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날로 기억할 것이다. 당시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 인근 해저에서 발생한 규모 8.8의 지진은 수도 도쿄(東京)는 물론 이바라키(茨城), 후쿠시마(福島) 등 연안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당시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은 4년 넘게 지난 최근까지도 방사능 공포를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내겐 '2011년 3월 11일'은 의미가 다르다. 스마트폰으로 내비게이션(길 안내) 서비스를 하는 '김기사' 앱(응용프로그램)이 처음 출시된 날이기 때문이다. 본래 우리는 2011년 1월을 데드라인(마감)으로 삼고 김기사를 개발하고 있었다. 1월까지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이제 애플의 앱 장터인 '앱스토어'에 등록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유독 애플의 심사를 받을 때마다 여러 이유로 매번 거절당했다. 결국 애플의 심사까지 통과하고 '김기사'를 선보인 날이 바로 3월 11일이었다.

'김기사' 앱 출시날 동일본 대지진 발생

나는 이날을 위해서 미리 서점에서 책을 사서 보도자료 쓰는 법을 배웠다. 대표인 나를 포함해 직원이 7명밖에 되지 않은 데다, 모두 개발자이니 언론사에 돌릴 보도자료도 내가 직접 작성해야 했다. 그리고 앱스토어에 앱이 올라간 오전 10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스마트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내비게이션 앱' 출시 기사가 뜨기만을 한없이 기다렸다.

내비게이션 앱 ‘김기사’를 개발한 박종환 록앤올 대표는 “김기사를 처음 출시한 날에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나는 무조건 될 놈이다’는 좌우명을 새기며 노력한 끝에 김기사가 ‘국민 내비’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난 뒤 인터넷에 올라온 속보를 보고 우리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방송·온라인 기사는 온통 동일본 대지진으로 도배됐고, 김기사 출시와 관련된 소식은 전혀 없었다.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다운로드(내려받기) 건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원 가족과 친척, 친구들까지 총동원했지만 첫날 김기사를 다운로드한 건수는 수백 건에 불과했다. 며칠이 지나도록 그 수치는 늘지 않았다. 속칭 '망한 앱'이 된 셈이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2010년 5월 직장 동료 등과 함께 뜻을 모아 자본금 1억5000만원으로 록앤올을 설립했다. 내가 받은 퇴직금 5000만원은 고스란히 털어버렸고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에서 받은 4억원의 대출은 그대로 빚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모든 직원이 '김기사' 하나만 보고 10개월간 지루한 개발 과정을 거쳤는데, 옆 나라 일본의 지진 탓에 아무도 새로운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이미 이동통신사 내비게이션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너희 앱을 또 내려받겠느냐"는 주변의 우려가 다시 귓등을 때렸다. '어차피 안 되는 서비스였는데, 대지진으로 아주 종지부를 찍는구나'라는 탄식이 나왔다.

동호회에 리뷰 올리고 블랙박스 기능도 추가

하지만 포기하기엔 너무 일렀다. 처음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벤처기업에서 일하면서 가졌던 '나는 무조건 될 놈이다'라는 좌우명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우선 주요 포털 사이트의 아이폰 사용자 커뮤니티부터 뒤졌다. 하나하나 회원으로 가입하고 실제 사용자인 척하면서 김기사 앱에 대한 리뷰(사용후기)를 남겼다. '김기사라는 내비게이션 앱이 나왔는데, 정말 쓰기 좋더라고요. 아이폰 사용자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처음에는 좀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무너지면 회사가 무너지고, 가족들은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개발자들도 힘을 냈다.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도 기능 업데이트(개선) 작업을 계속했다. 아무리 소수(少數)라도 그들을 위해서 내비게이션 앱에 블랙박스 영상을 촬영하고 저장할 수 있는 기능도 개발했다. 스마트폰이 내비게이션이자 블랙박스로 작동하는 기능은 내가 알기로는 '세계 최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서서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김기사'라는 새로운 앱을 소개하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고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도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다운로드 순위도 급격히 올라갔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꼭 한 달이 지난 4월에는 애플 앱스토어의 전체 인기 순위 13위까지 올랐다. 한 달 동안 마음 졸여가며 역삼동의 10평짜리 오피스텔 방 하나에 모여 앉아 있던 직원 7명(나 포함)의 얼굴에도 그제야 안도의 웃음이 비쳤다.

국민 내비에서 글로벌 서비스로

2011년 3월 11일부터 4년여가 지나는 동안 김기사는 국내 사용자 1000만명을 넘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국민 내비'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지난달에는 '국민 메신저'라는 별명을 가진 '카카오톡'의 운영업체 다음카카오가 우리 회사를 626억원에 인수 합병했다. 업계에서는 다음카카오의 록앤올 인수는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 생태계의 모범 사례를 남긴 것이라는 평을 들었다. 나 역시 이런 평이 헛되지 않게 김기사를 세계 최고의 내비게이션 앱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또 한국을 넘어 일본·중국·동남아 등 해외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다. 특히 올 2월 처음 일본 시장에 진출한 이후 한 달에 두세 번씩 일본을 찾고 있다. 일본에 갈 때마다 머릿속에는 '2011년 3월 11일'이 생각났다. 대지진을 극복하고 일어선 일본과 대지진의 '유탄'을 맞았던 김기사가 어찌 보면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버티면 살아남는다. 왜? 나는 무조건 될 놈이니까'라는 내 인생관을 더욱 굳게 믿고 나아가겠다는 각오도 새삼 다지게 된다.

☞박종환 대표는…

'국민 내비'로 불리는 '김기사' 앱〈사진〉을 개발한 록앤올 박종환(43) 대표는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 1년을 막 끝낸 2000년부터 지금까지 16년간 벤처기업에 몸담아왔다. PC용 GIS(지리정보시스템)를 개발한 KTIT, 벤처기업 포인트아이에서 위치 기반 서비스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사업 담당 이사로 일했던 그는 2010년 5월 회사를 나와 공동 창업자 2명과 함께 록앤올을 세웠다. 2011년 3월 첫선을 보인 김기사는 현재 사용자 1000만명에 달하는 내비게이션 서비스로 성장했다. 또 지난 5월에는 다음카카오에 626억원에 인수합병(M&A)되기도 했다. 16년간 벤처·지도 외길을 걸은 끝에 대박을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