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페이스북의 본사는 밸리의 북부 멘로파크 시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CEO인 마크 주커버그는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나 떨어진 샌프란시스코 남부 미션 디스트릭트(Mission District)에 살고 있다. 본사 근처에서 출퇴근하는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의 CEO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왜 그는 불편을 감수하고 다른 도시에 사는 것일까. 단편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아내의 직장이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다.

주커버그의 선택을 아내에 대한 배려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는 최근 몇 년 사이 그처럼 샌프란시스코에서 실리콘밸리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데 있다. 이들의 거주지는 미션 디스트릭트를 비롯해 소마(South of Market, SOMA), 도그패치(Dogpatch) 등 실리콘밸리와 고속도로로 연결된 샌프란시스코 남부 지역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이들을 위해 통근 버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에서 퇴근 시간이면 줄지어 서있는 통근 버스는 이제 실리콘밸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매일 버스를 타고 101번 고속도로를 왕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에도 이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거부할 수 없는 그 도시만의 문화적 매력 때문이다. 팔로알토, 멘로파크, 쿠퍼티노, 산호세 등 실리콘밸리의 주요 도시들은 전형적인 교외도시로서 도시 문화를 즐기고 싶은 젊은이에게는 다소 따분한 곳이다.

그에 반해, 실리콘밸리의 젊은 근로자들이 선택한 샌프란시스코 남부 미션 돌로레스 공원(Mission Delores Park) 주변은 대표적인 보헤미안 지역이다. 이 곳은 과거 이민자와 중산층이 모여 살던 지역으로, 명품 상점이나 고급 식당보다는 보헤미안 풍의 카페와 바가 즐비하다. 젊은이들은 여기에서 개성, 다양성, 사회적 책임 등 탈물질주의 가치를 추구하고, 이런 가치를 판매하는 친환경, 유기농, 인디, 빈티지, 채식 상점을 즐겨 찾는다.

마크 주커버그가 주거지로 선택한 샌프란시스코 남부 미션 디스트릭트의 돌로레스 공원. 주민들이 편한 복장으로 중국식 기공 체조를 즐기고 있다.

젊은 인재들이 선호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도 이에 맞춰 변화할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 기업이 통근 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고, 핀터레스트 등 일부 기업은 본사를 실리콘밸리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옮겼다. 우버, 트위터,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등은 아예 처음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했다. 이들의 성공에 힘입어 샌프란시스코 남부 지역은 새로운 벤처 중심지로 떠올랐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기업 분포. IT 산업의 중심이 실리콘밸리에서 샌프란시스코 남부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출처: 이코노미스트)

마크 주커버그가 실리콘밸리에서 돈을 벌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보헤미안 문화를 소비하는 모습은 불과 2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이색적인 현상이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도시 문화는 전통적으로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팔로알토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팔로알토는 압도적인 지역 문화의 선두주자로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였다. 이에 반해 버클리는 1960년대 히피 문화의 중심지였으나 1970년대에 이르러 마약과 범죄가 만연한 위험한 도시로 전락했고, 샌프란시스코 역시 범죄와 산업 이탈로 관광에 의존해야 했다.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 버클리가 주도한 보헤미안 문화가 북가주 지역의 중심 문화로 재등장한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팔로알토가 앞섰지만, 버클리는 보헤미안 스타일로 젊은 인재들을 끌어들이며 문화적 승리를 거두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역사는 경제 지리학자 리차드 플로리다가 주장한대로 도시문화가 창조 산업을 유치하는 중요한 조건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서도 도시 문화가 변화하고, 그에 의해 산업이 이동하며 새로운 산업이 창조될 것인가. 한국의 도시 문화는 그 동안 산업 발전에 영향을 끼칠 만큼 다양하지도, 역동적이지도 못했다. 1970년대 강남 개발 이후 획일적인 신도시 문화가 도시 문화를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도시 문화에 대한 선호가 다양해지고 있다. 경기도가 판교테크노밸리를 건설했지만, IT 인재들은 판교보다는 강남에 위치한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실리콘밸리 인재와 같이 그들은 도심에 살면서 홍대, 가로수길, 이태원 등에서 차별적 도시 문화를 즐기길 원한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기존의 강남 문화와 신도시 문화,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 받는 골목 문화, 이 세 문화가 소비 지역을 형성하고 수도권 산업의 미래를 이끌 것이다.

한국판 주커버그는 판교에서 글로벌 기업을 키우고 홍대 근처에 살면서 대안 문화를 즐길 것이다. 또 그 후배는 아예 홍대에서 창업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다양성과 개방성을 표방하고 문화가 산업을 창조하는 수도권의 이상적인 미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