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 사이 반도체 업계에서는 초대형 인수·합병(M&A)이 연이어 이뤄졌다. 모두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와 관련된 거래였다.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인 미국 인텔은 이달 초 차량·군사·항공용 반도체 기업인 알테라를 167억달러에 인수했고, 지난달에는 싱가포르의 반도체 기업 아바고가 미국의 통신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을 370억달러에 인수했다. 각각 세계 반도체 산업 역사상 1·2위에 해당할 정도의 초대형 M&A였다. 그만큼 비메모리 분야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무인차·사물인터넷 등장에 비메모리 급성장

비메모리는 주로 PC나 스마트폰 등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반도체다. 중앙처리장치(CPU)나 응용프로세서(AP)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의 온도 조절·전원 장치에 쓰이고 자동차의 시동을 켜고 끄거나 전·후방 센서, 계기판에도 사용된다. 사실상 전자장치로 작동되는 대부분 분야에 비메모리가 사용되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HS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작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는 825억2600만달러로 삼성전자가 1위, SK하이닉스가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비메모리 시장 규모는 2719억1700만달러로 3배 이상 규모다.

세계 반도체 업체들은 비메모리 반도체를 활용한 무인자동차·사물인터넷 서비스용 기술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지난 5월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세계전기차학술대회에서 미국 반도체 업체 퀄컴이 무선충전 기술인 '헤일로'를 선보였다. 전기차를 무선충전 패드 위에 세워두기만 하면 3∼4시간 만에 충전이 완료되는 기술이다. 퀄컴은 "세계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을 강화해 2∼3년 안에 무선충전 기술을 상용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인자동차는 교통 상황, 경로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 바로 주행 시스템에 반영해야 한다. 또 자동차 바깥의 온도, 날씨 등도 센서를 이용해 정보를 수집해야 헤드라이트의 밝기는 어떻게 조절하고, 내부 에어컨 가동 여부 등을 결정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 역시 마찬가지다. TV, 냉장고, 에어컨 등이 인터넷에 연결돼 원격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런 데이터를 처리해주는 비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엔비디아와 인텔은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전시회 'CES 2015'에서 자동차용 반도체를 대거 선보였다. 중국 업체들도 대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중국 하이실리콘·스프레드트럼·다탕 등은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고 비메모리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약 22조원에 달하는 국부 펀드를 조성해 해당 업체들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A 등 비메모리 분야 진출 방안 찾아야

명실상부한 글로벌 반도체 강국임을 자부하는 한국 업체들은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자체 모바일 AP인 엑시노스 시리즈를 만든다. 스마트폰 '갤럭시S6'에 탑재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지만 외부 파트너사를 아직 찾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비메모리 분야는 매 분기 적자 행진을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작년 실리콘화일을 인수하면서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사업을 시작하지도 못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비메모리 분야는 한국 대기업이 쉽사리 진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본다. 우선 수익성이 좋은 CPU나 AP 등은 인텔, 퀄컴 등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신생 업체가 진입하기 어렵다. 또 빛·소리·온도 등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바꿔주는 반도체나 센서 등은 시장 규모가 작아 대기업이 거액을 투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거액을 투자해 1위 사업자가 되더라도 시장 규모가 작아 큰 수익을 내기 어렵다"며 "쉽사리 투자 결정을 할 수는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장비가 좌우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비메모리는 엔지니어의 역량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된다. 얼마나 정교하게 반도체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시장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ARM이나 퀄컴이 대표적이다. 최근 중국 업체들은 고액을 주고 이 분야의 고급 엔지니어들을 대거 스카우트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거액을 주고 인재를 영입해도 금세 다른 업체에 빼앗겨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M&A를 통해 기술력이 있는 업체를 인수하는 방안을 추천한다. 전력용 반도체를 만드는 네덜란드의 NXP반도체는 미국의 프리스케일을 인수하면서 단숨에 비메모리 시장 4위권으로 급성장했다. 특히 자동차 통신용 반도체 시장에서는 1위 등극을 노릴 정도다. 그 외에도 대만의 미디어텍과 엠스타가 합병하는 등 비메모리 시장에서는 M&A가 활발하다. 삼성이나 SK하이닉스 역시 활발한 M&A를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