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4일간 20개월 수퍼 무이자!" "물가 비상, 16개월 무이자로 가볍게 넘어라!"
대형 할인점, 백화점 등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신용카드사 홍보 문구들이다. 물건값을 20개월씩이나 무이자 할부로 받으면 카드사들은 손해일 텐데, 어떻게 이런 서비스가 가능할까. 카드사의 장기 무이자 할부 서비스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우량 고객들에게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해주면서 생기는 적자를, 서민 대상의 고(高)금리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수익으로 메우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카드사 간에 무이자 할부 경쟁이 과도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가맹점과 저신용 고객들에게 전가하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오는 9월부터 카드 무이자 할부 마케팅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카드사들, 지난해 무이자 할부 서비스로 1조5000억원 손실
1일 금융감독원과 카드사들에 따르면, 카드사들이 무이자 할부를 제공해 손실 처리하는 금액이 2010년 7532억원에서 2012년 1조4658억원, 지난해 말 1조5805억원으로 급증했다.
카드사들은 기본적으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 돈을 다시 고객에게 카드론·현금서비스 등의 형태로 꾸어줌으로써 금리 차익을 따먹는다. 또 카드 고객이 물건을 살 경우, 판매점에 미리 대금을 지급하고 한 달 뒤 고객으로부터 결제 대금을 받는다. 원래는 고객이 장기 할부로 물품을 구매할 때는 자금 회수 시점이 그만큼 늦어지기 때문에 이자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더 받아야 하는데, 무이자 할부로 해주면서 손실을 카드사가 떠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객 김모씨가 1000만원의 가전 혼수품을 6개월 무이자로 구매할 경우, 원칙적으로 A카드사에 50만원(연간 10% 이자율)가량의 이자를 내야 한다. 카드사가 돈을 미리 꿔주는 방식으로 김씨가 물건을 샀기 때문에 카드사에 이자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카드사들은 이런 적자를 어디서 메우는 걸까. 카드사들은 무이자 할부를 제공하는 데서 발생하는 손실을 연 20%대 고금리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의 수익으로 보전하고 있다. 카드사들의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수익은 2010년 2조2254억원에서 지난해 말 3조8132억원으로 급증했다.
◇선진국에선 무차별 무이자 할부 서비스 없어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카드사 할부서비스에서 이자를 매기는 유(有)이자 서비스가 70%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카드시장이 포화 상태를 맞고,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5~6년 전부터 무이자 할부가 전체 할부금의 80%대에 달하게 됐다. A카드사의 임원은 "무이자 할부를 제공하는 가맹점의 70~80%는 대형 할인점이나 백화점, 대형 인터넷 쇼핑몰"이라며 "대다수 고객은 신용등급 1~5등급의 직장인이나 주부"라고 말했다. B카드사는 할부가 발생하는 가맹점 50만개 중 무이자 할부 가맹점이 37만개다. 무이자 기간도 기본 2~6개월에서 최근 20개월까지 제공하는 기형적인 마케팅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과거에는 가맹점에 10~20%의 무이자 할부 이자 금액을 물리다가 최근에는 50%의 무이자 할부 이자를 가맹점에 전가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은 영업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C카드사의 마케팅 담당자는 "대형마트에 경쟁 카드사가 고객에게 6개월치 무이자 서비스를 제공하면, 기존에 해온 3개월 무이자 서비스를 바로 6개월로 늘려 고객을 잃지 않는 것이 기본 관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구조 탓에 저(低)신용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선진국에선 무차별, 장기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은 무이자 할부가 없고, 호주는 상위 신용등급 고객에 한해서만 최대 55일 할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무이자 할부의 지나친 확대로 서민들에게 비용 전가가 되고 있는 만큼 무이자 할부를 줄이고, 대출금리를 정상화하는 방법으로 기형적인 영업 행태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