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작년 하반기 한국 롯데의 주요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는 호텔롯데 상장(上場)을 검토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상장을 통해 수조원의 자금을 조달해 투자 재원으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증권가에서는 호텔롯데가 상장하면 회사 전체의 가치(시가총액)가 7조~1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호텔롯데처럼 호텔과 면세점을 같이 운영하는 상장 기업 호텔신라의 시가총액이 5조4000억원이다. 호텔롯데는 작년 호텔신라보다 영업이익이 40% 정도 많았고, 보유 부동산도 호텔신라의 16배에 이른다. 호텔롯데가 롯데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 점까지 감안하면 회사의 가치는 훨씬 커진다. 그러나 호텔롯데 상장에는 다른 목적도 있었다.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는 지분 99.3%를 일본 계열사들이 갖고 있다. 상장을 통해 일본 롯데의 지배력을 희석시키고 한국 롯데그룹의 독립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도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주 前부회장 출국 -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7일 오후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국으로 온 지 9일 만이다. 신 전 부회장은 출국에 앞서 가진 방송 인터뷰에서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과 관련, "일본에서 법적 대응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상장이 이뤄졌으면 롯데 경영권 분쟁은 지금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다. 지분과 경영 상황이 상세하게 공개돼 투명성도 더 높아졌을 것이다.

"지배구조 개선 출발점은 정보 공개"

이번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롯데그룹은 후진적이고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그대로 노출됐다.

한·일 롯데 지배구조의 큰 틀은 '일본 광윤사(光潤社)→일본 롯데홀딩스→한국 호텔롯데→한국 롯데 계열사'로 이어진다. 신 총괄회장의 개인 회사로 종업원 3명에 자본금이 2억원도 안 되는 광윤사가 최정점에 있다.

광윤사와 일본 롯데홀딩스는 한·일 양국에 걸쳐 117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주주가 누구인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두 회사 모두 비상장사여서 지분 공개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 롯데 계열사 37곳도 구체적으로 어떤 회사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계열사 중엔 'L제○투자회사' 등의 이름으로 한국 롯데 계열사 지분을 소유한 곳이 적잖다.

한국 롯데는 그나마 계열사들이 공개되고 있지만, 80개 계열사가 416개 순환 출자로 실타래처럼 묶여 있다. 롯데그룹은 공정거래위가 규제하고 있는 대기업 순환 출자 고리의 91%를 차지하고 있다.

경희대 권영준 교수는 "롯데가 정부가 요구한 자료(해외 계열사 소유 실태)를 충실히 제출하는 것이 지배 구조 개선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는 "롯데가 갖고 있는 해외 법인의 지분 구조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호텔롯데 등 주요 계열사 상장 생각해봐야"

호텔롯데 상장도 재시도할 만하다. 경영이 투명해질 뿐 아니라 상장을 통해 확보한 현금을 순환 출자 고리 해소에 사용할 여력도 생길 수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주요 상장사를 여럿 상장해서 시장의 압력이 작동할 근본적인 통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일 롯데 117개 계열사 가운데 상장된 회사는 한국 롯데 계열사 8개밖에 없다.

지주사 전환으로 지배 구조를 단순화하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권영준 교수는 "지주회사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416개에 달하는 순환 출자 고리를 끊을 수 있다"며 "한꺼번에 하기 힘들다면 사업 부문별로 몇 개 회사를 합친 중간 지주회사를 만드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을 합병한 후, 이 합병회사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누는 방안을 제시하는 전문가도 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롯데 문제는 창업자 2세가 경영권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며 "독일 BMW처럼 오너 가족이 지배는 하지만 경영을 안 하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작은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모든 의사 결정을 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 지배 구조를 선진화하는 것도 좋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중요한 것은 기업이 경영 안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라며 "상호 출자나 일본 계열사 지분 공개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