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손바닥만한 장난감 구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김미연 대신자산운용 리서치본부장은 최근 일곱 살 난 아들이 꼭 갖고 싶다는 변신자동차로봇을 구하느라 발을 동동 굴렀다. 아들 성화에 못 이겨 주말마다 마트에 나가봤지만 장난감 진열대는 매번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마트 점원에게 장난감 예정 입고일을 미리 알아낸 뒤, 마트가 문을 열기도 전에 달려가 간신히 샀다. 인터넷에선 '돈 있어도 못 사는 장난감'이라느니 '웃돈 주고 사겠다'는 글들이 넘쳐났다. '심상치 않다'고 느낀 김 본부장은 해당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 주식을 연구한 뒤 사들였다. 그는 "장난감 관련 업종은 시장 규모도 작고 상품 주기도 짧아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아들 장난감 대란을 겪으면서 해당 업종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생활 속에서 성장하는 자산을 골라내는 투자법은 수익률 상승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김 본부장이 지난 3월부터 운용 중인 여성시대펀드는 설정 이후 22%대 수익으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4.8%)를 크게 웃돌았다.

한국 여성 고유의 억척스러움과 섬세함을 겸비한 여성 펀드매니저가 약진하고 있다. 중후장대한 산업이 승승장구했던 인프라(공공기반시설) 투자 시대가 저물고, 저성장·저금리 속 의식주와 관련된 소비가 떠오르는 것과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풍속도다. 여성이 국내 최대인 3조원대 공룡 펀드를 운용하고 있고, 고위급 여성 펀드매니저의 수도 크게 늘었다. 지난 2월 김미영 피델리티자산운용 전무가 임원으로 승진했고, 지난 4월 신영자산운용의 박인희·원주영 펀드매니저가 본부장급으로 승진했다. 민수아 삼성자산운용 밸류주식운용본부장은 지난 2012년 회사 내 최초 여성 본부장이 되었고, 안선영 미래에셋운용 포트폴리오전략본부장도 지난 2013년 승진해 첫 여성 임원 매니저가 됐다. 신영자산운용은 여성 펀드매니저 비중이 40%에 달한다. 이 회사 이상진 대표는 "여성 펀드매니저들은 차분하고 집중력이 높아 펀드를 운용하는 데 흔들림이 없고, 남성매니저들보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직접 먹고 입고 써본 뒤 결정"

종전 굴뚝산업(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는 기업의 재무제표나 영업보고서, 애널리스트의 보고서 등이 투자 판단을 내릴 때 중요한 근거가 됐다. 하지만 최근 한국 경제가 소비 중심으로 바뀌고 인터넷·SNS 등이 발달하면서 매니저들의 종목 사냥법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맥주 애호가인 정윤영 스팍스자산운용 매니저는 올 초 롯데칠성 주식을 저가에 사들여 50% 넘는 수익률을 거뒀다. 정 매니저는 "우리나라는 워낙 소맥(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는 것)이 인기이다 보니까 밋밋한 소맥용 맥주들만 득세하고 맥주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맛있는 맥주는 없었다"면서 "그러다가 작년에 새로 나온 클라우드를 마셔보고 롯데칠성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서영 한화자산운용 매니저는 "명동이나 홍대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반드시 가보고,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도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유심히 살핀다"고 했다. 그는 "펀드매니저는 사무실에서 누가 가져다준 리포트에 파묻혀 있어봤자 이득이 없다"면서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봐야 메가트렌드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술자리 대신 발로 뛰어 승부

'금융투자업계의 꽃'으로 불리는 국내 펀드매니저 시장은 2000년대만 해도 여성에겐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진입 문턱이 높아서 여성 펀드매니저는 10명 안팎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체 596명 펀드매니저 가운데 여성이 14%(84명)가량을 차지한다.

'주가는 밤에 만들어진다'며 술자리에서 고급 정보를 은밀하게 수집하던 풍속도도 옛말이 되고 있다. 여성 펀드매니저들은 섬세한 분석력과 숫자 감각으로 입지를 굳혀간다. 박인희 신영자산운용 본부장은 "의식주와 연관이 깊은 소비재 부문은 '체험'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화장품 같은 것도 직접 사서 써보고 앞으로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지 고민해 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면세점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서도 해당 부지를 일일이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