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더(Heather), 에밀리(Emily), 월터(Walter)….

영어권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선 배우 헤더 그레이엄과 에밀리 블런트가 인기를 얻으며 익숙해진 이름이다. 몇 년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영화도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 또 한가지,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삼남매들의 영어 이름이 바로 헤더, 에밀리, 월터다.

조원태 부사장은 발음이 ‘원태’와 유사한 ‘월터(Walter)’라는 영문 이름을 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현아’와 초성이 비슷한 ‘헤더(Heather)’를 선택했다. 삼남매 중 막내인 조현민 상무는 ‘에밀리(Emily)’라는 영문 이름을 쓰고 있다. 조 상무는 본인의 트위터 계정도 ‘에밀리 조(Emily Cho)’라는 영문 이름으로 운영한다.

대한한공의 조원태(왼쪽) 부사장, 조현아(가운데) 전 부사장, 조현민(오른쪽) 상무.

주요 기업인들은 어떤 영문 이름을 쓸까? 이름이 알파벳 ‘J’로 시작하는 경우에 영문 이름을 ‘제이(Jay)’나 ‘J’로 쓰는 사람이 많다. 넥슨의 김정주 회장은 외국 사람을 만나면 ‘제이 정주 김(Jay Jungju Kim)’이라고 적힌 명함을 준다. 예스코의 구자철 회장도 ‘제이 구(Jay Koo)’라는 이름을 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영문 이니셜 ‘비제이(B.J)’로,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는 ‘티제이(T.J)’로 불리기도 했다.

소셜커머스 쿠팡의 김범석 대표는 영문 이름의 가운데 글자만 따서 ‘김범(Kim Bom)’ 혹은 ‘범김(Bom Kim)’이다.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치 에이치 최(Chi. H. Choi)’란 이름을 썼다. 아마 사내에선 ‘치(Chi)’라고 불렸을 것이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안철수연구소를 경영할 당시 ‘철수’와 발음이 비슷한 ‘찰스(Charles)’를 영문 이름으로 썼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한 기업인들은 영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다. LG전자의 정도현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장은 ‘데이비드 정 (David Chung)’이고, 현대카드의 정태영 사장은 ‘테드 정(Ted Chung)’이다. 티켓몬스터의 신현성 대표는 ‘대니얼(Daniel)’이다. 티켓몬스터 사내에선 대니얼의 약칭인 ‘댄(Dan)’을 따서 ‘댄표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 대표가 직접 출연하는 사내 방송 프로그램의 이름도 ‘댄스노트(Dan’s note)’다.

특이한 철자를 쓰는 경우도 있다. 카카오의 이석우 대표는 여권상 영문 이름을 ‘Sirgoo’라고 풀어 쓴다. 영문 발음대로 쓰면 ‘써얼구’다. 일반적으로 ‘석우’라는 한글 이름에 ‘suk’, ‘seok’ 등의 철자를 쓰는 것을 감안하면 이 대표는 개성 넘치는 독특한 방식으로 ‘석’자를 표기한 셈이다.

한국계 교포 출신 사장들은 영문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두산인프라코어 밥캣의 스캇 박(Scott Park) 사장과 삼성전자 오픈이노베이션센터 데이빗 은(David Eun·한글이름 은상혁) 사장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상당수 기업인들이 특별히 영어 이름을 만들지 않고 자신의 이니셜을 영문 이름으로 쓴다. 주변 사람들이 부르기 편하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해외 언론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제이 와이 리(Jay Y. Lee)’로 표기한다. 간단하게 ‘JY Lee’로 쓰는 경우도 있다. 그의 명함을 보면 영어 이름이 ‘Jae Youg Lee’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신종균 사장은 흔히 ‘제이 케이 신(J.K. Shin)’으로 불린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 모두 ‘종균(Jong-kyun)’이라는 본명과 ‘J.K Shin’을 같이 쓰고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서명을 할 때에도 자신의 이니셜인 ‘엠케이(M.K)’를 가져다 쓴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정·재계에서 ‘엠제이(MJ)’라는 약칭으로 불리지만, 실제로 해외서 MJ로 불리는 일은 드물다.

삼성전자 이재용(왼쪽) 부회장과 신종균(오른쪽) 사장.

요즘 웬만한 기업들은 모두 한국보다는 글로벌 시장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주요 경영자들이 영어 이름을 만드는 경우가 늘었다. 일부 기업은 아예 사내에서 사장님 같은 직책, 직급 대신 영어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다음카카오다. 다음카카오 김범수 의장의 영어 이름은 브라이언이다. 다음카카오 직원들은 김 의장을 브라이언이라고 부른다. 형식이나 예의 범절을 포기하자는 회사 분위기 때문에 회사 직원 모두가 영어 이름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영어 이름으로 의사 소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