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큘러스(Oculus)의 '크레센트 베이(Crescent Bay)'

뭐든 처음 경험하면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는다. 가상현실(VR) 기기 '크레센트 베이(Crescent Bay)'를 직접 써보니, 긱(Geek, 괴짜)들의 장난감이라는 선입견이 깨졌다. 페이스북이 기기 제조회사인 오큘러스(Oculus) VR를 2조원이나 산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영상 체험 분야에 여전히 진화할 영역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큘러스는 2012년 '오큘러스 리프트 DK1', 2014년'오큘러스 DK2'를 내놓았다. 삼성전자와의 제휴로 '갤럭시노트4'와 연동되는 '기어 VR'과 갤럭시S6와 연동되는 '기어 VR2'를 각각 2014년, 2015년 내놓았다.

오큘러스의 크리센트 베이는 개발자나 얼리어답터(early adoptor)용 만들어진 기존 제품과 달리 일반 소비자를 겨냥해 만들어졌다. 현재는 시제품 상태이며 올해 중 '오큘러스 리프트CV1'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발매될 예정이다.

오큘러스VR 한국법인이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만든 크레센트 베이 체험장은 가로 3m, 세로 3m의 암실(暗室)이었다. 기어VR2 등은 앉아서 체험하는 형태였지만, 크레센트 베이는 서서 체험하는 것이 달랐다.

크레센트 베이 역시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 형태였다.
기어VR2를 체험할 때는 안경은 벗고 별도 오디오 장비를 껴야 했다. 크리센트 베이는 안경을 벗을 필요도 없었고 오디오 장비도 일체형이었다. 조금 더 진화한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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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큘러스(Oculus)의 '크레센트 베이(Crescent Bay)'
크레센트 베이 착용 모습

암실에서 도우미가 크레센트 베이 착용을 도와줬다. 카메라 한 대가 설치돼 있었다. 크레센트 베이의 앞면과 옆면에 부착된 적외선 센서(하얀 점 형태로 여러 개다)와 카메라가 정보를 주고받으며 사용자의 움직임을 인식했다.

크레센트 베이를 착용하니, 공룡 '티라노 사우르스'가 보였다. 티라노 사우르스의 주변을 걸어 다니며 공룡을 관찰하는 것이 첫 번째 콘텐츠였다. 두 번째는 '미니어처 빌리지'라 불리는 아기자기한 동화나라를 탐험하는 것이었다.

다음에는 망토를 두른 거대한 괴물을 만났다. 도우미가 "괴물을 통과해보라, 통과해 앞으로 전진해보라"고 했다.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계속 뒷걸음을 쳤다. 그런데 바로 아래가 수백 미터 협곡이었다. 저 멀리 산풀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낭떠러지에 서 있었던 것이다. 뒷걸음치다가 실제 5cm 높이 판에 걸렸다. 정말 아래로 떨어지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결국 도우미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크레센트 베이를 서서 체험하는 이유를 알았다. 기어VR은 고정된 자리에서 둘러 볼 수 있다. 크레센트 베이는 앞뒤, 옆으로 움직이면서 나를 둘러싼 환경 360도를 체험할 수 있었다.

적외선 센서와 카메라 등을 이용해 사용자의 방향을 모두 감지해내는 포지셔널 트래킹(positional tracking) 기술 덕분에 가상 공간을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이다. 또 꽃을 보려고 고개를 숙이면 더 가까운 거리에서 확대된 꽃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콘텐츠는 실제 크기의 티라노 사우르스가 성큼성큼 다가오며 체험자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행사 관계자는 "보통 여성 체험자들은 소리 지르며 암실에서 뛰쳐나온다"고 말했다. 기자도 공룡이 침을 여러 번 뱉기 시작하자, 크레센트 베이를 벗어 버렸다.

현재까지 공개된 크레센트 베이의 제원을 보면, 디스플레이 주사율 90헤르츠(Hz), 시야각 100도이며 360도 포지셔널 트래킹 기술과 3D 스페이셜 사운드를 탑재했다. 또한 올레드(OLED) 패널을 사용해 응답속도를 높였다. 또 크레센트 베이는 초당 90프레임이 들어가지만 VR은 초당 60 프레임이어서 크레센트 베이가 몰입감이 높았다.

3D 스페이셜 사운드는 가까운 거리에서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먼 거리에서는 소리가 작게 들리는 기능이다.

기어VR 이노베이터 에디션(VR1) 착용 모습

크레센트 베이는 PC기반의 제품이다. 기어VR보다 훨씬 더 좋은 고해상도를 체험할 수 있으며, 포지셔널 트래킹 기술 덕분에 가상세계 속에서 돌아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외부 카메라 등 부대 장비를 설치해야 하고 이동 공간도 필요해 간편하게 즐기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크레센트 베이와 기어VR을 둘 다 경험해보니,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4'나 '갤럭시S6'를 구입했다면, 기어VR의 구매에 대해서 고민해 봐도 되겠다는 것이다. 기어VR의 경우 모바일 기반이기 때문에 헤드마운트 부문에 스마트폰을 장착하기만 하면 된다. 또 무선이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 가능했다.

팔머 럭키 오큘러스 창업자는 "VR 기기를 이용해 이집트 피라미드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고 지구에서 공룡이 활보하던 선사 시대에 가 볼 수도 있다면서 게임 외에 의료계, 교육계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크레센트 베이를 이용해 가상 공간을 돌아보니,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