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vs 올해 5월, 상황 비슷하지만 한은 대응은 '정반대'
장민 조사국장 '외부 수혈' 등 한은 내부 분위기 크게 달라져

"세월호 사고 이후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됐고 이것이 내수 회복을 제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화 절상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2014년 5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브리핑)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우리 경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경제 주체들의 심리,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완화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수출이 생각보다 부진하고 그 배경에는 환율 문제가 없지 않다. 금리 인하가 수출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2015년 6월11일 금통위 직후 브리핑)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약 1년의 시차를 두고 한 두가지 발언이다. 우리 경제는 작년 4월 세월호 사고, 올해 6월 메르스 사태라는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 내수 회복에 찬물을 끼얹었다.

또 원화 강세와 엔저 현상으로 수출이 부진했다. 지난해 5월 원달러 환율이 1020원 수준으로 하락했고, 올해 5월에는 원엔 환율이 890원대로 떨어지면서 수출이 5개월 연속 감소했다.

비슷한 상황이지만 한은의 처방은 판이하게 달랐다. 한은은 지난해 8월에야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해 내수가 크게 위축된 지 3~4개월 만이었다. 반면 올해는 메르스 사태가 확산된 지 15일이 채 지나지 않아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1.5%로 내렸다. 한은의 행동 차이만큼 이 총재의 발언도 작년과 크게 달랐다.

작년에 한은이 금리인하에 미적대는 사이에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 0.9%(전분기 대비)에서 세월호 사고 당시인 2분기 0.5%로 크게 꺾였다. 한은이 작년 8월과 10월 두 차례 걸쳐 기준금리를 2.5%에서 2.0%로 인하했지만 정부와 시장에 떠밀린 '뒷북 금리 인하'라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해 3분기 성장률은 기저효과로 0.9%를 회복했지만, 성장세가 이어지지 못하고 4분기 다시 0.3%로 추락했다. 한은의 때늦은 금리 인하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올해 들어서 한은이 달라졌다. 4월 수정 경제전망 발표를 한 달 앞둔 지난 3월 금통위에서 "1~2월 경제 지표를 보면 내수 회복이 미흡해 경제가 당초 예상했던 성장경로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내수 부진이 심각하다"면서도 "한은이 4월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며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그러나 한은은 전문가들의 전망을 깨고 3월 금리를 사상 처음 2% 아래로 인하했다.

6월 금통위에서도 '선제적 대응'이 이어졌다. 메르스 사태를 반영한 경제 지표가 아직 나오지 않았고, 한은 내부적으로도 메르스 사태의 경제적 영향에 대한 정량적 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한은은 기준금리를 사상최저인 1.5%로 인하했다.

◆ '작년 늦은 대응' 반성…"한은이 통화정책 주도적으로 이끌겠다"

한은의 대응은 이 총재의 자평대로 '선제적'이었다. 한은 안팎에서는 "통화당국이 기민하고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은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 세월호 사고 당시 한은이 지나치게 신중하게 대응했고, 한은의 한발 늦은 대응이 결과적으로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내부 반성이 있었다"며 "지난해 사례를 통해 경기 하방 위험에 한은이 보다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은 관계자는 "그동안 한은이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 지나치게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한 것은 '긴축적인 통화정책(금리 인상 지향)을 유지하는 게 곧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금리 인하에 미온적인 한은의 태도가 (외부 간섭을 불러오면서) 오히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 구조가 저성장, 저물가 구조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한 발 늦게 이뤄지는 통화정책에 '떠밀린 결정'이라는 꼬리표가 붙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올해 들어 한은이 보인 선제적인 결정은) 경제 패러다임이 과거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던 시기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여기에 맞는 통화정책을 계속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 장민 조사국장 외부수혈 등 한은 내부 변화가 효과 나타내

특히 한은이 인식을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외부 인사를 수혈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한은 직원들의 평가다. 이 총재는 지난 1월 한은의 핵심보직인 조사국장에 장민 당시 금융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을 임명했는데, 조사국장직을 외부에 개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장민 국장 취임 이후인 지난 4월 경제전망에서,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4%에서 3.1%로,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1.9%에서 0.9%로 큰 폭 하향 조정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드디어 '현실화'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외부 수혈'을 통한 변화의 효과를 인식한 듯 이 총재는 12일 한은 창립 65주년 기념사에서 "정책여건이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할 때는 관행이나 과거의 경험에만 의존해서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기 어렵다"며 "구성원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력충원 방식을 다양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금리 조정을 통한 통화정책은 그 효과가 실물 경제에 영향을 주기까지 보통 6개월 정도가 걸린다. 정책 시차가 존재하는 만큼 통화정책은 언제나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그동안에는 뒤늦은 한은의 대응이 오히려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은이 '말로만'이 아닌 '진짜' 선제적 대응에 나서면서 기존 평가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