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워 저 스 젠 와이타오(給我這十件外套·이 점퍼 10벌 주세요)."
지난달 초 두툼한 전대(纏帶)를 허리에 두른 한 40대 중국인 남자 관광객이 서울 신촌에 있는 이화여대 캠퍼스 내 기념품점에 나타났다. 그는 배꽃 모양의 이화여대 로고가 수놓여 있는 학교 점퍼 10벌을 고르더니 학교 로고가 인쇄된 머그컵, 볼펜, 공책 등을 쇼핑백에 한 움큼 쓸어 담았다. 그는 한 벌에 7만3000원 하는 이화여대 점퍼 등 기념품 값 100만5000원을 계산대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나서 쇼핑백을 들고 전세 관광버스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 쪽으로 사라졌다.
이곳에서 2년째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김모(25)씨는 "중국인 관광객의 씀씀이가 크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기념품을 한 번에 100만원어치 사가는 외국인 관광객은 중국인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화여대 캠퍼스가 중국인 관광객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 잡으면서 덩달아 학교 기념품점도 호황(好況)을 누리고 있다. 지난해 7월 중국관영 CCTV가 이화여대 캠퍼스를 '한국에 방문하면 꼭 가야 할 관광지 9선(選)' 중 하나로 꼽은 뒤부터 매출이 서서히 오르더니 올해 1월부터는 매출액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 덕분에 교내 기념품점 매출이 매달 두 배씩 늘고 있다"고 했다. 이화여대에 따르면, 2013년 6월엔 중국인 관광객 47명이 이화여대를 찾았지만 올해 2월엔 1105명이 찾았다.
중국인 관광객이 서울 시내 대학 캠퍼스 중 유독 이화여대를 즐겨 찾는 이유는 뭘까. 학교 관계자들은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화여대를 상징하는 배꽃(梨花)이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CCTV는 지난해 방송에서 "1887년에 개설된 한국의 첫 번째 여자대학으로 100년 동안 여학생만 받아왔으며 6명의 영부인과 수많은 여자 정치인 등을 길러냈다"면서, "교화(校花)인 배꽃이 피는 봄이 특히 아름답다"고 소개했다.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유성진 교수는 "이화(梨花)의 중국어 발음(리화)이 '돈이 불어나다'는 뜻의 '리파(利發)'와 비슷해 중국에서 배꽃은 부(富)와 복(福)을 상징한다"며 "중국인 관광객의 유별난 '이대 사랑'은 이화란 단어가 갖는 상징 덕도 크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기념품점이 중국인 관광객 '특수(特需)'를 누리고 있지만 학교 측엔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겼다. 이화여대를 찾는 일부 중국인 관광객이 수업 중인 강의실에 불쑥 들어오거나, 전경(全景) 사진을 찍는 척하며 몰래 여대생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학 인문대 3학년 이모(21)씨는 "주로 옷맵시가 좋은 학생을 골라 몰래 사진을 찍어가는 중국인 관광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며 "한 중국인 관광객이 나중에 자기 블로그에 '한국 여대의 여대생들'이라는 제목으로 이대 여학생을 찍은 사진들을 대거 올려놓아 학교가 발칵 뒤집힌 일도 있었다"고 했다.
학생들의 불만 제기가 이어지자 이화여대는 최근 중국 국가여유국과 국내외 여행사에 '학교의 교육 환경을 보호해달라'는 협조 공문을 보냈다. 학내 수업 및 연구 공간에 함부로 출입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단속 요청'이었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학교를 단체로 방문할 땐, '강의실에 무단 출입하거나 학생들 동의 없이 사진을 찍어선 안 된다'고 사전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