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승계와 직결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관련 사태가 일단락됐다.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는 폴 싱어의 엘리엇(Elliot)이 삼성물산 지분 7.12%를 확보한뒤, 두 회사합병비율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된 삼성과 엘리엇간 분쟁은 승계이슈에서 회사가치산정방법, 경영권보호책, 경영민주화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이슈를 쏟아냈다. 조선비즈 데스크들이 엘리엇의 합병 반대 1보부터 삼성물산의 주주총회에 이르기까지 속보와 심층분석을 실시간으로 다뤘다. 삼성-엘리엇간 분쟁관련 취재를 지휘했던 현장 데스크들의 이번 사태를 꿰뚫어 보는 독해법을 모았다.[편집자 주]

최흡 위비경영연구소 소장 겸 증권부장

합병 결의는 예견된 결과였다. 애초부터 한국 대기업집단의 지배력은 강했다. 합병은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이라 출석주수의 3분의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이렇게 높은 지분을 필요로 하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아마 삼성측은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측으로는 해피엔딩인 셈이나, 이번 사건은 모든 점이 부끄럽다. 우선 애초에 그룹 승계문제가 없었어도 합병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물산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아예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주주의 관계인'인데,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은 그의 승계를 위한 구조조정에 휘말리는 꼴이 됐다. 합병의 비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뒤는 공허하다.

합병비율 논쟁, 주가 움직임에서 본 한국 자본시장의 수준은 안타깝다. 기업의 자산은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인데 반해 주가는 제일모직이 3배였는데, 이것이 자본시장의 현실을 말해준다.

자본시장에 ‘대주주 불패의 법칙’이란 말이 생겼다. 삼성을 비롯해 여러 그룹의 승계를 앞두고, 구조조정은 반드시 대주주에 유리할 것이기에 그룹오너 지분이 높은 기업에 줄서야 한다는 얘기다. ‘삼성에버랜드’라는 이름이었던 제일모직이 상장할 때 다들 그렇게 생각했고, 언론들도 그렇게 썼다.

그래서 제일모직 주가는 정상보다 비싸게 움직였다. 합병과정의 떡고물을 챙기려는 투자자가 모인 것이다. 합병발표 당시 증권사들이 예측한 제일모직의 PER(주가 수익비율)은 올해 예상수익을 기준으로 100을 넘는다. (작년은 40이지만 특별이익이 반영된 것이라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순익을 100년동안 쌓아야 현재 주가(시가총액)가 된다는 의미다.

반면 삼성물산은 국내 기관투자가가 거의 투자하지 않는 비인기주였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손해를 볼까 두려워 아주 비중을 적게 가져간 것이다.(왜 삼성물산 주식을 사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면 '다 알면서 왜그러느냐'는 답변이 돌아온다.) 대주주에게 유리한 방식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가정한 후 투자방침을 정해서는 입장상 곤란한 ‘국민의 돈’ 국민연금만이 많은 지분을 들고 있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때문에 합병비율은 주가가 높은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삼성그룹측이 쉽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투자자가 없어 소액주주를 찾아다니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른바 정치인 테마주란 것이 ‘정권을 잡은 후 친한 사람에게 특혜를 줄 것’이란 정의롭지 못한 기대 위에 서 있다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가는 힘 있는 대주주가 자신에 유리하게 인수합병을 주무를 것이라는 삐뚤어진 가정 아래 서 있었다. 삼성의 의지와 관계없이 투자자들은 한술 더 떠 그것을 인정하고 한 편이 되고자 했다.

물론 엘리엇이 승리했다면 많은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또다른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달려들면서 증시는 난장판이 됐을 것이다. 또 삼성 입장에선 법규에 따라서 합병비율을 정했을 뿐인데, 이게 문제가 된다는 것은 억울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주주 불패의 법칙'이 주가에 반영되는 상황이 삼성에게도, 한국 자본시장 전체에도 부끄러운 사실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그만큼 주주문화, 기업 내부의 견제제도 등이 미숙하다는 얘기다.

또 그 과정에서 '우리 기업을 빼앗아가려는 나쁜 외국 헤지펀드'란 구도로 지나치게 일방적인 분위기가 형성됐고,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여러가지 오해가 섞인 주장들이 쏟아지게 된 것은 유감스럽다. 삼성물산 주식을 쥐고 있던 국민연금, 엘리엇에 투자한 KIC 등에 쏟아진 대한 전방위적인 압력이나 비난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며, 자본시장을 상처입히는 일종의 반칙이다.

애초에 엘리엇은 삼성그룹은 물론 삼성물산도 빼앗을 능력이 없었다. 설령 이번에 합병결의에 실패했었더라도 다음번에는 문제없이 통과됐을 것이다. 경영권 위협이란 기업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을 때를 연상하게 하는 말이다. ‘대주주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는’ 정도에 불과한 상황을 '경영권 위협'이라고 일컬으며 그조차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건 독단으로 이어지기 쉽다. 기업을 공개하겠다는 것은 그런 견제의 목소리를 인정할 것을 전제로 한다.

증시에서 상장을 하면서 자금조달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남의 돈을 가져다가 대주주가 이용한다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있는 무책임한 '단기 주주'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부채의식은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의 상처는 예상보다 클 수 있다. 국내에서 극단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일부 언론에서 엘리엇을 ‘(악한) 유대자본’으로 묘사했는데, 이것이 이스라엘 언론에 인용되고 다시 미국측에 소개됐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의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는 사설조차 썼다. 더 이상 인종차별 이슈로 부각되는 것을 막는다 하더라도, 이미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도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김주현 부동산유통부장

2014년 아르헨티나를 기술적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게 했던 헤지펀드 엘리엇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공개적으로 반대하자 많은 사람들은 2003년 SK 소버린 사태를 떠올렸을 것이다. 지배구조가 취약한 국내 재벌의 경영권을 외국의 투기적인 펀드나 자금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심지어 삼성과 그다지 사이가 안좋은 것으로 알려진 박영선 의원은 국내 기업에 대한 외국 투자에 대해 제동을 걸만한 법안을 추진할 뜻을 내비쳤다. 엘리엇의 공세에 맞서 한국 사회 상당수는 삼성을 중심으로 애국주의에 빠졌다. 삼성이 흔들리면 국가경제가 악화될 것이라는 환상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엘리엇은 삼성을 흔든 게 아니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을 문제 삼았다. 또 엘리엇이 합병을 반대한다고 해서 삼성의 경영권이 심각하게 흔들리거나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것도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조금 복잡해질 뿐이다.

사실 이번 사태의 대부분 책임은 삼성에 있다. 삼성이 합병에 찬성해 달라며 스스로 밝힌 것처럼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에 무심했기 때문이다. ‘대주주’의 이익을 주주의 이익과 동일시하며 오너 일가에 유리한 선택을 모두를 위한 선택으로 정당화했다.

“당분간 상장계획이 없다”던 삼성에버랜드나 삼성SDS를 지난해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진 직후 제대로 된 기업설명회도 없이 ‘기습’ 상장시키고 사업부를 이리저리 찢어 붙이고 합치는 일련의 과정에서 주주의 이익이나 기업의 미래가치는 사실 보기 힘들었다.

지금 합병안이 통과된 통합 삼성물산도 마찬가지다. 합병하면서 의식주를 아우르는 사업군을 가진다고 하지만 놀이공원과 패션, 건설업과 플랜트 등의 사업군이 모여 무슨 시너지를 어떻게 낼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바이오가 포함되면서 신성장동력으로 키운다 하지만 이분야 업력도 전문 역량도 짧은 삼성물산이 어떤 식으로 사업을 영위할 지 ‘주주’들이 알기 쉽지 않다.

2013년 7월31일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매수하면서 시작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이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성사로 일단락됐다. 삼성이야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하지만 19년 전(1996년) 48억원에 산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는 이날 합병으로 삼성물산 지분 16.5%로 전환된다. 이재용 부회장이 연 매출이 20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 그룹을 승계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다.

삼성이야 이 과정이 적법하다고 말하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수십억원을 투자해 수백조원대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과정이 법의 ‘허점’을 이용한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합병비율 등 ‘정당한’ 법절차에 따라 이뤄진 이번 합병에 대해 엘리엇이 반대하고 일부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반대한 진짜 이유라 생각한다.

이건희 회장은 20년 전 “기업은 이류, 관료는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건희 회장 뒤를 이은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에 소액주주에게 큰 빚을 졌다. 소액주주이야말로 국민 정서를 대변하면서 이 부회장을 밀어줬다. 이 부회장은 ‘국민이야 말로 이류 기업보다 나은, 일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종호 산업부 부장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안이 69.5%의 높은 찬성율로 가결됐다. 삼성이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표 대결에서 싱겁게 승리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파장은 컸다.

엘리엇의 공격 명분은 충분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1대 0.35로 정한 사실이 발표됐을 때 삼성물산 주주들은 지나치게 불리하다고 느낄 만 했다. 삼성물산은 매출액이 제일모직의 5배에 이르고, 삼성전자 지분을 4.1%나 보유한 큰 회사였다. 하지만 합병 비율만 놓고 보면 삼성물산의 가치가 제일모직의 3분의 1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두 회사의 업종이 달라 합병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었다.

합병 후 법인(삼성물산)에 대한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의 지분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 합병 전 제일모직 지분가치는 높게, 삼성물산 지분은 낮게 유지했다는 지적도 타당해 보였다.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는 합병 전 제일모직의 지분을 42.2% 보유했던 반면, 삼성물산 지분은 1.4%만 갖고 있었다. 어찌 보면 삼성이 스스로 엘리엇에게 공격할 빌미를 준 셈이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의식을 잃고 1년 넘게 입원해 있는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여 그룹의 승계구도를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조금만 더 높였더라면 엘리엇의 공격 명분은 약했을 것이고, 이렇게까지 큰 후유증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일성신약처럼 수십년 전부터 삼성물산에 꾸준히 투자해 지분을 2.2% 보유한 중소 주주에게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고 합병을 추진한 것은 문제가 있었다. 일성신약은 오직 주주를 홀대한 것에 대한 불만때문에 합병에 반대표를 던졌다. 삼성물산은 막판에 소액주주들을 찾아다니며 합병에 찬성하는 위임장을 받는 퍼포먼스로 여론전을 펼쳤다. 하지만 평소에 소액주주의 기본 권리를 보장했다면 헤지펀드의 공격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은 국내에서 반(反) 기업 정서보다 반 헤지펀드 또는 반 외국자본 정서가 더 크다는 점이다. 최근 5~6년 사이 장기 내수 침체와 고용감소로 재벌에 반대하는 반 기업 정서가 고조됐지만, 해외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을 공격해 짧은 기간에 수천억원의 차익을 실현하는 것을 용인하고 찬성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표 대결에서 드러났다.

이는 소버린의 영향이 컸다. 소버린은 2003년 SK그룹을 공격해 26개월 사이에 9300억원의 수익을 내고 떠났다. 당시 소버린이 SK를 공격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지배구조 개선이었다. 상당수 국민은 해외 투기자본이 기업을 공격하면서 내세우는 명분은 그럴 듯하지만, 실제 공격 이유는 쉽게 수익을 내는 것임을 알게 됐다. 그 결과 다른 때는 몰라도 국내 기업이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선 국내 기업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정서를 공유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치르면서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은 합병에 찬성한 주주는 물론 많은 국민의 도움과 지지를 받았다. 합병이 옳다는 것보다는 삼성이 한국기업이라는 정서가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을 삼성은 잘 알 것이다. 경영진들은 통합 삼성물산을 투명하게 경영하고, 사업을 키워 고용 확대와 사회공헌을 하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김기성 금융부장

이번 싸움의 핵심은 ‘삼성전자 지분’이었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1%를 서로 유리하게 이용하려는데서 싸움은 시작됐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을 공고히 하려 했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최대주주다. 반면 삼성물산 주식은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 비율로 두 회사를 합병하면 이 부회장은 합병 회사의 최대주주가 되는 동시에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 4.1%를 단숨에 영향력 아래 두게 된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의 핵심인 삼성전자를 컨트롤할 수 있는 지분율이 8%로 높아진다.

엘리엇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게 돼 있다’며 합병비율에 문제를 제기한 근간도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에 있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치 평가금액 보다 40%나 낮다고 주장해 왔는데, 순자산가치 평가금액의 상당부분이 삼성전자 지분 가치였다. 16일 종가 기준으로 평가금액만 7조7000억원 수준이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합치면 10조원이 넘는 가치다.

서로의 목적과 활용도가 달랐을 뿐이지 삼성그룹과 엘리엇은 모두 삼성물산 속에 숨어있는 진주인 삼성전자 지분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이뤄지는 행위를 보호하고 보장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삼성그룹과 엘리엇의 행위를 평가하는 잣대도 이 선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삼성그룹과 엘리엇의 공방전은 전형적인 창과 방패의 싸움이었다.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정당하게 확보하고 소송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주장을 펴왔다. 우리 입장에서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렇다고 해외 투기자본의 국내 기업 공격이라거나 유대인 자본까지 들먹인 것은 다분히 감정적이며 성숙하지 못한 처사였다. 엘리엇은 ‘약탈적 투자집단’ ‘먹튀’ 등의 비난을 받고 있지만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원래 물불 가리지 않고 고수익을 찾는 게 목표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본분이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어디까지나 법에 따라 결정됐고 이번 합병이 3세 승계 작업의 일환이 아니라 시너지 극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해왔다. 논리적으로 딱히 문제삼을 방법은 없지만 국민들의 귀에 이 말이 곧이곧대로 들릴 리는 없다. 그럼에도 소액주주까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해 준 것은 삼성이 한국의 대표기업이라는 국민 정서가 많이 작용했다는 것을 삼성은 알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삼성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의 자본주의가 한걸음 후퇴했다.

정재형 경제정책부장

올해 3월 기준으로 한국 10대 그룹의 총수 지분율은 0.9%, 자녀 등을 포함한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2.7%에 불과하다. 이렇게 지분이 얼마 없는데도 기업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계열사들끼리 지분을 서로 나눠 갖는 순환출자, 교차출자 등 가공자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지배구조가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 문제는 총수 일가가 기업의 이익보다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주요 그룹들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벌어진 배임이나 대기업 계열사들의 일감몰아주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기업 총수들이 여러 형태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총수 일가의 이익을 앞세우다 보니 해당 기업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이는 소액주주들의 이익 침해로 이어진다. 총수 일가의 지분이 적은 회사가 총수 일가의 지분이 많은 회사를 지원하는 일도 생기는데 이는 부당지원행위를 통해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번 삼성물산 사례를 보면, 총수 일가(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지분이 적은 회사는 삼성물산이고 총수 일가의 지분이 많은 회사는 제일모직이다. 삼성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시장참여자들은 삼성그룹이 총수 일가를 위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고 행동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삼성물산의 기업지배구조가 취약했고 그게 엘리엇이 공격할 만한 빌미를 제공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했는데, 그로 인해 많은 투자를 유치하고 시장이 투명화됐다. 반면 외국인 투자가들이 국내에서 벌어가는 돈에 대해서는 '국부유출' 논란이 일어났다. 외환은행의 론스타 인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부실해진 외환은행을 인수할 만한 곳이 없었고 대주주인 코메르츠은행도 추가 투자를 거부했었다. 모든 절차가 합법적이었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론스타의 투자로 외환은행은 위기를 넘겼다.

삼성그룹은 엘리엇과의 싸움에서 쉬운 길을 선택했다. 삼성 경영권 위협을 언급하면서 엘리엇을 탐욕적인 투기자본으로 매도했고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삼성과 우리 경제에 큰 일이 일어난 것처럼 호도했다. 엘리엇 편을 들거나 삼성에 반대하면 '나쁜 행동'인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했다. 주주들은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게 당연한 데 말이다. 대부분 언론도 이에 동조했다.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확대하자는 주장도 많이 나왔다.

한국이 '자본시장 완전 개방'에서 되돌아가겠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면 국부 유출 논란이나 기업 경영권 방어 수단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자본시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번 삼성물산의 사례는 론스타-외환은행 사건처럼 한국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또 한번 후퇴시킨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또 한 가지를 더 얘기하자면, 이번 사태를 초래한 대기업 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것 같다. 한국 국민들이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를 반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 또는 이부진 이서현 사장으로 이어지는 승계나 정몽구 회장에서 정의선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승계 등은 어느 정도 용인하는 분위기다. 그렇지 않다면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하는데, 전문경영인 체제와 오너 체제는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보기 어렵다.

경영권 승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막대한 상속세 또는 증여세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이 5대에 걸쳐 롱런할 수 있었던 것은 비영리재단을 통한 기업 지배 방식이다. 이 방식이 통했던 것은 대주주가 비영리재단으로 증여하는 것 등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매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발렌베리 가문은 재단을 통해 기업들을 지배하고 기업을 통한 이익은 총수 일가가 아니라 재단에 쌓이는 구조다. 재단은 그 이익을 자선사업 등으로 사회에 환원했다는 것이다.

오광진 부장(중국 전문기자)

이번 사태를 보면서 떠올린 건 수 년 전 베이징에서 열린 한 증권 포럼에서 자오펑치(曹鳳岐 ) 베이징대 금융증권연구소장이 던진 “상장사에게 천국,개인 투자자에게 지옥인 시장은 미래가 없다”는 경고성 발언이었다 상장사의 대주주와 경영진이 소액투자자의 이익을 희생해 자기이익을 챙기는 왜곡된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

한중간 자본시장을 비교한 연구의 주요 영역이 기업지배구조이고 대부분 논문은 한국은 중국보다는 한 수 위의 기업지배구조 시스템을 갖춰 벤치마킹 대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지배구조에도 빈 틈이 있음을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대가 누구든 공격의 빌미를 줬기 때문이다. 상장사의 기업지배구조는 보통 두 가지 목적을 갖는다고 한다. 주주가치를 늘리는 것이 첫째이고,상장사의 경영 효율을 높이는 게 두 번째다.

전자는 투자자의 적극성을 유도하고,후자는 우량 상장사를 늘리는 효과를 갖는다. 둘의 균형을 어떻게 조율할 지가 과제다. 하지만 정답을 찾기 쉽지 않다. 영미(英美)식 기업지배구조는 주주들의 가치를 중시하는 반면 유럽식 지배구조는 기업의 존재 이유를 근로자와 협력업체까지 포괄하는 이해관계자의 이익극대화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삼성과 같은 한국의 대기업과는 달리 지분이 대주주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서 생기는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권리 남용 문제가 기업지배구조의 핵심 문제로 지적받아왔다. “지배주주의 지분 비율이 45%를 넘는 가족형 기업은 상장을 막아야 한다”(류지펑 중국정법대 자본시장센터 주임)는 주장도 나온다.

국유 상장사의 경우 국유지분에 대해 뚜렷하게 책임을 지는 인격 주체가 없어 사실상 경영진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익을 챙기는 터널링효과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 과정에서 당정 고위 간부와 국유 상장사의 고위 경영진이 결탁한 커넥션이 형성됐다.일감 몰아주기 등이 대표적이다.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반부패운동에서 이같은 커넥션이 실체를 드러내기도 했다.

중국은 반부패운동 강화로 이 같은 커넥션을 뿌리 뽑으려 하지만 시장(주주)이 아닌 공산당이 상장 국유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움켜쥐는 시스템은 유지하고 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에서 국유기업은 상장사라도 회장과 최고경영자(CEO)를 주주총회가 아닌 공산당 조직부가 사실상 결정한다.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지방정부에서는 처음으로 2013년에 발표된 상하이시 국유기업 개혁안에서도 이 원칙은 그대로 유지됐다.

조직부는 공산당 인사를 책임지는 부서다. 정부 관료와 상장사 경영자간 회전문 인사가 적지 않다. ‘중국 특색’의 상장사 지배구조인 것이다. 엘리엇의 공격 대상으로 ‘적격’이다.

중국은 증시 개방의 속도를 차츰 높여가고 있다. 덩달아 엘리엇 같은 행동주의 펀드의 먹잇감으로 부상할 중국 기업들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 개방 확대와 ’중국 특색’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엘리엇이 과연 중국 공산당이 뒤에 버티고 있는 국유 상장사를 상대로 공격을 감행 할 수 있을 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