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휴가 때 해외여행에서 쓸 체크카드를 만들기 위해 학교 근처의 한 은행 지점을 찾았던 휴학생 이모(26)씨는 카드 만들기에 실패했다. 체크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당 은행 통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대포통장' 개설을 막기 위해 통장 개설 절차가 엄격해지면서 은행 측이 이씨에게 '거래 목적 확인을 위해 비행기표라도 가지고 와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최근 이사로 집을 옮긴 주부 강모(58)씨는 주거래은행을 이사한 집 근처 A 은행으로 바꿨다. 강씨는 이사 전 이용하던 B 은행 계좌는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해지하려 했지만, 은행에 다니는 지인의 만류에 B 은행의 계좌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강씨는 "지인이 '요즘 통장 개설이 쉽지 않으니,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갖고 계시라'고 귀띔해줘 그대로 갖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이 최근 범죄에 악용되는 '대포통장'을 없애기 위해 은행 계좌 개설 절차를 엄격히 하도록 하면서 통장 개설이 어렵다는 하소연이 잇따르고 있다. 또 신규 통장 개설이 어렵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재테크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장기 미사용 계좌, 휴면계좌 활용법 등이 전파되고 있다.

◇계좌 개설 어려워져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초 '대포통장'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 거래 내역이 없는 소액계좌를 거래 중지시키기로 했다. 예금 잔액 기준으로 ▲1만원 미만, 1년 이상 입출금 거래가 없는 계좌 ▲1만~5만원 미만, 2년 이상 거래가 없는 계좌 ▲5만~10만원 미만, 3년 이상 거래가 없는 계좌는 거래 중지 대상이다. 2015년 3월 말 기준으로 전체 요구불 계좌(약 2억개)의 45.1%에 해당하는 9100만개가량이 거래 중지 대상 계좌다.

이에 앞서 은행들은 올 초부터 신규 통장 개설을 매우 까다롭게 통제하고 있다. 예컨대 계좌 개설 때 각종 증빙서류를 요구한다. 신한은행은 재직증명서나 사업자등록증, 소득 증빙 자료 등을 요구하고 있고, 농협은 단기간에 다수의 계좌를 개설하는 등 의심이 가는 고객에게 재직증명서와 사업자등록증 등 객관적인 증빙서류의 첨부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급여통장을 개설할 때 명함·재직증명서·소득증빙서류 등을, 국민·하나·외환은행은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학생·주부 등은 통장을 개설하기가 어렵고,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서류를 챙겨오지 않아 은행에 두 번 방문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장기 미사용 계좌 활용법도 등장

통장 개설이 어렵다 보니 인터넷 재테크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통장 개설보다는 휴면 계좌를 살리는 것이 쉬우니 언젠가 필요할 날을 대비해 쓸모없어진 통장도 해지하지 말고 그냥 두라'는 '팁(tip)'이 공유됐다. 그러나 금감원의 소액계좌 거래 중지 방침 발표 이후에는 새로운 팁이 등장했다. '사용하지 않는 계좌라도 6개월에 한 번씩 100~200원씩이라도 이체하면 계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단순히 계좌를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초저금리 시대에 맞는 활용법까지 나오고 있다. 통장을 유지하고 있는 은행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금리를 주거나, 이체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등 혜택이 많은 상품이 나왔을 때 은행에 직접 가지 않고 인터넷뱅킹 등을 통해 갈아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이러한 팁들이 공유되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으로서는 특별히 '수익원'이 될 것 같지 않은 고객들이 계좌를 유지해서 제반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소액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활용될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