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돼도 부모와 함께 살거나 용돈을 타 쓰는 '캥거루족'이 늘었다. 어미 배에 달린 주머니에 쏙 들어가 사는 캥거루 같다 해서 생긴 말이다.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설문 결과, 대졸 청년 51.1%가 캥거루족이다. 그중 32.5%가 부모와 한집에 살지만 용돈은 안 받는 '주거 의존형 캥거루'다. 워낙 집값이 비싸서이기도 하고, 부모와의 친밀함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 때문인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엔 최근 아예 '캥거루하우스'라 이름 붙은 2층 집(대지 247㎡, 연면적 222㎡)이 들어섰다. 부모와 성인이 된 아들이 같이 사는 집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아들이 부모에게 '얹혀사는' 건 아니다. 작은 학원을 운영하는 아들이 집 짓는 비용의 3분의 1을 댔으니 말이다. 부모와 아들 모두 집주인이다.
"저랑 아내랑 둘이 살 거면 집 짓기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아들이 결혼해도 같이 살겠다더라고요. 그러면 같이 집을 짓자 했지요. 허허." 아버지 김성문(58)씨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둘째 아들 민기(32)씨가 입을 열었다. "결혼해서 반드시 모실지는 '아직' 모르겠어요(웃음). 그래도 부모님하고 사는 게 제겐 자연스러운 일상이긴 해요. 편해서 좋고요." 최근 이 집에서 만난 부자(父子)는 '장가가라'는 말 빼고 간섭은 없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가족은 지난해 말까지 군포시 산본의 50평형대 아파트에서 살았다. 첫째 아들이 가톨릭 신부라 둘째 아들하고 산다. 차남 민기씨는 "아무래도 형이 같이 살 수 없으니 부모님 부양에 책임을 갖게 되는 건 사실"이라 했다.
가족은 장기적으로 지금 미혼인 아들이 결혼하고도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짓기로 하고 2년 전 이곳에 땅을 샀다. 평생 살 집인 만큼 건축 관련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고 건축가인 유현준(46)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를 찾아갔다. "깔끔한 디자인에 아들하고 분리될 수 있는 공간을 원했어요." 거실과 주방 벽을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달라 요구할 정도로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 김영미(56)씨가 말했다.
건축가는 "한집이지만 독립적으로 분리된 두 집처럼 구성하려다 보니 캥거루가 자식을 품고 있듯 부모님의 집이 아들의 집을 품은 형태가 나왔다"고 했다. '집 속의 집' 개념으로 설계하고, 이름도 '캥거루하우스'라 달았다.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두 집 느낌이 난다. 외부 공간은 외장재를 달리해 분리했다. 부모님이 사는 공간은 벽돌로, 아들이 사는 공간은 나무로 외부를 마감해 밖에서 보면 벽돌집이 나무집을 껴안은 듯한 형태다. 내부도 연결은 되지만 1층과 2층 공간의 동선이 겹치지 않게 했다. 계단 중간 미닫이문이 있어 이 문을 닫으면 아예 두 집으로 분리된다. 출입구도 따로 있어 한집이지만 얼굴 안 마주치고도 살 수 있다. 대신 부엌을 중심으로 뚫린 작은 창을 통해 서로 인기척은 느낄 수 있다. "나중에 며느리가 들어올 때를 대비해 시선을 묘하게 비껴가게 처리한 거랍니다." 건축가가 농반진반 귀띔해 준다.
"다 큰 아들이 부모랑 사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에요. 부모한테도 마찬가지고요. 눈에 보이면 자꾸 간섭하고 신경 쓰게 되니까요. 공간이 이렇게 바뀌니 한집이지만 거리를 둘 수 있어 좋아요. 이젠 며느리만 좀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엄마 캥거루'의 바람에 '아들 캥거루' 얼굴이 붉어진다. "아직 없다니까요! 언제 생길지도 모르겠고…." 박공지붕 아래로 까르르 웃음이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