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정동현

멕시코 음식은 프랑스 음식처럼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오감을 자극하는 강렬한 맛은 이른바 세계 길거리 음식의 판을 새로 짜버렸다. 뉴욕, 파리, 런던, 그리고 서울의 '푸드 트럭'에서도 멕시코 음식은 베스트셀러요 스테디셀러다. 아즈텍 원주민들의 음식과 아랍의 영향을 받은 스페인, 이후 유럽 이주민의 문화가 뒤섞여 탄생한 멕시코 음식은 근대를 장식한 무수한 내전 속에 전장에 어울리도록 조리 방법이 단순해지고 빨라지면서 지금과 같이 푸드 트럭에 최적화되었다. 그 후 이민자들을 통해 미국에 전해지고 그것이 파병 미군 등을 통해 전 세계에 퍼졌다.

멕시코 음식 맛은 흐느적거리기보단 쨍하고, 부드럽기보다는 둔탁하다. 흔히 타코에 올려 먹는 살사는 날카로운 잽처럼 식욕을 돋우고 진흙을 끓인 것 같은 몰레 소스는 내장을 노리고 날리는 복서의 보디샷처럼 원초적이라고 하면 비유가 될까?

프리다 칼로의 그림 앞에 섰을 때도 나는 저 남아메리카 원산의 빨간 칠리를 통째로 씹은 것처럼 정신이 얼얼했다. 관객을 똑바로 응시하는 생생한 눈빛, 그러나 절대 외향적이지 않고 자아 저 안쪽을 파고드는 내성적이고 명상적이기까지 한 그녀의 그림 속 굵은 선과 화려한 색감은 멕시코 음식을 닮았다. 짙은 초록에서는 아보카도와 라임이 보이고 선연한 붉은색에서는 멕시코 음식에 빠지지 않는 칠리가 떠오른다.

프리다 칼로의 전기 영화 '프리다'(2002)의 삽입곡 'La llorona(우는 여자)'에서 "나는 마치 푸른 고추 같네, 요로나, 맵지만 맛있는"이라고 노래하듯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멕시코 음식은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짜릿한 자극이고, 새로운 희열로 이끄는 통렬한 쾌감이다.

그러나 실제 프리다 칼로의 요리 실력은 형편없었다. 어찌나 요리를 못했던지 남편인 디에고의 전처가 대신 요리를 해주었다고 한다. 식인귀(食人鬼)라는 별명을 가졌던 프리다 칼로의 남편 디에고는 여성 편력이 병적으로 심했다. 옥수수 푸대 같은 그의 체구를 보건대 여자뿐만 아니라 음식에도 탐닉했을 것이 분명하다. 프리다 칼로가 아닌 다른 여자가 해준 음식을.

프리다 칼로가 1943년 그린 '드러난 삶의 풍경 앞에서 겁에 질린 신부'.

요리라는 게 무엇인가? 기술이고 감각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남을 먹여 살리는 생존이고 사랑인 것을, 남편의 전처가 자신의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았을 프리다 칼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녀가 남긴 것은 처절하게 불행한 삶이며, 그 삶을 증명하는 치열하고 맹렬한 화폭뿐이다.

나는 미술사가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니기에 그 이상 설명은 그만. 대신 얄팍한 지갑을 차고 거리에 나선다. 서울 어딘가 골목 작은 가게에서 레몬보다도 신 라임을 쥐어짜고, 어느 요리에서도 제 개성을 놓치지 않는 고수를 한 줌 썰어 넣은 다음, 노랗게 기름이 오른 아보카도와 청양고추 따위 한 방에 날려버릴 멕시코 칠리와 적양파를 함께 다지고 으깨어 만든 살사를 옥수수 반죽으로 만든 토르티야에 넘치듯 올려 입안에 넣는다.


프리다 칼로 전시 보려면… ▲2015년 6월 6일~9월 4일(전시 기간 중 휴관 없음)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 ▲관람료 성인 1만3000원, 중·고교생 1만원, 어린이 6000원 ▲문의 www.frida.kr (02)801-7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