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스티븐 발머 최고경영자(CEO)가 "앞으로 1년 안에 CEO 자리에서 내려오겠다"고 밝혔다. 또 MS는 이사회 공석에 주주인 '밸류액트'가 추천하는 인물을 넣겠다고 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MS의 변화를 이끈 것이다. 외신들은 보수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기로 유명한 MS가 주주들의 압박에 못 이겨 백기를 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밸류액트는 적은 지분을 가지고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 중 하나다. 당시 밸류액트가 가지고 있던 지분은 단 0.8%. 20억달러의 돈으로 시가총액 2000억달러의 회사를 뒤흔든 것이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가 국내 대기업을 공격해올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 월가를 무대로 큰 돈을 벌어온 행동주의 펀드들이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렸다는 이유에서다. 행동주의 펀드가 들어올 때를 대비해서 경영권 방어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우호 세력에 자사주를 매각하는 것 이외에 마땅한 경영권 방어책을 갖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증권시장과 회사법·상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논의가 이상한 곳으로 튄 것 같다"고 말한다. 단 1%도 안되는 지분으로 기업을 흔들 수 있는 상황에서 차등의결권을 도입해 대주주 지분율을 형식적으로 늘려봤자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는 애초에 경영권을 뺏어오는 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일각에서는 재계가 경영권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행동주의 펀드에 의해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것은 '대주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정도의 것인데 '기업을 빼앗길 지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는 경영권에 관심이 없다"
행동주의 펀드는 비효율적인 기업 구조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올려 수익을 얻는다. 주로 경영자를 바꾸라거나, 어떤 사업 부분을 분사하라는 요구를 주로 한다.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라는 압박도 넣는다.
이런 주주제안은 사실 미국 증권시장의 자연스러운 문화 중 하나였다. '행동주의 펀드'라고 이름 붙여지기 훨씬 이전부터 기관투자자나 기관투자자들이 '주주 제안' 방식으로 여러 가지 경영 제안을 넣었고, 이를 '주주행동주의'라고 불렀다. 행동주의 펀드는 주주행동주의를 적극적으로 행하며 수익을 얻는 펀드다.
행동주의 펀드는 주로 5%에 못 미치는 지분을 매입한다. 투자한 회사의 주주로 이름을 올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행동주의 펀드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베이에서 페이팔 분사를 이끌어낸 칼 아이칸도 지분 2.5%만을 매입하고 경영에 참여했다.
기업에서 변화의 움직임만 보이면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경영권 욕심은 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한다. 밸류액트는 MS가 변화를 보이자 "지분을 5% 이상 사지 않고, 경영권 분쟁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행동주의 펀드가 원하는 것은 '경영권'이 아닌, 변화나 개선이기 때문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는 경영권 자체에 관심이 없는 투자자라는 점이 국내 논의에서 간과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행동주의 펀드와 바이아웃(buyout) 사모펀드는 다르다"며 "경영권을 노렸다면 애초 확보해야 하는 지분량 자체가 크게 차이가 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애초에 그만한 자금을 행동주의 펀드가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고, 기업을 인수한다 한들 경영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제3의 기업을 데리고 와서 적대적 M&A를 하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이 경우 펀드 자체도 위험을 지게 된다.
◆ 다른 주주들 '공감' 못 끌어내면 힘 못쓰는 행동주의 펀드
행동주의 펀드는 다른 주주들의 '가세'가 없다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다른 주주들이 행동주의 펀드가 내건 요구 조건에 찬성을 해야 기업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간 주주 환원 정책을 소홀히 했다거나 실적이 악화됐을 때 행동주의 펀드가 힘을 얻는다.
MS의 경우 윈도우 8의 매출이 부진했던 때였다. MS는 주가가 2010년부터 꾸준히 하락세를 탔다. 애플에게 IT기업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내주고 IBM에게도 시총을 추월당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의 김우찬 교수는 행동주의 펀드들을 '국부 유출의 원흉'으로 보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주주들이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에 동의한다면, 그 요구가 기업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김 교수는 "헤지펀드가 높은 수익률을 올린다고 해서 국부가 유출된다고 볼 수는 없다"며 "헤지펀드가 애초에 주식을 살 때 주식을 팔아 높은 수익률을 함께 향유하지 못하는 주주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주식을 팔지 않고 계속 보유하고 있었던 주주들은 헤지펀드와 똑 같은 수익률을 올려 큰 이득을 챙기게 된다. 대주주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