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은 늘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따오고 꼼꼼하게 일을 가르쳐주는 '선배'였습니다. '사람이 곧 자산'인 상사의 특성을 최우선하면서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늘 직원들이 상사맨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독였습니다."

사장 자리를 걸고 포스코가 만지작거렸던 '미얀마 가스전 매각' 카드를 사실상 백지화시킨 전병일(60)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은 후배들에게 ' 덕장(德將)'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달 26일 모기업인 포스코의 구조조정 기조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리는 등 외부에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내부에서는 조근조근 일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온화한 선배 인상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 직원은 "조용한 성격이지만, 카리스마를 겸비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전 사장은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대우중공업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정통 '대우맨'이다.

1988년 기계수입판매부장을 맡은 뒤 1992년 폴란드 바르샤바 지사장, 2000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법인장을 거쳤고 2007년부터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지사장 등을 지내며 17년 동안 줄곧 해외 영업 현장을 책임졌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세계 경영' 깃발을 들고 전 세계를 누빌 때, 전 사장 역시 해외 영업 현장에서 발품을 팔며 시장 개척에 나섰다.

2009년부터는 기계, 플랜트, 자동차 등을 주력 취급하는 영업2부문을 맡았고, 지난해 사장까지 올랐다.

전병일 대우인터 사장이 지난 3월 경영위원을 비롯한 해외 조직장 전원과 오전 송도 센트럴파크에서 새벽 조깅을 하고 있다.

올해까지 38년 동안 줄곧 상사맨인 전 사장의 활약상은 상사업계에서 숱하게 회자된다.

전 사장은 1992년 폴란드 바르샤바 지사장으로 부임하자마자 티코를 전 세계에서 최초로 수출하는데 성공해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신임을 얻었다.

2007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지사장으로 부임했을 당시에는 국내에선 사양산업으로 통했던 섬유 부문에 과감하게 투자해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만들었다. 또 그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에 있는 대염호(大鹽湖)인 아랄해의 석유·가스 탐사권을 따내 미얀마 가스전 이후 맥이 끊겼던 자원개발사업에도 불을 당겼다.

전 사장은 영업2부문장을 맡은 이후부터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 등 그동안 영업망이 취약했던 지역을 적극 공략해 영업2부문의 수출 신장률을 연평균 30%로 끌어올렸다.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전 사장은 해외 지사장으로만 17년을 근무했고, 특히 중앙아시아지역 전문가로 활약한 인물"이라며 "해외근무를 마치고 영업2본부를 맡은 이후에도 해외에 나가있는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데 특히 신경썼다"고 말했다.

전 사장은 2014년 3월 대우인터 사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이 포스코그룹에 편입된 이후 모회사 출신 이동희 부회장이 회사를 이끌었지만, 무역회사 특성을 잘 알고 해외사업에 정통한 인물이 조직을 책임지는 게 적합다는 권오준 회장의 판단에 따른 인사였다.

전 사장은 취임 이후 임직원 간의 소통을 강조했다. 포스코그룹에 편입된 이후 사내에 계파가 생기는 등 상사 특유의 끈끈함이 예전같지 않다는 판단한 전 사장은 회사의 핵심사안을 다루는 전략토론회의 참석자를 임원급에서 팀장급으로 확대하고, 2010년 이후 사라졌던 해외 지사·법인장 회의'를 부활시켰다.

전 사장은 사장에 오르기 전부터 후배들에게 "영업에 실패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어도 의전에 실패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늘 낮은 자세에서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상사맨의 기본 자세라고 강조하며 사장에 오르고 나서는 임원들에게 '교병필패(驕兵必敗·강병을 자랑하는 군대나 싸움에 이기고 뽐내는 군사는 반드시 패한다)'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들은 전 사장의 행보를 선배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준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 고위 관계자는 "전 사장이 10년 넘게 가스전에 매달리며 회사를 되살린 직원들의 노력과 가스전을 기반으로 제 2의 상사 신화를 만들려는 직원들의 꿈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걸고 선봉에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사장은 포스코가 해임안 추진을 백지화 시킨 뒤인 지난 12일 "빠른 시일 내에 공식적인 거취를 표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그룹차원의 구조조정 이슈 등으로 대내외에 갈등과 불협화음이 있는 것으로 비춰져서 경위를 떠나 주주 및 임직원께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최고경영자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면서 "안팎의 잡음으로 몸담은 조직과 모시는 상사 및 임직원 여러분들께 더 이상 누를 끼쳐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 메시지를 자진 사퇴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