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9일 오전 10시쯤 부산 연제구 연산동 '해운대자이 2차' 아파트 모델하우스 앞. 방문객 수백명이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도 보였다. 이들의 평균 대기 시간은 약 1시간. 주부 김재겸(59)씨는 "(아파트에) 당첨되면 프리미엄을 얹어 되팔 생각으로 온 이가 많다"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 10여명이 "당첨되면 꼭 연락 주이소"라며 '분양권 매매'라고 적힌 명함을 나눠줬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와중에도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주말마다 인파가 몰리고, 인기 단지는 청약 경쟁률이 수백대1에 달한다. 건설사들도 "지금이 기회"라며 분양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공급이 크게 늘어난 부산·대구 등 지방 대도시에 대해서는 과열(過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급과잉으로 아파트 입주 시점인 2~3년 후 빈집이 속출하고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논리이다. "실수요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상반기 大邱 청약 경쟁률 77.4대1
올 상반기 지방에서 분양한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은 평균 12.5대1로 작년 상반기 청약 경쟁률(5.8대1)이나 올 상반기 수도권 경쟁률(5.0대1)의 배 이상이었다. 대구는 평균 77.4대1로 전국 최고였다. 광주(58.2대1), 부산(45.4대1), 울산(32.1대1)도 청약 경쟁이 치열했다.
지방 청약 시장이 뜨거운 이유는 청약 규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방의 경우 청약통장 가입 후 6개월만 지나면 1순위 자격이 주어지고, 한 번 당첨되면 일정 기간 청약을 제한하는 재당첨 금지 규정도 없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통장 만들어서 청약하고, 당첨되면 다시 통장 만들어 6개월 뒤 청약하는 투자 패턴이 정착돼 있다 보니 청약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들에선 시세 차익을 노린 가(假)수요까지 가세하고 있다. 김필문 GS건설 해운대자이 2차 분양소장은 "대구나 부산에서는 로또 복권을 사는 심정으로 '묻지 마 청약'을 하고, 당첨되면 분양권을 되파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달 3일 밤 대구 대곡동 '동대구 반도유보라' 모델하우스 앞은 '야시장(夜市場)'을 방불케했다. 아파트 당첨자 발표 시각(자정)에 맞춰 분양권을 사고팔려는 사람과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 수백명이 몰려든 것이다. 이 아파트는 387가구 모집에 1순위에서만 10만6020명이 청약했다.
실제로 프리미엄을 받고 아파트 분양권을 파는 전매(轉賣)는 지방이 수도권보다 훨씬 많다. 올 4월 전국 아파트 거래량 중 분양권 전매 비중은 평균 28.7%였다. 지역별로는 서울(8.6%)과 경기(19.8%)보다 부산(32%)·대구(41%)·광주(42%)·울산(43%) 등 지방 광역시가 배 이상 높았다.
◇"공급과잉" vs. "實수요 충분"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2007년에도 9월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앞두고 건설사들이 올해처럼 공급량을 크게 늘렸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 미분양이 쌓이고 하우스푸어 문제가 터졌다"며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영남권 부동산 시장 과열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 부산과 대구의 적정 주택 공급량은 연간 1만2000~1만3000가구 정도인데, 2011년부터 작년까지 부산엔 연평균 2만3000여가구, 대구는 1만7600여가구가 신규 분양 됐다는 이유에서다. 강정규 동의대 교수(재무부동산학)는 "부산·대구는 계속 시장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투자하는 분위기가 많다"며 "인구 감소나 높은 가계 대출 부담 등이 중장기적으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요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전세난과 저금리의 영향으로 주택 구매 수요가 늘었고 수요 증가에 맞춰 공급이 따라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도 "국내 경제 규모를 봤을 때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