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로 그은 듯한 단정한 선(線)이 첫눈에 들어왔다. 다음엔 반질반질한 검은 광택 사이의 황토색 거친 질감이 보였다. 지난 16일 스위스 바젤의 도심 메세플라츠에서 열린 '디자인 마이애미/바젤'(15~21일). 50여개 디자인 갤러리가 내놓은 형형색색 가구와 조명 사이에서 유독 도드라진 부스가 있었다. 미국 뉴욕의 프리드먼 벤다(Friedman Benda) 갤러리가 꾸민 가구 디자이너 최병훈(63·홍익대 미대 교수)의 개인전이다.

길이 3~4m의 까만 돌이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조각이 아니라 사람이 앉는 벤치다. 최 교수는 "3t짜리 현무암을 인도네시아에서 직접 구해서 갈았다"고 했다. 겉은 황토색인데 속살이 까만 돌이다. "4~5년 전 우연히 이 현무암을 발견하고 한 덩어리 사다가 파주 작업실에 갖다 놓았지요. 몇 년 동안 묵히면서 들여다만 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최병훈 교수가 3)짜리 현무암 한 덩어리를 갈아 만든 벤치.

그는 "억겁의 세월을 품은 바위가 내 손길을 통해 새로 태어나는 일획의 찰나를 표현했다"고 했다. 일부는 갈고 일부는 그대로 뒀다. 원석 그대로인 황토색 거친 부분과 매끈한 검은 부분이 대조를 이루면서 묘하게 어울린다. 그는 "거친 것과 부드러움, 과거와 현재, 무거움과 가벼움이 만난 상태"라며 "상반된 요소가 빚어내는 균형감"이라고 표현했다.

최 교수는 돌이나 나무, 철 같은 자연 소재로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를 만들어 가구 본연의 기능에 예술성을 입힌 작가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은 매년 12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세계적 디자인 페어인 '디자인 마이애미'의 바젤판. '디자인 마이애미'가 2005년 바젤에 진출해 같은 이름을 달고 매년 6월 여는 전시다.세계에서 몰려든 디자인계 큐레이터, 컬렉터들이 작품을 구매하고 트렌드를 점친다. 이날 마리 로흐 주세 퐁피두센터 디자인 담당 큐레이터는 "기계로 깎은 화려한 가구들 사이에서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며 "지금껏 못 보던 동양적 가치를 발견했다"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