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한 구립 어린이집 원장 A씨는 두 달 전 한 학부모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 두 돌이 지난 딸을 이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넉 달째 대기 중인 이 엄마는 "맞벌이 부부 자녀인 우리 아이는 대기 번호가 300번이 넘는데 아파트 옆 동에 사는 B씨는 전업 주부인데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입소시켰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따졌다. A 원장이 확인해보니, 아들을 입소시킨 B씨는 친척이 운영하는 개인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증빙서류를 제출해 전업주부가 아닌 '맞벌이 가정' 우선 입소 혜택을 받았다. 또 B씨는 미국 시민권자라서 '다문화 가정'에도 해당해 입소 우선순위에서 추가 점수를 받았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전국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 중인 어린이는 20만여명. 국공립 어린이집 수가 전국에 2489곳임을 감안하면 입소 경쟁률은 평균 80대 1에 달한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입소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보니 보건복지부는 올 5월 대기자 중 가장 높은 비율(31.3%)을 차지하는 맞벌이 부부 자녀에게 최우선권을 주는 지침을 마련했다. 대기자들에게 부여하는 '대기 점수'를 맞벌이 부부 자녀의 경우 100점에서 200점으로 높였다. 그동안은 맞벌이 가정뿐만 아니라 다자녀 가구, 다문화·저소득·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 가구에 1순위를 적용해 항목당 100점을 부여하고, 조손가정이나 입양아 등 2순위부터는 50점을 부여해 합산 점수에 따라 최종 순위를 배정해 왔다.

맞벌이 가정에 최고 배점이 주어지다 보니 학부모들이 남편이나 친척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근무하는 것처럼 꾸민 '가짜 재직증명서'를 제출하는 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웃이 허위 서류를 만들어 아이를 입소시켰다'는 대기 학부모들의 항의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특히 서울에서 가장 높은 대기율을 보이는 강남구는 국공립 어린이집 54개 가운데 대기자 1000명이 넘는 어린이집이 30개(55%)나 된다. 강남의 한 구립 어린이집 원장은 "중소 병원이나 기업 등 남편이나 친척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증명서를 떼오는 어머니들이 반년 전보다 두 배로 늘어 대기자들도 대부분이 맞벌이 가정"이라고 했다.

맞벌이 가정 출신 입소 대기자가 넘쳐나면서 미국·영국 등 외국 시민권을 가진 일부 학부모들이 허위로 맞벌이 가정인 것처럼 위장 재직증명서를 발급받아 손쉽게 아이들을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도 벌어진다. 다문화 가정에 맞벌이 가정 가산점까지 받으면 사실상 입소 최우선 순위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 중 한쪽이 선진국 국적을 가진 부유층 가정의 아이들이 다문화 가정 혜택을 받는 것은 소외 계층을 배려한다는 입소 우선권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는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지난 1월 "다문화 가정 우선순위 혜택을 받으려면 부모 중 어느 한쪽이라도 15년 이상 외국에 거주했다는 입국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지침을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내려 보냈다. 하지만 본지가 서울 지역 어린이집 원장 10명에게 물어보니 8명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또 맞벌이 가정의 경우 재직증명서와 고용보험 피보험자격내역서, 직장건강보험 자격취득확인서, 국민연금 가입자 가입증명서 중 1부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서초구의 한 어린이집은 "재직증명서만 있으면 맞벌이로 인정한다"고 말한 반면, 송파구의 한 어린이집은 "4대 보험 증명서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유아정책연구소 최윤경 연구위원은 "입소 자격에 대한 검증을 철저히 하고 허위 서류 제출이 적발되면 입소 취소뿐만 아니라 수년간 지원 자체를 못하게 하는 등 강력히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