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 라이브러리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평소 같으면 콧방귀도 뀌지 않을 말이다. 이 말을 한 이는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 켐피스.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인용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속세에 지친 은자(隱者)에게나 어울릴 법한 말인데, 이게 유독 와닿는 계절이 왔다. 그 속세를 벗어나 휴가를 떠나는 요즘이다.

사람들로 바글대는 관광지에 지친 이라면 그저 나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 곳에서 편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도 한 번쯤 해봤을 것. 그런 당신을 위해 '책이 있는 구석방', 현대어로 번역하면 도서관이 있다. 그야말로 구석방 같은 아늑한 도심 속 작은 도서관이 있다. 현대카드가 돈을 벌면 딱 맞을 듯한 목 좋은 곳을 고르더니 정작 세운 것은 문화공간들이다.

◇뮤직 라이브러리

서울 이태원에 있는 뮤직 라이브러리는 음반의 숲이다. 록, 재즈, 힙합, 솔 등 각 음악 장르의 전문가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은 LP 1만여장이 시대별, 뮤지션별로 보관돼 있다. 이곳의 사서는 DJ들이다. 음반의 숲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시대에 따라 각 음악 장르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음반을 모은 '장르X디케이드', 각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의 주요 음반을 모아놓은 '아티스트&앨범', 전 세계적으로 구하기 어려운 희귀 음반을 갖춘 '레어 아이템(Rare item)' 등 테마별로 DJ들이 고른 음반 컬렉션을 듣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버릴 것이다.

그냥 듣는 것만으로 음악을 모두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곳에 비치된 음악잡지 '롤링스톤'을 열람해보는 것도 좋다. 롤링스톤 창간호부터 최신호까지 1161권이 모두 비치되어 있다. '20세기 대중음악 실록'을 직접 읽어볼 기회다.

디자인 라이브러리

이 말에 공감하는 이라면 서울 청담동의 트래블 라이브러리를 찾아가보자. 예술과 건축, 역사와 유산, 모험 등 여행과 관련된 13개 테마로 구성된 장서로 가득하다. 흔한 여행 가이드뿐만 아니라 소설부터 역사, 문화, 사진집 등 세계 각 지역을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책을 구비했다. 지구의 일기장과도 같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 권(1461권)과 여행지리잡지 'Imago Mundi' 등도 있다.

◇디자인 라이브러리

라이브러리 세 곳 중 가장 대중적이지 않은 테마의 도서관이다. 가장 한적한 곳이란 뜻이다. 디자인뿐 아니라, 사진과 미술 등 각종 시각예술 관련 전문도서가 비치돼 있는데, 예술 작품들이 수록된 책을 그저 뒤적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구시가지인 서울 종로의 가회동에 숨듯이 자리 잡은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공간 자체가 주는 아늑함이 장점이다. 전통 가옥처럼 중앙의 정원 즉, 중정(中庭)을 중심으로 마주한 ㄷ자형 건물의 안쪽 외벽은 전면 유리창으로 돼 있다. 내부 동선은 산책로를 떠올리게 한다. 1층에서 2층, 2층에서 3층으로 오르는 동선은 최단거리가 아니라, 라이브러리 곳곳에 있는 책을 찾아가는 산책길을 모티브로 설계됐다. 라이브러리 3층에 다락방 같은 공간이 있다. 옛날 궁의 왕세자를 위한 공간에서 그 이름을 빌려 온 기오헌(奇傲軒)이다. '큰 야망을 갖되, 겸손하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작고 밖이 잘 보이지 않는 이 공간은 그 안에서 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말하자면, 이곳이야말로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과 같은 곳이다.

'장미의 이름'의 주 무대인 비밀스러운 도서관은 에코가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했다. 보르헤스 역시 빽빽하게 들어찬 책의 숲과 같은 도서관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도서관에 이런 찬사를 바쳤다.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불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부동적이고,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부식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도서관에서 보내는 휴가 역시 그렇게 불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부동적이고, 고귀하면서도 부식하지 않고 비밀스럽게, 영원히 지속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을까.

라이브러리 수첩

뮤직 라이브러리

▲뮤직 라이브러리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46

화~토요일 12~21시, 일요일 11~18시. 매주 월요일 및 설·추석 연휴 휴관

현대카드 회원 및 동반 2인 입장 가능

놓치지 말 것!: 공연장과 녹음 스튜디오로 활용되는 지하 1층과 2층을 잇는 벽면에 있는 포르투갈 작가 ‘빌스(Vhils)’의 벽화. 그라피티 스타일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벽을 직접 깎아 만든 작품이라 보는 이를 압도하는 에너지가 있다.

▲트래블 라이브러리

서울 강남구 선릉로 152길 18

화~토요일 12~21시, 일요일 11~18시.

매주 월요일 및 설·추석 연휴 휴관

현대카드 회원 및 동반 2인 입장 가능

※놓치지 말 것!:벽 3면을 가득 채운 구글어스 뷰어. 그냥 원하는 장소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유명 영화나 소설에 나온 장소 등 테마 검색도 가능하다.

▲디자인 라이브러리

서울 종로구 북촌로 31-18

화~토요일 12~21시, 일요일 11~18시.

매주 월요일 및 설·추석 연휴 휴관

현대카드 회원 및 동반 2인 입장 가능

※놓치지 말 것!: 라이브러리 1층의 카페 옆에 작은 전시실이 있다. 주로 최근 주목받는 현대 미술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데, 난해하지만 독특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전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