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이 되던 날 여름 휴가 여행을 떠났다. 행선지는 알래스카.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2년 전 겨울 어느 사진작가의 화보집에 매료돼 오로라를 보러 캐나다 옐로나이프를 갔을 때도 그랬고, 거기서 만난 누군가의 체험담을 듣고 작년 여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로 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충동이 이유라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번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냥 농반진반으로 "빙하가 더 녹기 전에 가서 보고 와야겠다"고 핑계를 대기는 했다. 아뿔사, 가서 보니 농담거리가 아니었다. 알래스카 남부 해안 발데즈항에서 배를 타고 컬럼비아 빙하로 다가갔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육로로 접근할 수 있는 최대 규모라는 마타누스카 빙하로 걸어 들어갈 때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빙하는 저만치 뒤로 물러나 있었다. 빙하가 몰려 있는 키나이 피요르드 국립공원의 엑시트 빙하 지대에서는 진입로를 따라 세워놓은 연도별 표지판을 보고서 구체적으로 얼마나 후진했는지를 알 수도 있었다.
오랜 시간에 따른 흔적을 말해주는 것은 빙하뿐만이 아니었다. 매번 여행지마다 가서 보고 깨닫는 것이지만, 그 춥고 험한 외진 곳에도 그곳만의 온축된 지혜가 있었다.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은 예외가 없었다.
가령 앵커리지 시내 박물관에 갔을 때였다. 세련된 유리 외장의 현대식 앵커리지 뮤지엄은 2만 점이 넘는 소장품을 자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비중있게 전시된 항목이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유품, 유적 컬렉션이었다.
17-18세기 유럽인이 상륙하기 훨씬 전에 그곳으로 먼저 이주해간 선조들이 수천 년 추운 극지에서 어떻게 살아남았고, 나름의 숙성된 생활 문화를 여하히 가꿔 나갔는지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돼 있었다.
하나하나가 숱한 역경을 헤쳐오며 쌓인 지혜의 보고(寶庫)였다. 고래와 바다사자, 해달의 가죽과 내장으로 만든 갖가지 정교한 방수-방한-방풍 의복류는 요즘 유행하는 아웃도어 상품에 견줘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다. 최소한 기능에 관한 한 그래 보였다. 개개인의 몸에 꼭 맞게 제작돼 차디찬 바다와 호수를 누비며 능숙하게 고래사냥과 고기잡이를 할 수 있게 했다는 카누는 당대 지식과 손기술의 수준을 과시했다.
그밖에 다양한 동식물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문양의 수제 직물과 장신구들은 오래 전 원주민들 특유의 미적 감각과 날렵한 재주를 자랑하고 있었다. 앵커리지 박물관은 자신의 존재 이유가 "이 지역의 역사와 선사(先史, prehistory)를 되살리는 것"이라고 표방한 것에 값하는 전시물들을 살뜰하게 모아 진열해 놓고 있었다.
앵커리지에서 북동쪽으로 90킬로미터쯤 떨어진 팔머에서는 뜻밖의 슈퍼 농작물들을 접하기도 했다. 이곳이 북위 60도 내외의 극한 지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크기들이었다. 다섯 살짜리 아이만 한 양배추를 비롯한 갖가지 초우량 농작물들의 우람함에 관광객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대공황 때인 1936년 루스벨트 정부가 뉴딜 정책을 펴면서 농부들을 이주시켜 개간 사업을 벌인 결과라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연중 3분의 2가 눈 오는 겨울인 동토에 채소 농사라니. 말 그대로 발상의 전환이었다.
여름은 짧아도 일조량이 많은 데다, 차가운 토양에는 오히려 병충해가 적고, 빙하가 끌고 온 퇴적층이 비옥한 덕분에 작물은 크고 실했다. 양배추 하나의 최고 무게가 무려 57킬로그램에 달했다. 지금도 매년 이때쯤 농작물 경연대회(유년부도 포함해서!)가 열리고 전국에서 11만명이 모여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알래스카 일대 하늘 위를 작은 경비행기들이 잠자리처럼 누비고 다니는 광경도 그곳만의 진풍경이었다. 이 역시 적응의 산물이었다. 지형 특성상 도로가 적은 대신 3000여 개에 이르는 강과 300만 곳이나 되는 호수를 활주로 삼아 수상 경비행기를 자가용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끝으로, 알래스카 어디를 가나 자랑스레 거명되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엘머 라스무선(Elmer Rasmuson, 1909~2000). 스웨덴 선교 이민자 집안 출신으로 알래스카 최대 은행가였던 그는 앵커리지 시장을 지낸 정치가였으면서, 이 지역 교육과 예술, 문화의 최대 후원자였다.
그는 90세 생일을 맞은 자리에서 자신의 남은 모든 재산을 자선과 공익 사업을 위해 내놓겠다고 선언한 후 이듬해 눈을 감았다. 라스무선 재단은 지금도 알래스카 최대 민영 기부단체로 다양한 비영리 사업에 매년 수백만달러를 지원한다. 앞서 말한 앵커리지 뮤지엄이 자리잡은 곳도 '라스무선 센터'였다.
미국의 역사는 건국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250년이 채 안된다. 그런 신생국이 알래스카를 러시아제국으로부터 사들인 것은 148년 전이었다. 그 땅이 미국의 49번째 주로 정식 편입된 것은 불과 56년 전이었다. 그래도 이들은 지난 역사와 문화, 그것도 혈통과 연원이 다른 선조의 그것들까지 찾아내 되살리고 보존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자신의 내력뿐만 아니라 시계(時界)까지 확장해가고 있는 듯 보였다. 자신들이 터 잡은 곳이 우연한 신생의 황무지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누군가가 살아 숨쉬고 삶을 이어왔던 곳이라는 사실을 당대는 물론 후대에 끝없이 상기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곳곳에서 만난 크고 작은 박물관의 전시물들도 그저 이방에서 찾아온 관광객에게 내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거기에 현재에도 유익한 지혜가 깃들어 있고, 자신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무언가가 있다고 그곳 사람들은 믿는 듯했다.
뉴턴은 1767년 편지에서 "내가 더 멀리 내다봤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 비유 역시 최소한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진보는 옛것에 대한 새것의 대체가 아니라 끝없는 누적의 결과라는 사실. 그 오래된 진실을 '거대한 땅' 알래스카는 소리 없이 일깨워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