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건설부문 실적 악화와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경영권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미스터 해결사' 최치훈 사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성사시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기사회생(起死回生)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건설사업 경험이 없는 최 사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지만, 이번 합병 성사로 추후 삼성그룹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김신(오른쪽 첫번째)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과 최치훈(오른쪽에서 두번째) 건설부문 사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안이 통과된 뒤 밝은 표정으로 주주들과 악수하고 있다.

최 사장은 지난해 1월 삼성물산 대표이사직을 달았다. 건설업 경기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관련 경험이 없는 최 사장이 삼성물산 대표이사에 오르자 업계에서는 '파격 인사'라는 평가를 하며, 삼성물산의 구조 개편이 임박했다는 예상을 했다.

최 사장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아시아태평양 총괄을 지내며 '1등주의식' 구조조정을 경험해, 삼성물산에서도 1등 사업이 아니면 과감히 접는 GE식 경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물산이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단 한건도 수주하지 않고, 주택사업부를 빌딩사업부로 통합하는 등의 작업을 펼치자, 최 사장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올해 분양시장이 2006년 이후 8년 만에 호황을 맞았는데도, 주택 공급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삼성물산이 사업 전략을 잘못 짰다는 관측도 제기했다.

때마침 올 초 삼성물산이 건설부문에서 600~700명 정도를 추가 구조조정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면서 내부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부닥쳤다는 말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삼성물산 1분기 영업이익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60% 가까이 줄었다.

이후에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올해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을 발표하며 의식주휴(衣食住休)와 바이오사업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겠다고 밝혔지만, 합병비율이 잘못 산정됐다는 논쟁과 시너지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에 좀처럼 최 사장과 삼성물산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지지 않았다. 엘리엇이 6월 경영참가 목적으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매수하면서 합병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하지만 최 사장은 엘리엇의 공격에 맞서 잇달아 고비를 넘기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힘을 실었다. 삼성물산이 의결권을 얻기 위해 6742억원 규모(5.76%)의 자사주를 KCC에 넘기면서 승기를 가져간 것은 이재용 부회장의 주도 아래 이뤄졌지만, 최 사장과 KCC 정몽진 회장과의 교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사장과 정몽진 회장은 모두 조지워싱턴 대학교를 나왔다.

발로 뛰면서 해외투자자를 설득하기도 했다. 유럽과 동남아, 홍콩 등의 기관 투자자를 찾아 삼성물산 편에 서달라고 당부한 결과 상당수의 외국인 지분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성사된 것도 예상보다 외국인 주주들이 많이 합병 찬성에 표를 던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최 사장이 이번 합병을 성사시키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기대치를 충분히 충족시켰다고 말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 사장이 GE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과 인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외국인 주주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부회장의 새로운 삼성그룹 시대를 여는데 1등 공신 역할을 맡으면서 앞으로도 오른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