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베크) 타슈켄트 공항까지 간 뒤, 다시 항공기와 자동차를 타고 총 11시간을 가면  현대엔지니어링과  GS건설, 삼성엔지니어링이 짓는 ‘우스튜르트 가스·화학 플랜트(UGCC) 프로젝트’ 현장이 나온다. 이 곳은 우즈베크 현지에서도 오지(奧地) 중의 오지로 꼽히는 곳이다. 모래바람이 거세게 불어 불과 10분이면 온몸이 먼지로 뒤덮이고, 겨울에는 섭씨 영하 30도, 여름에는 40도를 넘나드는 척박한 땅이다. 하지만 현대엔지니어링 입장에서 이 곳은 ‘축복의 땅’이다. 이 공사를 통해 우즈베크에서 총 20억1000만달러 짜리 ‘칸딤 가스처리시설 프로젝트’를 추가 수주해 유라시아 수주의 마중물이 됐기 때문이다.

유라시아는 국내 건설업계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세우기 위한 초석으로 보는 곳이다. 철도, 도로, 플랜트 등 각종 인프라 구축이 덜 돼 있고, 풍부한 자원과 인구로 경제발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건설사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시장이다. 국내 건설시장에서 한계에 부닥친 건설사들은 유라시아를 중동을 능가하는 ‘수주 텃밭’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지 맞춤 전략과 국내 건설사의 시공능력이 더해진다면 유라시아에서 ‘건설 한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우즈베키스탄‘우스튜르트 가스·화학 공장’공급·저장·운용 설비 공사를 진행중이다. 2011년 수주한 이 공사는 2015년 8월 준공 예정이다.

◇'한류 2.0' 이미 시작됐다…유라시아 선점 위한 '각축전'

국내 건설사들의 유라시아 시장 진출이 본격화하고 있다. 아직 중동 만큼 활발한 진출이 이뤄진 건 아니지만 국내 건설사들은 잇따라 인프라·플랜트 공사를 수주하며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국내 건설사들이 유라시아시장을 장기적인 수주 텃밭으로 보면서 해외 건설사와의 치열한 '각축전'까지 벌이는 상황이다.

포스코건설이 2012년 11월 따낸 2억5000만달러 규모의 폴란드 생활폐기물 에너지화 발전 프로젝트 수주가 대표적이다. 이 프로젝트의 경우 입찰 경쟁에 포스코건설을 비롯한 4개 업체가 뛰어들었다. 포스코건설을 제외한 업체들은 대부분 폴란드 회사로 기술력이 뛰어난 유럽·일본 업체들과 손을 잡고 수주전에 참가했다. 입찰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2012년 5월 발표된 최종 경쟁 입찰에서 일본 히타치와 손을 잡은 모스토스탈이 결국 승리했다.

하지만 포스코건설은 이 공사를 끝내 포기할 수 없었다. 폴란드만의 독특한 절차인 ‘어필링 프러시저(appealing procedure)’를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어필링 프러시저는 낙찰자의 제안이나 기술에 문제가 있을 경우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반론이 적합한지 판단하는 조직은 중재위원회이며, 중재위원회에 의해 반론이 인정되면 낙찰자는 자격을 잃는다. 포스코건설은 이 절차를 통해 발주처를 설득했고, 결국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폴란드 수주가 동유럽과 독립국가연합(CIS) 시장에 진출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이 SK건설과 함께 2013년 7월에 수주한 터키‘보스포루스 제3교’건설 공사도 유럽 건설사의 독주 아래서 이뤄낸 쾌거였다. 유럽 건설사가 대형 프로젝트를 독점하던 터키에서 현대건설이 처음으로 이들을 제치고 인프라공사를 따낸 것이다. 보스포루스 제3교 건설 공사는 터키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횡단하는 교량을 짓는 것으로 터키 정부 최대의 국책사업이었다. 현대건설은 이 공사를 발판 삼아 앞으로 동·서양을 잇는 유라시아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삼성물산도 카자흐스탄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물산은 한국전력과 함께 2009년부터 카자흐스탄 최대 국책사업인 49억달러 규모의 발하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카자흐스탄 가용 발전용량의 9%를 차지하는 1320㎿ 규모의 석탄 화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공사다. 발전연료 변경 문제 등으로 사업이 지연됐지만 지난해 6월 발전소 건설 및 운영과 관련된 전력용량구매계약을 체결하면서 본궤도에 올랐다.

◇중동 뛰어넘을 유라시아

유라시아 시장이 국내 건설업계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그동안 한국의 '수주 텃밭'이었던 중동을 뛰어넘을 만한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풍부한 자원과 동·서양을 잇는 입지 덕분에 과거 실크로드와 같이 동·서양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일부 유럽 선진국의 성장이 주춤한 상황에서 철도와 도로 건설로 유라시아 육상길이 개척돼 유라시아를 왕래하는 수요가 늘어난다면, 그야말로 전 세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각 나라는 유라시아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현대판 실크로드라고 불리는 일대일로(一带一路) 프로젝트를 꺼내 든 중국이 대표적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최근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2020년까지 러시아 인프라 개선에 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런 배경 아래 중국 철도청(China Railway Group)은 모스크바~카잔 구간을 연결하는 770㎞ 길이의 고속철도 설계 계약을 수주했다. 유라시아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본격적인 발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동유럽의 경우 이미 유럽 건설사들이 활발히 진출한 상태다. 폴란드의 경우 최근 유럽연합(EU) 등의 자금 지원계획으로 인프라 공사 발주가 잇따라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국내 건설사의 활약은 미미한 상태다. 해외건설협회는 "EU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폴란드에 총 729억달러의 기금을 배정하겠다고 발표해 플랜트와 고부가가치 건축·토목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을 갖춘 국내 건설사의 진출이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건설사 기술력과 현지화로 유라시아 시장 선점해야

전문가들은 유라시아시장의 경우 동·서양 문화가 혼합된 만큼 나라마다 차별화된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령 동유럽이나 러시아의 경우 수주물량이 중동보다 많지 않고, 이미 유럽 건설사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국내 건설사만의 무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신삼섭 해외건설협회 아시아·유럽 담당 실장은 “폴란드에서 포스코건설이 시공한 폐기물 처리시설의 경우 주변 녹지와 조화를 이뤄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유럽의 경우 품질에 대한 기준이 깐깐하고, 시설 운영 과정에서 안전을 중시하며, 주변환경에 적합한지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환경 훼손이 적은 국내 건설 기술을 강조하고 비용이 비싸더라도 더 안전하고 효율이 높은 기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의 경우 한국이 건설 기술과 노하우를 이전해주고, 전문 건설 인력을 양성해주길 원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우즈베크에서 UGCC를 맡은 삼성엔지니어링, 현대엔지니어링, GS건설은 최대한 현지 인력의 손을 빌려 공사를 수행했고, 이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공적개발원조(ODA) 등의 재정 지원도 뒷받침되면 좋다. 김민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지 국가의 일자리 창출과 기업의 성장 등을 돕는다는 생각을 갖고 국내 건설사들이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며 “지분투자를 통해 사업성을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신삼섭 실장은 "국내 건설사들은 유라시아시장을 백지상태라고 보고 건설문화, 사업환경을 파악하는 데 집중해 발주 패턴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지 업체와 협력해 홍보 활동도 하고 현지화 노력도 하면서 후발주자라는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 우스튜르트 가스·화학 플랜트(UGCC) 프로젝트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가스전이 있는 우스튜르트 지역에 가스·화학 플랜트를 건설하는 공사. 총공사비는 우즈베키스탄 역사상 가장 많은 41억달러. 이 중 현대엔지니어링과 GS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등 3곳이 21억달러 어치를 수주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플랜트에 전기·가스·물 등을 공급하는 주변 기반시설을, 삼성엔지니어링은 폴리프로필렌과 고밀도 폴리에틸렌 생산 설비, GS건설은 에틸렌 생산 설비를 각각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