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하다 은퇴한 장모(64)씨는 봉제 공장을 운영하던 2006년 명일동에 5억7000만원짜리 집을 사면서 주택담보대출 3억2400만원을 받았다. 사업 자금이 늘 빠듯한 상황이어서 원금을 갚을 엄두는 내지도 못했고 이자만 근근이 갚아가던 그는 생활비가 모자라 새마을금고에서 6000만원 등 추가로 신용대출을 받았다. 지난해 부진하던 사업을 접고 국민연금에서 나오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는 장씨는 집값이 약 3억6000만원으로 떨어져 집을 팔아도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는 반복되는 대출로 인해 원금과 이자가 계속 불어나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지난해 신용회복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장씨처럼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지만 원금은 손도 못 대고 이자만 갚는 가구가 190만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권만 따지면 전체 주택담보대출 294조3000억원 가운데 이자만 갚는 비율이 75%로 약 220조50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렇게 이자만 갚는 가구의 부채·소득 구조가 원금을 갚아나가는 가계보다 훨씬 취약하기 때문에 금리 인상 등이 일어날 경우 먼저 충격을 받고 위기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래픽=김현국 기자

본지가 현대경제연구원에 의뢰해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데이터(전국 2만 가구 대상) 등을 분석한 결과 이자만 갚는 가구의 연간 가처분소득은 4121만원으로 원금도 갚는 가구(4275만원)보다 154만원 정도 낮았다. 여기서 가처분소득은 벌어들인 돈에서 대출 상환분 등을 뺀 '실제로 소비할 수 있는 돈'을 말한다. 통상 원금을 같이 갚는 가구는 달마다 떼는 돈이 많아서 가처분소득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실제로는 이자만을 갚는 가구가 손에 쥐는 돈이 더 적다는 얘기다. 반면, 이자만 갚는 가구의 빚은 1억1831만원으로 원금을 갚고 있는 가구(9459만원)보다 2370만원이나 많았다. 이자만 갚는 가구가 소득은 적으면서도 빚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조규림 연구원은 "이자만 갚는 사람 중엔 원금 상환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득이 낮고 원금 상환할 돈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이자만 내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빚이 줄어드는 이른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계층인 셈"이라고 말했다.

◇'빚의 약한고리' 5060 하우스푸어

특히 집값이 비쌀 때 이를 담보로 돈을 빌린 후 원금을 갚지 않아온 50~60대 하우스푸어(무리한 대출로 집을 마련했으나 대출 때문에 가처분소득이 줄어 빈곤하게 사는 가구)는 소득이 제자리인 가운데 빚이 계속 불어나고 있어 위험한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우려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같은 자료를 이용해 5060 하우스푸어 부채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408.8%로 40대 이하 하우스푸어(255%)나 하우스푸어가 아닌 50대 이상(273%)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금리가 계속 낮아지면서 다른 집단들은 가처분소득 대비 총부채 비율이 모두 떨어졌지만, 5060 하우스푸어만은 이 비율이 49%포인트(2012년 359%→2014년 408%)나 올라갔다. 전체 부채 규모 역시 5060 하우스푸어 가구가 평균 1억3206만원으로 다른 집단을 압도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50~60대 하우스푸어는 36만 가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경제연구원 시뮬레이션 결과 금리가 지금보다 1%포인트 올라가면 5060 하우스푸어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420%로, 11%포인트 상승해 이들이 빚을 갚기는 훨씬 더 어려워질 것으로 추산됐다. 다른 집단에선 이 비율이 3~5%포인트 올라가는 수준이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한국도 이에 맞춰 금리를 올릴 경우, '5060 하우스푸어'가 약한 고리가 되어 한국 금융시스템에 충격을 줄 소지가 적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