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소기업에 취직한 30대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월세 보증금이 모자라 신용대출을 받으려고 은행 두 곳에 들렀다가 거절당했다. 신용등급이 5등급(신용등급은 1~10등급까지 있고 숫자가 작을수록 신용등급이 좋음)으로 낮고, 직장 경력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결국 저축은행 한 곳과 대부업체 두 곳에서 총 800만원을 빌렸다. 저축은행 대출금리는 연 18%, 대부업체는 30%가 넘었다. 대출 후 한 달쯤 지나 확인해보니 신용등급이 또 한 단계 낮아져 있었다. A씨는 "한 번 은행권에서 밀려 제2금융권을 이용했더니 신용등급을 회복할 방법이 없다. 다들 초저금리 초저금리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앞으로 돈이 필요하면 계속 높은 금리의 대출만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착잡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인 1.5%까지 낮아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은행권 금리도 2%대까지 뚝 떨어진 반면, 서민들이 주로 돈을 빌리는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금리는 오히려 올라가는 '빚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집 있고 신용등급 좋은 대출자들은 저금리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지만, 담보·신용·소득이 부실한 서민들이 부담하는 제2금융권 신용대출 금리는 오히려 올라가고 있다.
◇저축은행 신용대출 금리는 오히려 올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7월 가계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25.50%로, 1년 전(23.05%)보다 2.45%포인트 올랐다. 이 기간에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4차례 내려가면서 은행권 대출 금리가 빠르게 하락한 것과는 정반대다.
지난 7월 은행권의 신용대출 금리는 4.41%로, 1년 전보다 1.18%포인트 낮아졌다. 은행에서 1000만원을 빌리면 1년에 이자를 44만원만 내면 되지만, 저축은행에서 빌리면 255만원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저축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은행의 4배 정도의 이자를 냈는데, 이제는 평균 6배 이자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신용대출액이 늘어나는 속도도 저축은행이 은행보다 빨랐다. 경기가 풀리지 않는 상황이라 계속 빚을 낼 수밖에 없는 저소득·저신용자들이 결국 저축은행 신용대출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용대출이 주를 이루는 '기타 대출'이 올 상반기에 은행권에서 9530억원 늘어난 사이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는 6조9220억원이 불어났다. 은행의 7배가 넘는다. 금융계 관계자는 "지난해 8월 주택담보대출의 LTV·DTI(주택담보인정비율·총부채상환비율) 제한 완화 이후 은행 이용자 중 상당수가 금리가 낮은 주택담보대출로 갈아탄 반면, 집이 없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층은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2금융권 몰리는 서민들
금리가 내려가면 예금자는 손해고 대출자는 이득을 본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러나 저금리의 혜택을 누리는 이들은 신용·소득이 높은 사람들일 뿐, 담보·소득·신용이 부실한 이들은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으로 몰려가 점점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경기 악화로 타격을 입은 저신용자들이 은행권에서 밀려나 저축은행에 몰리면서 신용등급 7~8등급에게 주는 고금리 대출의 비중이 커졌고 지난해부터 늘어난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들이 빚을 떼일 위험을 감당하더라도 '저신용자에게 더 높은 금리를 받고 빌려주자'는 전략을 취하고 있어 평균 금리가 계속 올라가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6일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성 의원에게 제출한 '차주 특성별 가계대출 잔액'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올해 6월 사이 고소득층(연간 소득 6000만원 초과)의 은행 대출은 지난해 말보다 4조1000억원 늘어난 반면, 저소득자(3000만원 이하)의 은행 대출은 1000억원 감소했다. 2금융권은 반대다. 같은 기간 2금융권의 고소득자 대출은 1000억원 줄었고, 저소득자 대출이 1조원 증가했다.
대부업 계열에 인수된 저축은행이 늘어나고 이 은행들의 '대출 마케팅'이 과도하게 벌어지는 것도 2금융권 대출 금리가 계속 높아지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웰컴·친애·OK저축은행 등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들은 신한·KB저축은행 같은 금융지주 계열보다 저신용자에게 너그럽게 돈을 빌려주는 대신 훨씬 높은 금리를 받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신한·KB저축은행(평균 대출 금리 약 연 14%)의 지난 3개월 신용대출 중 신용등급 6등급 이하에 나간 금액은 30% 정도였다. 반면 웰컴저축은행의 '웰컴뱅크론'과 친애저축은행의 '원더풀론'은 83%, OK저축은행 'OK론'은 75%를 6등급 이하 저신용자가 빌려갔다. 이들 저축은행의 평균 대출 금리는 28~29%로 금융지주 계열보다 훨씬 높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2금융권 대출자 중엔 급전(急錢)이 필요한 이들이 많아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게도 신속하게, 많이 빌려주는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에 쏠리고 있다.
◇"저소득층 부채의 질(質) 개선해야"
이처럼 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는 저소득층 중에 연 20% 넘는 고금리 대출자와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다중 채무자가 계속 늘고 있어 이들이 부채의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크다. 앞으로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 부담이 더 높아져 또다시 돈을 빌리고, 그 결과 신용등급이 더 내려가 이자 부담이 더 커지다 결국 상환을 포기하는 '빚의 악순환'이 발생하면 파장이 제2금융권 전체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대경제연구원 조규림 연구위원은 "정부는 저소득층 일자리 대책, 소상공인에 대한 경영·금융컨설팅 등으로 저소득층의 빚 갚는 능력을 강화하고, 안심전환대출과 비슷하게 저소득층의 대출금 상환을 유도하는 금융 상품을 개발해 저소득층 부채의 질(質)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