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조선비즈와 한국무역협회가 공동 개최한 ‘유라시아 포럼 서울 2015’에선 북한이 주요 논의 주제 중 하나였다. 한국이 철로(鐵路)를 통해 광활한 유라시아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북한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반도 국가지만 북한으로 인해 대륙과 단절된 섬이나 마찬가지였다.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유라시아가 하나의 대륙으로 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남북관계라 생각한다”며 남북관계의 개선을 강조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한국이 ‘대륙의 섬’처럼 고립된 현실을 타개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례로 북한을 통해 중국횡단철도(TCR∙Trans China Railway)와 연결되면, 물류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다. 유럽 수출의 경우 현행 평택항∙TCR∙유럽 노선보다 운송기간이 3분의 1로 줄고, 비용은 30% 이상 절감된다.

포럼은 북한의 불투명을 걷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불확실성은 한국이 북한과의 사업을 주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역대 한국 정권들이 북한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국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에 포럼에선 유라시아 통합에 북한의 변화와 참여를 유도할 방법들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ICT로 북한 빗장 열자

한국의 발달된 ICT(정보통신기술)를 북한 개방의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색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고, 북한의 실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한 ICT 협력 현황은 어두운 상태다. 최근 국내 기관 해킹 사건 등으로 남북의 ICT 협력은 중단됐다. 대신 북한 ICT 인력은 중국으로 가 유럽∙일본 업체 등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희수 KT 상무는 "소프트웨어 남북 공동연구, 이산가족 화상 서비스 등은 중단됐고, 개성공단 입주민들조차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북한의 폐쇄성도 단기간 내에 극복하기 힘든 장애물로 평가됐다. 전자무역서비스 제공업체인 Ktnet 하성흔 부장은 “일전 북한 사람에게 인터넷을 소개했더니 ‘정부에서 내가 무엇을 봤는지 확인 가능하냐’고 묻더라”며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대답에 북한 사람 얼굴이 파랗게 질려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사례로 한국의 아프리카 진출이 언급됐다.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은 “KT가 아프리카 르완다에 와이파이(WiFi·무선랜) 인프라를 깔고 한국 기상청이 날씨 컨텐츠를 줘 인프라 활용도를 높였다”며 “통일 후를 내다보고 정치색 없는 분야부터 ICT 협력을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송종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은 정치 상황에 따른 세가지 ICT 협력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먼저, 남북관계가 현상 유지에 그칠 경우 ICT 협력도 큰 진전을 하지 못하게 된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직후 발동된 5∙24 대북 제재 조치가 해제될 경우는 상황이 크게 바뀔 걸로 전망됐다. 송 원장은 “ICT 인력 양성, 소프트웨어 공동 개발, 남북 공동 협력 센터 개설 등 ICT의 주도적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5∙24 조치 해제보다 더 큰 포괄적 협상이 체결되는 경우다. 송 원장은 ICT 관련 인프라 구축 등 남북 정보 격차 해소를 통한 남북 상생이 이뤄질 걸로 예상했다.
◆AIIB 등 외부 힘 지렛대로 활용해야

'남∙북∙러', '남∙북∙중' 3각 협력을 통해 북한의 참여를 유도하자는 방안이 제기됐다. 중국과 러시아의 독려로 북한의 유라시아 개발 참여를 가속화하자는 뜻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북한과 거래를 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과 나진항 개발을 함께 추진 중이다. 2013년엔 자체 예산을 투입해 하산역~나진항 간 54km 철로 개보수를 마쳤다. 하산역은 한반도를 벗어나면 만나는 대륙행 철도의 기착지다.

중국도 지난달 57개국 참여로 결성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통한 북한 투자에 관심을 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포럼에서도 AIIB를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최희남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AIIB 회원국의 3분의 2, 투표권의 4분의 3 찬성’을 뜻하는 ‘최대다수결(Super Majority)’을 만족하면 북한 인프라 개발 투자가 가능하다”며 “지원 받고자 하는 북한측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AIIB 차원의 북한 투자 조건이 공식적으로 언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AIIB 투자 유치 기회는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 회원국에 국한된다. 따라서 두 기구 회원국이 아닌 북한은 투자 유치 대상국이 아니었다. 후안강(胡鞍鋼) 칭화대(淸華大) 국정연구센터 주임은 “북한이 인프라 건설 지원을 요청하면 중국 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고 말했다.

외부의 힘을 북한 개방의 지렛대로 이용하기 위해선 경쟁보다 화합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졌다. 나경원 위원장은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이나 중국의 AIIB, 일대일로(一帶一路) 등 각국 유라시아 정책들이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서로 경쟁하는 게 아니다”며 “하나의 대륙 시너지를 만드는 동업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도 지속적으로 유라시아 개발 지원해야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권에서 북한 및 유라시아를 지원하는 시도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자금이 온몸으로 피처럼 흘러야 실물 지원 등 근육이 움직일 거라는 말이다.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루고 유라시아의 주요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라도 국내의 지원은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오는 12월 서울에서 열릴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Great Tumen Initiative)’에 포럼의 관심이 쏠렸다. 서울 회의에서 GTI는 국제기구로 승격될 전망이다. 이 기구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1992년 두만강 지역 개발을 위해 설립했으나 남∙북∙중∙러 등의 이해가 부딪히며 유명무실했었다.

지난해 한국수출입은행의 주도로 한∙중∙러∙몽골이 참여하는 ‘동북아수출입은행(ECA)협의체’가 발족되며 GTI 논의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북∙중∙러 접경 지역의 국제관광도시나 북한 나진∙선봉 개발 등이 거론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이 협의체의 역량이 축적되면 동북아개발은행 출범의 모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민흥식 수출입은행 부행장은 “장기적으로 협의체를 활성화하고 남북협력기금에서도 기존에 제한돼 있던 북한 지원 조건을 풀도록 정부와 협의 중이다”며 “이것이 실현되면 그 지역에서 사업하는 한국 기업들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금융을 넘어선 포괄적인 경제 교류 필요성도 제기됐다. 나경원 위원장은 “제2, 제3의 개성공단, 남북FTA(자유무역협정) 체결 등 좀 더 획기적인 경제교류의 대변혁을 통해 남북관계의 활성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