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를 포함한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7월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20~30%대의 판매 감소를 기록하면서 '차이나 쇼크'에 빠졌다. 중국 경기 부진에다 중국 토종 기업들의 급성장이 겹치면서 외국계 자동차 업체들의 실적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올 4월부터 시작된 이 같은 흐름은 계속 확대되는 추세이다.

전문가들은 심각한 공급 과잉에 들어선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글로벌 메이커 간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이 시작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6일 본지가 국내 주요 증권사와 업계의 추정치를 분석한 결과, 7월 중국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판매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2%와 33%씩 급감했다. 중국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는 폴크스바겐도 이치(一汽) 폴크스바겐이 29%, 상하이 폴크스바겐이 25% 판매가 감소했다. 2위 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자회사인 상하이 GM도 21% 줄었고, 미국 포드자동차 계열 창안 포드도 20% 감소했다.

외국계 업체 중 일본 차들만 선전했다. 이치 도요타가 13%, 둥펑 닛산이 6.8% 판매량이 늘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은 "중·일(中日) 관계가 개선된 데다, 엔저(円低)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일본 메이커들이 가격 인하와 신차 대량 투입을 통해 중국 시장 공략을 강화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글로벌 업체들이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고전하는 것은 중국 경기 둔화, 중국 토종 기업들의 급성장,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강세 등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올 3월 이후 전년 동기 대비 월(月)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다. 지난 6월 중국 승용차 산업 수요는 전년 대비 0.7% 성장하는 데 그쳤다.

불경기에 따른 저가(低價) 차량 선호 현상이 확산하면서 중국 토종 업체들의 판매량이 약진하고 있다. 중국 토종 업체들의 상반기 판매량은 1년 전보다 35% 성장했고, 시장 점유율도 작년 26%에서 올해 32%까지 확대됐다. 특히, 토종 업체들은 외국계의 60~70%에 불과한 저가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을 앞세워 급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외국계 메이커들이 강점을 가진 세단 승용차 시장은 지난 6월에만 15%가 줄어드는 등 감소세가 뚜렷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국 자동차 시장이 심각한 ‘공급과잉’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중국의 자동차 생산 능력은 연간 5000만대 수준에 이른다. 연간 수요는 2500만대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공장의 절반이 놀아야 한다는 얘기다.

공급과잉… 막 오른 무한 가격경쟁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이미 ‘제 살 깎기’ 수준의 가격 인하에 돌입해 있다. GM은 올 5월부터 11개 차종의 가격을 1만(190만원)~5만4000위안(1020만원) 인하했다. 현대차 투싼과 경쟁하는 상하이GM의 캡티바는 가격 인하폭이 5만3000위안(1000만원)에 이른다.

또 이치 도요타의 뉴 코롤라는 9000위안(170만원), 둥펑닛산의 티아나는 1만4000위안(260만원), 광저우 도요타의 하이랜더는 2만3000위안(430만원)씩 가격을 내렸다.

직접 차를 파는 딜러들에 대한 보조금도 확대하고 있다. 이치 폴크스바겐은 딜러들에게 10억위안(190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치 도요타는 12억4000만위안, 아우디는 12억위안, BMW는 20억위안을 딜러 보조금으로 책정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생존 경쟁이 이미 시작됐으며, 당분간 그 핵심은 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9월부터 신형 투싼과 K5로 반격 노려

중국에서 전체 판매 대수의 22%를 팔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초비상이다. 올 6월에 이어 7월에도 1년 전보다 30% 가까이 판매가 줄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두 달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만 이런 감소세가 계속되면 딜러망이 붕괴될 수도 있다”며 “당장 응급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국경절 연휴를 앞둔 올 9월부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9월에 출시되는 신형 투싼과 10월에 나오는 K5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신형 투싼은 신차 발표회 시기도 9월 말에서 9월 초로 앞당기기로 했다.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신형 투싼과 싼타페 가격도 각각 2만위안(380만원), 1만~3만위안(190만~570만원) 정도 인하할 것”이라며 “9월부터 총공세로 돌아서는 만큼 중국 판매가 반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낙관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적잖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중국 시장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총력전을 펼치는 만큼 가격 인하 같은 응급처방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최소 2~3년을 내다보고 연구개발(R&D) 강화 등 중장기적인 전략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