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모바일·인터넷 뱅킹의 최대 관건이 보안인 만큼 최근 관련 업무 인원을 두배로 늘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