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부처가 나눠 갖고 있는 연간 18조원의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을 총괄 관리하는 대통령 직속 조직이 신설된다. 또 정부의 R&D 사업을 평가하는 각 부처 산하 18개 전문관리기관도 하나로 통폐합된다. 부처 간 중복 투자를 막고 '돈 되는 기술'에 정부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취지다.

4일 기획재정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13일 열리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범부처 R&D 혁신 방안'을 발표한다. 혁신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정부 R&D 예산은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되는 '과학기술정책원'(가칭)에서 관리한다. 현재는 각 부처가 R&D 예산안을 마련하면 미래부가 이를 취합, 기재부와 협의해 나눠주는 구조다. 각 부처가 제각각 R&D를 추진하면서 중복 투자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부처 간 칸막이 때문에 국가적 대형 과제도 추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태양광 사업, 로봇 사업 등은 여러 개 부처에서 중복 투자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신설될 과학기술정책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었으나, 현 정부가 폐지했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사실상 같은 역할이다. 당시의 조직 개편이 졸속으로 진행됐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R&D 평가시스템도 전면 개편된다. 각 부처 산하에 있는 18개 전문관리기관을 통폐합한 'R&D기획평가원'(가칭)이 설립된다. 한국연구재단·정보통신산업진흥원(미래부), 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너지기술평가원(산업부),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중기청), 보건산업진흥원(복지부), 환경산업기술원(환경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국토부), 콘텐츠진흥원(문화부) 등이 통폐합 대상이다. 기재부 측은 "전문관리기관이 형식적으로 부처 입맛에 맞는 평가만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밝혔다.

정부가 R&D 예산과 평가시스템 혁신에 나선 것은 돈을 쓰는 만큼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의 정부 R&D 예산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기준 4.39%로 세계 1위다. 하지만 공공 연구 기관의 R&D 생산성은 1.80%로, 미국(10.83%)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국가 R&D 예산으로 등록된 특허 중 70%는 아무도 활용하지 않는 '장롱 특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업인 참여를 확대하는 등 돈 되는 기술 개발에 예산이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혁신 방안이 실현되려면 넘어야 할 벽이 많다. 미래부 관계자는 "전문관리기관들은 각자 설치된 근거법이 따로 있어서 법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이를 통폐합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