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미얀마 가스전 매각안에 공개 반대 의견을 표명한 전병일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해임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재무구조를 개선한다는 이유로 향후 25년 간 매년 3000억~4000억원 가량 이익이 보장되는 캐시카우(cash-cow) 자산을 매각하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비록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직접 나서 "당장 매각하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그룹 측 구조조정 계획에 혼선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전 사장 해임이 추진되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 "그룹 구조조정에 반기?"…전 사장 공개 반발에 포스코 고위층 분노
10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권오준 회장 등 포스코 수뇌부는 지난달 말 대우인터 사내 게시판에 미얀마 가스전 매각안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한 전병일 사장을 해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임 이유는 전 사장이 권오준 회장에게 보낸 서한을 회사 게시판에 올려 수뇌부끼리의 논의 내용을 공개하는 등 불필요한 마찰을 불러일으켰다는 것. 한 포스코 관계자는 "미얀마 가스전 사업 주관회사 대표로서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이를 외부에 공개해 논란을 일으킨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게 주요 경영진의 판단"이라며 "미얀마 가스전 매각 여부와는 상관 없는 조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전 사장이 미얀마 가스전 매각 반대의견을 표명하면서 포스코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봤다.
전 사장은 대우인터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포스코 구조조정은 미얀마 가스전 같은 우량자산을 매각하는 게 아니라 포스코그룹 내 산재한 부실자산, 불용자산, 비효율자산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포스코플랜텍 등 부실 계열사에는 유상증자 형태로 자금을 투입했던 그룹 경영진이 대우인터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미얀마 가스전 매각을 검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 권 회장 등 그룹 고위층의 분노를 샀다는 게 철강업계의 해석이다.
이에 대해 한 대우인터 직원은 "전 사장이 사내게시판에 올린 내용은 직원들이 정례적으로 공유하는 경영전략회의 내용"이라며 "전 사장은 이미 수 차례 권 회장과 미얀마 가스전 관련 협의를 진행한 상황에서 갑자기 '항명'이라는 죄목을 씌워 해임을 추진한다니 직원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 대우인터 "캐시카우 왜 파나"vs 포스코 "재무적으로 도움 안돼"
이 때문에 철강업계에서는 이번 파문을 미얀마 가스전의 사업성에 대한 포스코와 대우인터의 시각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우인터 미얀마 가스전 사업은 대우인터가 1997년부터 추진했던 사업이다. 2000년 대우그룹 해체에도 불구하고 탐사권을 따내, 2004년 탐사에 성공했고, 2005년 가스 매장량을 확인한 이후 본격적인 개발 사업에 나서 2013년부터 이익을 내고 있다.
대우인터가 운영 중인 가스전의 3개 해상 광구의 천연가스 추정매장량은 4조 입방피트다. 원유로 환산하면 약 7억 배럴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는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발견한 석유가스전 중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지난 2008년 중국국영 석유천연가스공사 자회사(CNPC)와 향후 30년 장기 판매계약을 체결했으며, 미얀마-중국 국경까지 약 900km에 이르는 해상과 육상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으로 전량 수출된다.
대우인터 등 상사업계에서는 미얀마 가스전이 향후 10~20년간 회사 효자 노릇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3700억원)와 올 1분기(940억원) 영업이익 80% 이상이 미안먀 가스전에서 나왔다는 게 대우인터측의 설명이다. 포스코 가치경영실에서 미얀마 가스전을 매각 대상으로 분류한 것이 알려지면서, 전 사장을 포함한 임직원들이 '대우인터의 팔 다리를 자르려 한다'고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상사업계에서도 "대우인터가 13년이나 공을 들인 미얀마 가스전 매각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포스코의 핵심 경영진은 미얀마 가스전 사업으로 인한 실질적인 도움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안먀 가스전 개발로 인한 투자 대비 이익 효율성이 적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미얀마 가스전 생산 이후 대우인터의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악화되고 있다는 게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되고 있다. 2012년 5200억원 순유입이 이뤄졌던 현금흐름은 2013년 3200억원, 2014년 4300억원 순유출로 돌아섰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미얀마 가스전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대우인터의 장기미수금이 한 해 3000억~4000억원 수준으로 늘어났고, 재고자산과 매출채권도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을 포스코 가치경영실이 주목하고 있다"면서 "재무적 기여도가 낮은 미얀마 가스전을 팔아서 이익을 실현하는 게 그룹 전체 재무구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듯 하다"고 말했다.
◆ 포스코 vs 대우인터 기업문화 충돌 양상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포스코와 대우인터의 기업문화 충돌로 보는 시각도 있다. 보수적인 포스코의 기업문화와 적극적인 영업맨 기질인 대우인터의 정서가 맞부딪쳤다는 해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금을 확보해서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이를 발판으로 각종 투자를 늘리는 포스코 사람들에게, 장기적인 사업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손해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대우인터 사람들의 시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전 사장의 해임이 이뤄질 경우 대우인터 직원들의 집단행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대우인터는 포스코 그룹 편입 후 올해부터 본사를 송도 동북아무역센터로 옮기면서 그룹의 서자 취급을 받는다는 불만이 고조됐었다.
한 대우인터 직원은 "가뜩이나 종합상사업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공들인 사업을 매각하겠다고 운운하고, 회사의 수장을 해임하는 것은 3000여명의 대우인터내셔널 직원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라며 "사람을 중시하는 상사업계에서 이같은 일은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전병일 사장이 1977년 서울대 공대 졸업 후 대우그룹 공채로 입사했고, 대우 기계수입판매부장, 독일 프랑크푸르트법인장, 대우인터 영업2부분장을 거쳐 지난해 대우인터 사장으로 오른 전통 대우맨이라는 점도 직원들의 동요를 일으킬 요인으로 지목된다. 전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 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