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사진)은 1995년 삼성복지재단 보육사업팀에 입사하면서 삼성그룹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삼성 일본 본사, 삼성전자를 거친뒤 2001년 8월부터 호텔신라 기획팀장으로 근무하며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 사장이 호텔신라 기획팀장으로 근무할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이 사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두 달 가까이를 호텔신라에 머물렀다. "아버지(이건희 회장)를 가장 많이 빼닮아 이 사장에 대한 애정이 깊다"던 삼성그룹 관계자의 평가가 사실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사장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잠룡'처럼 성실하고 묵묵히 일을 배워나갔다. 하지만 이부진 사장은 삼성 임원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정도로 승부 근성이 뛰어났다고 한다. 이 사장은 호텔신라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했을 때 호텔신라 케이터링 서비스(행사·연회 등을 대상으로 음식을 공급하는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서비스 현장을 하루 종일 지키고 직원들의 동선을 스케치해 대안을 제시했을 정도로 '완벽'을 추구했다.

호텔신라 임원으로 승진했을 당시 이부진 사장의 모습.

이 사장이 2004년 호텔신라 임원으로 진급할 당시에는 그룹 신임 임원 교육에 홍일점으로 참석해 극기 훈련까지 적극적으로 마치는 근성을 보여줘 연배 많은 동기 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호텔신라 상무 시절이던 2007년에는 아이를 출산한 지 3일 만에 출근해 업무를 처리했다. 호텔신라를 리모델링할 때는 유통, 인테리어 등 호텔과 관련된 공부를 하느라 새벽 3시에 직원에게 업무 메일을 보냈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또 외국 유학 경험이 없지만 호텔 경영을 위해 영어와 일본어, 프랑스어까지 3개 국어를 완벽하게 익힌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는 이런 딸의 노력을 높이 샀고, 2009년 전무로 승진시켜줬다.

주변에서는 이 사장의 이런 행동에 대해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보란 듯이'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비록 결혼 문제로 아버지의 속을 썩혔지만 일은 제대로 해 인정을 받겠다는 욕구의 발현이라는 것이다.

이 사장이 신라호텔 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할 당시 지인에게 "언론이 왜 나에게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경영으로 평가받고 싶은데, 언론은 나를 가십거리로 다룬다"고 아쉬움을 토로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루이비통 인천공항점.

이 시장의 노력은 경영 성과로 이어졌다. 호텔신라 매출은 이 사장이 취임한 2010년 1조4524억원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2013년에는 2조2970억원의 매출과 86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014년에는 2조9089억원의 매출과 138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2015년 1분기에도 8285억의 매출과 33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순항중이다.

이부진 사장이 서비스부문 사장직을 맡고 있는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도 전년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9%, 92% 급증했다. 이 사장이 맡은 식자재 및 유통부문 매출은 9.7%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26.5%나 증가했다. 이 사장이 담당인 레저부문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여파에도 매출이 증가했고, 건설부문은 부동산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6.8%의 매출 성장과 5% 이상의 이익률을 유지했다.

하지만 아직 아쉬운 점도 있다.

이부진 사장이 공을 들여 유치했던 인천공항 루이비통 면세사업권이 롯데로 넘어간 것이다. 호텔롯데가 인천공항 탑승동 전체 전 품목(DF8)을 포함해 여객터미널 동편의 향수·화장품(DF1)과 주류·담배(DF3), 여객터미널 중앙의 피혁·패션(DF5) 사업권을 따내면서 호텔신라가 보유했던 루이비통 면세점(DF5) 사업권이 호텔롯데 차지가 됐기 때문이다.

이 사장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중국 호텔 비즈니스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호텔신라는 2006년 4월 중국 쑤저우에 '쑤저우 신라호텔'을 개관했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