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의 사외이사들이 최고경영자(CEO)와 학연·지연 등으로 얽힌 사람이 많고, 이런 인연 탓에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의심이 실증적 연구 결과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다. 또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반대표를 던진 사외이사들은 찬성만 하는 사외이사들보다 이듬해 교체 확률이 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7일 '사외이사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이사회 구성과 사외이사 행태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2010~2012년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전체 사외이사 663명 중 113명(17%)이 해당 기업 CEO와 같은 시·도 출신이었다. 여섯 명 중 한 명꼴이다. 사외이사 59명(9%)은 CEO와 출신 고등학교가 같았다.

연구진이 이 기업들의 안건 9101개를 분석한 결과, 사외이사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한 안건은 33건(0.4%)에 불과했다. 전체 사외이사 663명 중 반대표를 행사해 본 경험이 있는 사외이사는 9%에 그쳤다. 사외이사 열에 아홉은 반대표를 한 번도 행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그나마 반대표가 나온 안건들도 해외자원투자, 인사 등 언론에서 문제가 먼저 불거졌던 사안들"이라고 말했다. 특히 CEO와 학연·지연이 있는 사외이사들은 반대표를 던진 비율이 낮았다. 같은 지역 출신인 경우 6%,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경우 3% 정도만 반대표를 던진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KDI 연구진은 반대의견을 표시한 경험이 있는 사외이사의 교체율을 분석했다. 한 번이라도 안건에 반대한 사외이사는 찬성만 한 사외이사에 비해 이듬해 교체율이 2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가 안건에 반대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일단 반대를 한 경우 자의든 타의든 이사회를 떠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반대표를 던졌을 때 교체율도 학연·지연에 따라 갈렸다. 반대표를 던진 사외이사 중 CEO와 동향이 아니면 29%가 이듬해 사외이사직을 내려놓았지만, 동향인 경우 사외이사직을 떠난 케이스가 없었다.

사외이사의 이사회 출석률도 CEO와의 연고에 따라 미묘하게 갈렸다. 사외이사들의 이사회 결석률은 평균 9% 정도였는데, CEO와 연고가 있는 경우 결석률이 2%포인트 더 높았다. CEO와 연고가 있는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 불참하면, 안건에 대한 결정권이 사외이사진이 아닌 사내(社內)이사에게 돌아갈 확률이 커진다. 결국 CEO와 연고가 있는 사외이사들은 결석함으로써 간접적으로 CEO를 돕는다는 것이다. 김재훈 KDI 연구위원은 "출석률이 저조한 학계 출신 사외이사는 교체율이 낮지만, 출석률이 높은 은행가 출신 사외이사는 빨리 교체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결국 사외이사는 조용히 지내면 장수(長壽)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사외이사 후보추천에 CEO의 영향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아예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사외이사만으로 구성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2012년 상법 개정으로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에 사외이사가 절반을 넘도록 바뀌었지만, CEO의 입김을 차단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또 사외이사가 기업 경영진에 대한 성실한 감독자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사외이사와 CEO의 학연·지연, 출결사항, 이사회에서의 질문 횟수, 발언시간 등의 객관적인 지표들이 주주총회에 보고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