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이태원에서 ‘인생 학교 서울’을 여는 손미나앤컴퍼니의 손미나 대표

“우리의 가장 큰 모토는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에요. 지식을 얻는 게 목적이라면 구글로 검색하면 웬만한 건 다 나와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게 아니죠. 배운 걸 어떻게 삶에 적용해야 할까요? 내 행복에는 어떻게 적용하고, 세상의 빛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인생 학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에 여행 작가, 허핑턴포스트 편집인. 지금은 또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까지 경영한다. 여행을 중심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코칭 회사 손미나앤컴퍼니의 손미나(42) 대표다.

그런 그가 올 가을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인생 학교(The School of Life)'와 손잡고 오는 10월 서울에 분교를 열기로 했다.
알랭 드 보통의 '인생 학교' 10월 이태원에서 개교>

'인생 학교'는 알랭 드 보통이 2008년부터 인문학과 실생활의 접목을 목표로 시작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런던에서 시작해 지금은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호주 멜버른, 브라질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터키 이스탄불,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벨기에 앤트워프 등 8개 도시에 분교를 두고 있다. 서울은 아홉 번째 분교다.
"알랭 드 보통의 '인생 학교'는 이런 곳">

지난달 29일 오후, 인생 학교 교실이 될 서울 이태원 손미나앤컴퍼니 본사 1층 카페를 찾았다. 용산구청 뒤 작은 골목에 숨듯 자리 잡은 곳이다.

인생학교 서울의 수업 공간이 될 손미나앤컴퍼니 1층 카페 SSAC 내부 모습. 파란색 벽면과 곳곳에 배치된 노란색 의자, 파라솔이 눈에 띈다.

개교 두 달여를 앞뒀지만 이미 카페 공간은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춰가고 있었다. 손 대표로부터 그 동안의 과정과 앞으로 구상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까지.

-인생 학교는 어떻게 유치하게 됐나?

알랭 드 보통과 인연이 깊다. 그가 2008년 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해 2월에 그와 만났다. 국내 잡지사에서 기획한 사업에 참여하면서 인터뷰를 하게 됐다. 처음 만나서부터 이야기가 너무나 잘 통했다. 내가 그를 인터뷰하러 갔는데, 반대로 내게 질문을 너무 많이 던져서 “아니, 인터뷰는 내가 하러 온 건데 왜 당신이 날 인터뷰 하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당시 내가 아나운서 일을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아나운서는 왜 그만뒀느냐” “작가로 전업하니 행복한가” “세계를 돌아다니는 건 어떤가”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는 “삶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눴다. 서로 삶에 관한 의문에 대해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예정했던 인터뷰 시간을 세 배나 초과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가 이런 이야길 했다.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고, 도서관 하나를 통째로 읽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독서를 열심히 했다. 그런데 인생을 살면서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보니 인생이 더 어렵고, 돈이나 일이나, 여러가지로 세상을 살면서 벌어지는 일상의 문제에 대해 물어볼 곳도, 물어볼 사람도 없고, 가르쳐 줄 사람도 없다. 그런데 인생은 질문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런 걸 가르쳐주는 곳을 만들고 싶다.” 그가 당시 ‘학교’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 뒤로도 보통과는 계속해서 인연이 닿았다. 서너번 정도 직접 만났고, 트위터, 이메일로 연락을 종종 주고받았다. 그 때마다 서로 넌지시 “인생학교가 한국에도 생기면 참 좋을텐데” 하는 식의 이야기는 나눴다. 한국의 산업화가 워낙 빨리 이뤄지고 급하게 살아가다 보니, 교육부터 일상 생활에 이르기까지 본질적인 문제에 관한 질문은 전혀 던지지 못한 채 이 이뤄진다는 데에 공감한 거다. 보통 역시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작가여서 관심이 더 많았다. 결국 이 일을 내가 하게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손미나앤컴퍼니 1층의 카페 SSAC 외관 전경. 이곳을 리모델링해 인생학교 강의실로 쓸 예정이다.

-그때부터 먼저 제안을 받은 게 아닌가?

그냥 친구한테 하는 말처럼 “너도 한국에 하나 만들어” 하는 식으로 권유하긴 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난 내가 작가로 살아갈 거라고 여겼다. 직접 운영하는 데에 큰 관심은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누군가가 하면 참 좋겠네’ 하는 생각만 했다.

알랭 드 보통이란 사람이 참 독특하다. 철학자이지만, 책장 속의 철학을 전부 삶으로 끌어온다. 서양 철학자인데 우리 마음을 꿰뚫는 이야기를 하고, 남자인데 여자 마음을 이야기하는 소설을 쓴다. 그가 하는 인생 학교가 파리, 암스테르담, 리우데자네이루, 멜버른 등으로 우후죽순 뻗어가는 걸 보면서 ‘그의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생각이 바뀐 건 2012년쯤이다. 4~5년에 걸친 유럽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나운서로 10년, 해외에서 4~5년 해서 15년을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온 경험을 우리 사회와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걸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고 싶었다.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든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일은 없다. 작가가 글을 쓰든, 아나운서가 방송을 하든, 기자가 취재를 하든, 사회에도 헌신하지만 그 일을 통해 자신도 성장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경험을 통해 성장했고, 요리사로 치면 정말 다양하고 독특한 재료를 모아 한국으로 돌아온 거다. 이 재료를 갖고 어떻게 맛있고 재미있는 밥상을 차려서 우리 사회와 나눌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걸 고민하면서 만든 게 손미나앤컴퍼니였다. 여행을 통해 인생에 대해 탐구하고 삶에 대한 질문을 나누는 라이프코칭을 하는 회사다.

이 회사를 설립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새 소식을 듣게 됐다. 알랭 드 보통의 인생 학교가 그전까진 알음알음으로 분교를 열다가, 그 때부터 공식 공고를 내고 분교 협력사를 모집한다는 얘기였다. 런던에 다른 일로 취재갔던 기자 친구가 내게 그 소식을 전해주면서 “네가 내 친구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네가 하면 참 좋겠던데 지원 안 했어?”하고 물어봤다.

알아보니 다행히 접수 기간이 남았길래, 2013년 10월에 공식 제안서를 만들어서 접수했다. 그 뒤로 몇 번의 과정을 거쳐서 직접 보통과 만나기도 하고 서면으로 우리 철학과 비전을 이야기했고 구체적인 사업 구상도 함께 했다. 결국 보통으로부터 “여러 사람들이 런던까지 찾아와서 나를 만나고 가긴 했는데 너와 함께 하는 게 제일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게 언제쯤인가?

작년 여름쯤이다. 다만 세세한 계약 조건을 맞추거나 언제 어떻게 문을 열지, 내 개인 일정과는 어떤 식으로 맞출 수 있을지 논의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게 좋을지도 알아봐야 했다. 그리고 영국이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일 처리가 굉장히 느린 편이다. 이메일 몇 개 주고받는 데도 중간에 휴가 떠났다고 해서 답장을 몇 달 걸려 받기도 했다.(웃음) 결국 계약은 올해 초에 맺었다.

-국내에도 이런저런 인문학 강좌가 꽤 많다. 인생 학교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강연 수요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 ‘유사 인생 학교’도 많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기획하는 인생 학교와 비슷한 건 없더라.

인생 학교는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 가장 큰 모토다. 우리는 학교에서 마치 가분수처럼 지식만 키워서 머리만 자라는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이 시대에 지식은 웬만하면 구글 검색으로 다 얻을 수 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배운 걸 어떻게 삶에 적용하고, 내 행복에는 어떻게 적용하며, 그 배움을 통해 어떻게 내가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는 거다. 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기 위한 것이 바로 감성지능이다.

철학자 사르트르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했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 너무 더우니까, 시원하게 마실 게 필요해서 아이스 커피를 마신다. 혹은 글을 써야 하는데 글 쓸 종이를 받칠 도구가 필요해서 책상을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은 필요에 따라서 태어났다. 그런데 인간은? 그냥 태어난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라 부모님의 사랑의 결과물이다. 바로 실존이 본질에 앞서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왜 태어난 걸까? 내 본질은 무엇일까? 그 고민을 해가는 과정이 바로 인생이다.

우리 사회에서 하는 교육을 보면, 그리고 대부분의 인문학 강좌를 보면 더 많은 지식을 어떻게 머리에 넣을 것인지로 되돌아가더라. 인생 학교의 수업은 다르다. 단순히 인문학을 배우는 게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헤밍웨이 작품 속에서 이런 주제가 나오고, 셰익스피어 연극은 이런 사상을 다뤘다고 배운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이런 주제와 사상은 우리가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을 때 우리를 어떻게 치유해줄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는 수업이다. 일방적으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가르치거나 답을 해주지 않는다.

보통 살면서 우린 이런 질문을 할 기회가 없다. 질문을 함께 고민해주는 대신 “시간 없으니까 성공하려면, 제대로 살려면 이걸 배워” 하는 식으로 가르친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 명문대생도 마찬가지라고 하지 않나. 자신에 대한 세상의 기대를 떨쳐내지 못해 자살한다고.

우리가 '끝'을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들 참 똑똑하고 소중한 사람들인데, 우린 대체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건지 질문해야 한다. 자동차 좋은 거 사기 위해서? 아파트 몇 평짜리에 살기 위해서? 그런 목표는 있는데, 그럼 과연 그 목표가 나를 어떻게 행복하게 해주는가, 그걸 물어볼 때 제대로 대답할 수 있나? 그것부터 시작하는 거다.

인생 학교의 모토는 '일상을 위한 좋은 생각들(Good ideas for everday life)'이다. 창의성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창의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들을 하는데, 그게 쉽나? 어제까지 창의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살았는데 오늘부터 창의적으로 살자, 이렇게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나도 그랬다. 어릴 때 미국에서 1년 정도 학교 다닐 기회가 있었다. 내가 그곳 아이들보다 훨씬 수학도 잘하고 지식도 많고 똑똑했다. 친구들이 나더러 천재라고들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질문이 바뀌면 대답을 못했다. 가령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에 대해서? 나는 그거 다 읽고 공부 다 했기 때문에 사지선다형 문제를 주면 다 풀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작품이 내 삶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런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거다.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다. 남자친구랑 싸웠는데, 그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방법을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결국 대형 서점에 찾아가서 책 찾아봤다. 할 줄 아는 게 그런 것밖에 없으니까. (웃음) 나부터 이런 삶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나도 런던 인생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고, 그 수업을 들으며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란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등수도 없고, 정해진 규범도 없는 수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사회나 국가, 문화라는 틀에 따라 남들이 내게 편협하게 요구하는 기준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내게 제시하는 “성공이나 행복은 이런 거야”라는 편협한 기준을 벗어나서, 나 자신이 삶에 대해 질문하며 돌아보는 그런 장을 제공하고 싶었다.

-얼마나 올 걸로 기대하나?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말한 취지의 그런 수업을 절실하게 원하는 그룹에게 먼저 소비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더 발휘돼 오랫동안 ‘이런 건 누구한테 묻지?’라고 고민하던 사람들이 답을 찾으러 오는 그런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

개교 소식이 나간 후 반응은 정말 엄청났다. 내가 일하는 허핑턴포스트에서는 기사 조회 수를 알 수 있는데, 이 기사를 하루 만에 50만명이 봤다. 엄청난 관심이다. 뉴스레터 신청자도 하루 만에 3000~4000명이 등록했다. 그만큼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하고 있다.

-직접 들어 본 인생 학교 강의는 어떤 과목이었나?

출장 간 김에 들은 거라 듣고 싶은 걸 골라듣진 못했다. 그래도 런던에서는 ‘파트너를 고르는 현명한 방법’ 강의와 일에 관련된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파리에서는 창의성과 관련된 수업, 관계 맺기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 암스테르담에서도 수업을 들었는데 내가 네덜란드어를 모르니까 참관 수업 정도였다.(웃음) 분위기가 어떤지 보고, 그쪽 사람들과 이 사업이 어떤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보면서 느낀 건, 전 세계적으로 참 잔잔하면서도 강력한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인생학교

-글로벌 분교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른가?

콘텐츠를 공유하기 때문에 분명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나라마다 특성에 맞게 변형돼 있다. 프랑스는 원래 역사적으로 철학을 중시해온 나라이고 남의 일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영국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네덜란드 역시 굉장히 ‘쿨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대학 진학률이 15%밖에 안 될 정도로 자기 주관이 강하다. 그래서 사실 유능한 강사가 온다고 해도 잘 안 먹히고 콧방귀를 뀐다고 하더라.(웃음) 오히려 강사도 평범한 사람이 많고 내용만 군더더기 없이 전달하는 편이었다.

그런 차이들이 있긴 하지만 확실히 공통된 추세는 보고 왔다. 파리든 암스테르담이든 런던이든 어디든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에서 철학에 대한 붐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피곤한 거다. 물질주의, 패스트 라이프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이 사유와 질문에 목말라 있다. 철학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다. 글로벌 분교 사람들과 이메일로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실제로 만나서도 대화했는데, ‘철학’ 단어만 들어가면 전 세계에서 난리가 난다는 말도 하더라.

-수강 대상은?

아마 강의마다 다르긴 할 거다. 누구나 함께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있을 수 있고, 특정 연령대나 상황을 공유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도 있을 수 있다. 젊은 여성의 수요가 가장 많긴 한데, 그렇다고 너무 여성 위주로만 가면 아저씨들이 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웃음) 제2의 인생을 계획하는 사람들, 커리어 끊긴 주부, 스펙 쌓기만 강요받는 청소년, 대학생까지 다양하게 받을 거다. 공부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와도 좋고 30대 직장인, 아이 엄마, 나이와 학력과 모든 걸 다 떠나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장을 열고 싶다. 질문할 용기만 낼 수 있다면 누구든 올 수 있게 문을 열어두겠다.

특히 돈 없고 취직 준비로 힘들어하는 대학생들은 어떻게든 펀딩을 받거나 해서 참여 기회를 열어줄 방법을 찾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대학생에게 힘을 주고 싶다. 그런 식으로 수강 대상을 차츰차츰 넓혀나갈 계획이다. 직장에 묶여서 찾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찾아가는 강의도 생각하고 있다. 아직 온라인 강의를 열 계획은 구체적으로 세우지 않았고, 이야기만 하는 상태다.

정규 수업은 지금 인터뷰하는 이 자리에서 할 거다. 좁아 보일 수 있지만 파리보다는 훨씬 큰 거다. 그리고 특강은 여러 곳에서 할 예정이다. 예술 강의는 미술관, 사진작가 스튜디오에서 하는 식이다. 장소를 제공할 테니 함께 하자고 제안하시는 분이 굉장히 많다.

-수강료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나?

확정된 게 아니라 구체적인 금액을 밝히긴 어렵다. 대강 이야기 하자면 ‘엄청나게 싸네’ 하는 수준은 아니다. 영국은 유명 강사의 경우 수강료가 100파운드(약 18만원)를 넘기도 하고, 20~60파운드(약 3만~11만원) 사이였다. 그리고 프랑스나 암스테르담도 그보다 약간 낮았다. 아주 싼 가격은 아니다. 그렇지만 강의를 듣고 나면 “아 이 정도 값은 지불할 만하네”하는 정도라고들 한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정도로 책정될 것으로 본다.

-정규 강의 정원은?

특강은 최대한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하겠지만, 정규 강의는 25명 이상은 안 받을 생각이다. 그 대신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로 열 번짜리 강의 쿠폰을 발행한다거나, 멤버십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1년짜리 멤버십을 운영한다거나 해서 회원에게 더 많은 특혜를 주는 식이 될 것이다.

-인생 학교 학생이 어떤 걸 얻어가길 바라나?

강의를 들으면서 사람들이 "아, 정말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하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한 것처럼 직장 때려치우고 해외로 나가서 몇 년 돌아다닐 수는 없지 않나. 현실이 가로막으니까. 그래서 그 역할을 우리가 정말로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1년, 2년짜리 해외 연수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내 삶의 여러 문제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하고 질문하고, 그런 걸 공유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고. 정말 좋은 철학과 학문들을 배운 뒤 그 지식을 기반으로 해서, 이 지식을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해 나갈지 알게 되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어제까지 죽을 것 같았는데 여기 오니까 살 것 같다는 식으로 되진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뭔가 질문을 던지면 문제를 맞닥뜨릴 때 그걸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거다.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어차피 인생은 문제로 가득하고 내 뜻대로 되는 일은 몇 가지 없다. 인생 학교는 문제가 생길 때 그걸 해결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장소다. 생각 근육을 훈련시키고 감성지능을 기르는 곳이다.

극단적 예를 들면 초등학생이 친구 죽이고도 죄책감을 못 느꼈다는 뉴스도 있지 않나? 그 아이가 악마, 괴물로 태어난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 아이에게 감성적인 지식을 전혀 일깨워주지 못하고 키워주지 못한 게 문제인 거다. 지식만 싹 틔우게 물 준 셈이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못한 거다.

우리가 다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감성지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위기를 맞은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우리에게 맞도록 잘 만들어서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해 나가느냐, 그게 우리 몫이다.

-서울에서만 할 건가?

지방으로도 갈 거다. 지금은 서울에서 시작하지만 앞으로도 확장해 나갈 생각이다.

-지금 회사에서 하는 여행을 통한 라이프코칭과 인생 학교가 비슷한 건 아닌가?

이 회사를 세우면서 집중한 건 여행을 매개로 한 청소년 대상의 라이프스타일 코칭이었다. 큰 줄기로 보면 우연하게도 인생 학교와 같은 방향을 본 거다. 그 때 인생 학교 협력사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제대로 회사를 차린 시점과 인생 학교 협력사에 원서를 낸 시점이 거의 같다.

사실 회사 일을 하면서도, 늘 내가 중점적으로 해 나갈 일이 인생 학교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다. 그렇지만 확정된 게 아니라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가 없어서 나도 갑갑했다.(웃음)

인생 학교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사업 모델만 가져와서 되는 게 아니고, 어떤 수업이 정말 필요한지, 우리 사회에 어떤 수요가 있는지, 사람은 어떤 식으로 행복해지고자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 통한 라이프코칭도 하고, 미디어에서는 팟캐스트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면서 공감하는 작업을 했고, 작가라는 이름으로 내 여행이야기를 풀고 독자와 소통하고 사유했다. 우리 사회에 어떤 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는 작업이었고, 인생 학교를 준비하는 작업이었다.

-손미나앤컴퍼니를 세운 목적 중 하나가 인생 학교였던 셈이네?

그렇다. 작년에 회사가 이 자리에 이사온 것 역시 인생 학교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이사한 거다. 이미 알랭 드 보통과도 이야기가 된 부분이었으니까.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카페의 인테리어도 런던 인생 학교와 비슷하게 노란색과 파란색을 테마로 했다. 이 공간이 우리 수업 공간이다.

-과목은 확정된 건가?

어느 정도 큰 그림은 나왔다. 처음부터 영국처럼 30여 개의 수업을 다 할 건 아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걸 중심으로 하게 될 것이다. 가장 큰 비중을 둘 수업은 ‘일과 생활의 밸런스 찾기’ ‘어떻게 하면 일터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일을 찾는가’, 그리고 관계 맺기에 관한 수업들이다. 열 다섯 과목이 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주 많아도 스무 개 정도 될 거다.

-수강신청, 모집요강 같은 상세 계획은 언제 나오나?

9월에 나올 예정이다. 이제 한 달 밖에 안 남았다. 세부 내용은 영국에서 올 트레이닝 팀과 함께 의논한 뒤 결정한다. 영국에서 실제 강의하는 강사들과 트레이닝 담당자들이 일주일 일정으로 우리 학교를 찾아와서 운영 관련 내용을 알려줄 예정이다. 그때 여러 가지 시험 작업도 해보고 대화도 해보고 하면서 구체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사실 여러 사람들이 이 일에 참여하고 싶다면서 연락을 많이 해왔다. 콘텐츠 갖고 계신 분이나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는 분도 있고 해서. 함께 할 방향을 더 의논해보려고 한다. 지금 우리가 교실로 쓸 공간에 그림을 그려주셔도 좋다.

영국 인생 학교 역시 이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해서 그냥 돕겠다고 함께 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교실 그림도 어떤 아티스트가 와서 “그려 드리겠다”고 하면서 그렸다고 하고. 개인 포트폴리오에도 도움이 되는 일 아닐까?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재능기부 해주실 분이 있다면 대환영이다. 뜻 있는 분들의 참여가 많았으면 좋겠다.

-인생 학교가 문을 열면 직함이 하나 더 생길텐데, 어떻게 불리는 게 가장 좋은가?

이제 작가란 이름이 익숙해질 만한 시점인데 회사를 세우는 바람에 ‘대표님’이라고들 부른다. 허핑턴포스트 편집인을 맡으면서 편집인이라고들 부르기도 하고. 인생 학교는 뭐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교장’ 하면 너무 할아버지 느낌이 나지 않나. (웃음) 알랭 드 보통의 직함은 체어맨(chairman)인데, 나는 뭐라고 할지 아직 고민 중이다.

-인생 궤적이 다채롭다. 그런 과감한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들이 있나?

대학 전공으로 스페인어를 선택한 것도, 첫 직업으로 아나운서를 택한 것도 독특하긴 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인 게 뭐가 유행이고 뭐가 더 전망이 좋다는 이야길 듣고 지원하고 선택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은 굉장히 독특한 교육 철학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래서 다른 건 전혀 중요한 게 없으니 네가 하면서 무조건 정말 즐거운 게 무엇인가, 그것만 생각하라고 그렇게 강조하셨다. 그래서 스페인어 학과에 내가 갈 당시엔 사람들이 “거길 왜 가?” 하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그 당시 내 선택이 20~30년 뒤를 내다본 굉장히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도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은 게 없었다. 내가 스페인에서 유학하면서 나 자신을 가만히 관찰해봤다. 가만 보니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 앞에서 현장에 가서 뭘 보고 전하고 하는 것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아, 그러면 내가 아나운서를 해야겠네? 하고 결론 내린 거였다.

당시 휴학도 과감하게 했다. 한국에서 지금은 안 그렇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여학생이 휴학을 한다고 하면 다들 미쳤다고 하던 시대였다. 여학생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졸업해서 빨리 취직하고 빨리 시집 가야지, 하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내가 그렇게 한 번 1년씩, 적당한 시기에 쉼표를 찍는 게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했고, 남들이 그냥 사회적 분위기에 우르르 휩쓸려서 방황하면서 “정말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과연 맞는 건가?” 하고 의문을 가지면서 살 때, 다행히 나는 나를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게 굉장히 감사했다.

그런 경험이 아나운서 일을 하다가 휴직을 하고, 사표를 쓰고 할 때에도 도움이 됐다. 내 인생에서 쉼표를 찍는 시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물 반컵을 놓고, ‘반이나 남았네’ ‘반밖에 안 남았네’ 하는 관점 차이를 이야기하지 않나? 서른이라는 나이가 그렇다. 내가 휴직할 때 나이가 서른이었다. 사람들이 서른이나 돼서 안정을 추구하지 않고 무슨 도전이냐고들 했다. 그러나 난 그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앞뒤가 안 맞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살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나이 아닌가. 이제 걷기 시작하는 애한테 왜 자꾸 “너 넘어질 수 있으니까 더 이상 걷지 말라”고 하는 걸까. 그럼 난 영영 뛰는 법을 못 배울 텐데, 용기를 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 손미나의 저서들. 여행 서적으로 시작해 장편소설까지 냈다.

그 다음으로 내 경험에서 스스로 배운 게 지금을 보지 말고 20, 30년 뒤를 봐야 한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2007년 방송을 그만뒀다. 그 당시 사람들은 “여태껏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했다. 그 당시가 서른 다섯이었다. 그런데 내가 짧게 살아서 예순 다섯, 일흔 다섯까지 산다고 가정을 해봤다. 인생이 30년, 40년이 더 남았다. 그런데 그 전까지의 내 삶은 뭔가? 대학 가고 직업 찾느라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진정한 내 삶이란 건 10년 밖에 안 됐던 거다. ‘앞으로 지금까지 열심히 일한 시간의 몇 배를 더 살아갈 텐데 그 안에서 과연 내가 이 직장에 끝까지 사는 게 과연 맞나?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 눈을 떠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라. 방송도 TV 수상기로만 보는 사람이 굉장히 적어졌다. 이제 모바일로 모든 걸 다하는데 이게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그야말로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신문이든, 뉴스든 원하는 때에 한 번에 몰아볼 수 있는 시대가 왔는데 그 회사에 과연 남아서 일하는 게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을 계속 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는 게 아주 어렵진 않았다.

-그래도 적성에 맞는 걸 찾으면 ‘한 우물을 파라’고 하지 않나?

예전과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여러 우물을 파도 되고, 또 파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한 마리 토끼도 못 잡는다고들 걱정하시는데, 그게 아니라 늘 새로운 기회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면서 두 마리 토끼, 여러 마리 토끼 다 잡으면 된다.

그 당시에 했던 생각은 그런 거다. 인간은 하나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하나의 씨앗으로 태어나는데,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물과 빛을 잘 받아서 더 빨리 싹이 트고 더 큰 줄기로 자라나기도 한다. 설사 좋은 토양과 물이 없는 곳에 떨어져도 누구나 꽃을 품고 있다. 중요한 건, 식물의 씨앗은 꽃이 한 종류만 피어나지만, 인간이란 씨앗은 그 안에 어떤 꽃이 얼마나 들어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아까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이야기를 했다. 실존이 있는데 내 본질이 튤립인지 장미인지, 혹은 동백과 튤립과 장미를 한꺼번에 틔울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처음 피운 꽃이 수선화였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게 “넌 그럼 앞으로 평생 수선화 한 송이만 피워”라고 할 수 없다는 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과거에 했던 일을 버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그랬다. 싫어했던 일이라면 모를까, 좋아서 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인정도 받았다. 그래서 그 일을 발판 삼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나온 거다. ‘버리고’ 새롭게 시작한 게 아니다. 지금도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아예 버리지 말라고. 현재의 모습을 발판 삼아서 앞으로 점프하라고.

아나운서를 그만둘 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직장 그만두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일을 너무 못해서 쫓겨나는 것, 둘째는 일은 잘하는데 적성에 너무 안 맞아서 행복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 마지막은 일도 잘하고 적성에도 맞는데 더 나은 것을 위해 잠시 물러나는 경우가 있다. 네가 세 번째 경우로 만들면 된다”고 하셨다.

다만 나한테 특이한 점이라면, 늘 확신하고 있던 하나가 있다. 내가 어떤 상황에 놓이든 정말 ‘열심히’ 할 거란 사실이다. KBS라는 울타리, 아나운서라는 훌륭한 옷이 있을 때에만 내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늘 알았다. 언제 어떤 상황에 있든 내가 열심히 살 거란 걸 믿었다. 그래서 확신을 갖고 가고 싶은 길을 갔다.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런 사람은 같은 직장에 다녀도 허수아비처럼 그냥 월급 받고 다니는 거다. 그러나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 놓이든 그때만큼 열심히 살면 망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여러 일을 거쳐왔는데 어떤 모습이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하나?

참 어려운 질문인데.(웃음) 사실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따져보면 그 일이 그 일이기도 하다. 이름이 다를 뿐이다. 허핑턴포스트에서 하는 일도 저널리즘이라는 일을 계속 이어서 하는 것이다. 그 일과 작가 역시 같은 일 같다. 세상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며 글 쓰는 것이고, 변화를 주기 위해 글을 내보내는 것이다. 인생 학교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세상을 공부하고, 그걸 나누는 거다.

세상을 관찰하며 공부해 나가는 동시에 이걸 나 혼자만 아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누고, 그것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 그런데 그 수단이라는 게 하나는 미디어고, 하나는 교육이라는 정도가 다른 거다. 기본적으로는 내가 추구하는 것은 같다. 허핑턴포스트도 글로벌 미디어로 세상과 소통하는 다리이고, 인생 학교 역시 현대인이 가지는 공통의 관심사를 함께 나누는 다리다. 내가 할 역할도 그 ‘다리’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사회가 다양하지 않고 내가 여기에서 태어나면 그 동네에서 대강 결혼하고 아버지 직업 물려받고 그렇게 살았다. 그것도 물론 훌륭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하루 만에 비행기 타고 파리에 날아가서 저녁을 먹고,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는 시대다. 여기에서 과연 우리가 한 직장, 한 곳에 머물러서 평생 갈 수 있을까. 그러니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는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가야 하는가 하는 게 굉장히 두렵고도 중요한 문제인 거다.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데 남녀 관계도 그렇지만 이렇게 변화가 많은 시대에 직장 내에서 사람과의 관계 맺기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거고 모든 두려움과 문제의 근원은 같다. 나부터 이런 것들을 기회만 된다면 배우고 싶었던 건데,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인생 학교를 여는 거다.

사진 왼쪽부터 알랭 드 보통, 손미나 대표, 다니엘 튜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게 또 있나?

지금까진 커리어 차원에서 워낙 새로운 도전을 많이 했으니까,(웃음) 주어진 일을 열심히 잘 해서 인생 학교 잘 키워나가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외국어를 더 많이 알고 싶다. 지금 할 줄 아는 게 영어, 스페인어, 불어를 할 수 있는데 이태리어와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싶다. 외국어를 더 많이 배우고 싶다. 중국어도 배워야 하나 고민 중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게 너무나 재미있다. 언어를 알면 그 나라와 문화와 역사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까지 다 보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배우는 건 새로운 우주를 하나 갖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더 욕심이 난다. 다행히 남보다 조금 빨리 배우는 편이라서 더 많이 배우고 싶다.

그리고 더 나이들기 전에 악기 하나 익숙하게 해 놓으면 좋지 않을까, 그런 개인적인 소망은 있다. 또 다른 건 가방 하나 둘러메고 세계일주 한번 해보는 정도? 여행은 많이 했지만 그런 자유로운 세계일주는 아니었으니까. 그 외에 일로는 지금 상태를 잘 키워나가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다. 열정을 갖고 있는 여러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서 더 많은 생각을 나누고 싶다.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나?

정말 허투루 쓰는 시간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보통 여섯시 일곱시쯤 일어나서 운동하고서 일과를 시작한다. 요즘은 페루 여행기를 쓰고 있다. 9월말 출간 목표로 작업 중이다. 보통은 오전엔 운동한 뒤 출근해서, 낮에 일하고 저녁 6시쯤부터 글을 쓴다. 글 쓰고 집에 늦게 들어가는 편이다. 원래는 아침에 글을 썼는데 새벽에 나와서 글 쓰려니 직원들 출근하는 것도 신경쓰이고 해서, 차라리 저녁 시간을 택해서 글을 쓰고 있다.

◆ 손미나

고려대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부터 KBS 아나운서로 '도전 골든벨' '가족 오락관' 등을 진행했다. 2004년 휴직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언론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 경험담을 써낸 첫 책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통해 여행 작가로 데뷔했다. 2007년 사표를 내고 여행 작가로 살며 일본 탐험기 '태양의 여행자' 아르헨티나 탐험기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프랑스 거주기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를 썼다. 2011년엔 첫 장편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로 소설가로도 데뷔했다. 지금은 페루 여행기를 집필 중. 2013년 11월 여행을 통한 라이프스타일 코칭 회사 '손미나앤컴퍼니'를 설립해 대표로 일하고 있으며, 2014년 2월부터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인도 맡고 있다. 팟캐스트 '싹수다방'의 진행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