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원(24·여·서울 노원구)씨는 지난달 29일 정의당 당원이 됐다. 정당 가입 사실을 SNS에도 알렸다. 황씨는 “편의점 계산대에 서서 시험공부를 하던,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온종일 서빙을 하고 허겁지겁 1교시 수업을 들으러 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싣던, 밀린 교통비에 어쩔 줄 모르던, 꼬박꼬박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언제 이 빚을 다 갚나 절망(황씨 페이스북 포스팅)”했다며 청년을 대변할 정당을 지지하게 됐다고 밝혔다. 황씨는 “정당 활동까지 하는 20대가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경험상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내 삶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선비즈가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마크로밀엠브레인을 통해 전국 20대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13%만이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대부분(61.9%)이 ‘지지하는 정당은 없지만 총선과 대선 등 선거가 있으면 반드시 투표한다’고 밝혔다. 20대는 정치에 무관심하지만 투표에는 참여하는 소극적인 모습부터 정당에 가입한 적극적인 모습까지 다양했다.

◆ “정치는 재미없어”

설문조사 결과 20대 대다수가 정치에 관심 없으면서도 투표에는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사립대에 다니는 홍지명(26·가명)씨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기보다 질렸다”고 말했다. 홍씨는 정치 기사를 꼼꼼히 챙겨보지는 않지만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걸린 정치 기사는 읽는 편이다. 홍씨는 “정치인이 무슨 발언 했다는 식의 기사를 보면 국회의원이 국민이 아닌 자기 밥그릇 싸움에만 골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홍씨는 총선, 대선 등 투표에는 참여한다. 서울에 있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지만 주소는 고향인 광주로 돼 있어서 부재자 투표를 한다. 홍씨는 “광주 출신이라고 하면 2번을 열심히 찍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면서 “투표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찍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현우(25·서울 동작구)씨는 “투표도 안 하고 정치 이야기 하지 말라는 비판이 싫어서” 지지하는 정당은 없어도 투표에 꼭 참여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주 들어가는 김씨는 익명 게시판에서 ‘투표 안 하는 20대는 사회 문제 언급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수차례 접했다. 김씨는 “반값 등록금 문제가 커졌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았지만 동감했다”면서 “인터넷에서는 반값 등록금 필요하다고 하는 20대를 ‘자격 없다’고 말하는 걸 보고 투표는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한편 지지하는 정당도 없고 투표를 안 하는 20대도 12.9%로 나타났다. 사회복지사 준비 중인 문혜선(25·경기도 수원)씨는 “정치는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말했다. 포털 사이트에서 정치 관련 뉴스를 몇 번 클릭했지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됐다. 또 의견을 내봤자 큰 영향력이 없을 것 같아서 정치에 무관심하게 됐다. 사회복지사가 된다면 복지 정책에 관심을 두게 될 테지만 지금은 정치의 중요성이 와 닿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딱히 투표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 문씨는 “대통령 선거처럼 크게 이슈되는 선거가 아니면 솔직히 선거가 있는지도 잘 모르고 지나간다”고 말했다.

◆ “부모님과 정치 이야기는 금기”

인터뷰에 응한 20대는 공통으로 부모님과 정치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 정치적 성향이 다를 때는 껄끄러워서 입을 다물고, 성향이 같더라도 부모님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식이다.

김현우씨는 부모님 이야기를 듣는 쪽이다. 김씨 가족의 저녁 식사 시간은 한 시간 정도. 반주를 즐기는 부모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지만 정치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는다. 김씨의 아버지(54)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이야기를 즐긴다. ‘그때 경제 발전이 엄청났지’ ‘자식이 굶어 죽겠는데 민주주의가 어딨겠어’ 이런 식이다. 어머니(52)는 고개만 끄덕거리는 정도다.

김씨는 “아빠 이야기에 장단 맞춰 드릴뿐 깊게 토론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연방 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도 김씨와 아버지 의견을 달랐다. 김씨는 “동성끼리 사랑한다면 인정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지만 아버지는 동성애와 동성결혼이 “천인공노할 짓”이라고 못 박았다.

김씨는 부모님, 친구, 여자친구와 정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대화 주제가 되면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먼저 말을 꺼낸다. 김씨는 “정치는 설득이 안 되고 결론이 나지도 않는다”면서 “괜히 힘만 빠지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양호준(28·가명·서울 동작구)씨는 총학생회 활동 경력이 있다. 학생운동이라기보다 행정 업무에 가까웠다. 부모님한테는 알리지 않았다. 정당 가입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양씨는
녹색당이 처음 생겼을 때 입당했다가 군에 입대하면서 멀어졌다. 지난해 초부터는 노동당 당원으로 활동 중이다.

양씨는 부모님께 정치 활동 사실을 알리면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외무고시를 공부하다 접은 상태다. 양씨는 국회 보좌관이 돼 좋은 정책을 만들고 싶다. 양씨는 “물론 나름대로 착실히 살고 있지만 부모님과 기준이 다르다”고 말했다. 양씨의 부모님은 대기업 취업은 아니더라도 양씨가 공무원이 되길 바란다. 양씨는 부모님과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가 “껄끄럽다”고 말했다.

◆ 20대 정당원…“정책에 끌려서” “특별한 경험 때문에”

20대 설문조사 결과 지지하는 정당이 있고 선거에 반드시 투표하는 적극적인 정치 참여형은 17.1%로 나타났다. 20대 투표율이 가장 낮아 ‘20대는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말이 정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정당에 가입해 활동 중인 정인선(26)씨는 “녹색당에 가입하고 보니 전체 당원 중 20대가 많았다”며 “정당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20대는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말로 우리 의견을 무시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정씨가 처음부터 정치에 관심 있던 것은 아니다.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정치학’과 현실 ‘정치’는 달랐다. 다른 동기들처럼 외무고시를 준비하려고 했지만 외교에는 흥미가 안 생겼다. 그러다 유럽 정당과 노조를 탐방하고 온 시민단체 활동가의 강의를 듣고 ‘정치가 재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당에도 가입해보기로 했다. 녹색당이 정치적이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터라 부담 없이 가입했다. 한 달에 당비 5000원 정도를 낸 지 1년 반이 넘었다.

정씨는 “‘우리나라 정치 완전히 썩었네’라고 말해버리는 순간 달라질 기회조차 없어진다”면서 “비판할 건 비판하면서도 정치 자체의 기능을 부정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구은효(23·가명·경기도 안산)씨는 정당 정책에 지난 2013년 새누리당에 가입했다. 한 달에 한 번 당비 2000원을 낸다. 지난 2002년 제2차 연평해전과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을 뉴스로 접하면서 강경한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친할아버지가 참전 용사였던 이유도 있었다. 당내 청년이 중심인 미래세대위원회 활동에 참여했다.

행사 기획사를 운영하는 박진호(27·경기도 김포)씨는 새누리당 대학생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포에서 나고 자란 박씨는 친구들이나 지인이 하나둘 서울로 떠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박씨는 여러 정당에 김포 지역을 살릴 방법을 물었다. 새누리당 미래세대위원회가 적극적인 박씨의 모습을 눈여겨봤다. 박씨는 2012년 당원이 돼 대학생위원회에서 등록금, 대학생 주거 문제를 이야기하고 새누리당 청년국에 제안하고 있다.

황지원(24)씨는 어릴 적 경험으로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됐다. 황씨가 9살 때 황씨의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됐다. 아버지 병 치료에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황씨는 “생활이 어려운 편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집이 풍비박산 났다”고 말했다. 황씨 머릿속에는 궁금증이 넘쳤다. 왜 힘든 상황에 있는 우리 가족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까, 왜 큰 병에 걸리면 아파트 한 채가 날아가는 걸까 고민했다. 중학생이 돼선 급식비를 안 냈다. 담임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집이 어렵다, 급식비를 내기 어렵다고 말해야 했다.

20살이 되면 맘껏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곧장 주차장 안내, 호프집 서빙, 편의점 계산원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최저임금을 못 받기 일쑤였다. 새벽 3~5시 호프집 서빙을 하며 시급 5000원을 받았다. 당시 황씨는 최저 시급이 4000원인 줄 알았다. 야간에는 최저 시급이 1.5배를 받아야 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는 2~3개월 수습 기간만 거치면 최저임금을 준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1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최저임금을 못 받았다.

황씨는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정치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 많은 사람만 정치인, 국회의원이 돼 우리 생활을 하나도 모른다고 여겼다. 분노가 엄청났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분노만으로 해결되는 게 없다고 느꼈다. 내 목소리를 대변해줄 사람을 찾고 그런 정당에 가입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황씨는 지난달 29일 정의당에 가입했다.

황씨는 현재 서울시 청년혁신활동가로 중고등학생에게 정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황씨는 “중고등학생 대다수가 학교-학원-집만 전전하며 정치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차단됐는데 스무 살이 됐다고 정치에 활발히 참여하길 기대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