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이 미국 화학기업인 듀폰에 약 300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6년 이상 끌어오던 고강도 아라미드(Aramid·키워드) 섬유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코오롱은 듀폰에 대한 배상금 지급과 별도로 미국 법무부에 약 900억원의 벌금을 내는 조건으로 형사소송에서도 벗어났다. 이에 따라 코오롱이 향후 5년 내에 5조원대 규모로 성장이 예상되는 아라미드 시장을 본격 공략할 길이 열렸다.
◇코오롱, 배상금·벌금 3850억원 지급 합의
코오롱은 지난 30일(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연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듀폰에 2억7500만달러(약 2940억원)를 배상금으로 지급하고 민사소송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또 코오롱이 영업비밀 침해 모의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8500만달러(약 910억원)를 내는 대신, 미국 검찰이 절도와 사법 방해 혐의에 대해선 기소를 취하하는 유죄인정합의(plea agreement)를 통해 형사소송도 종결짓기로 했다. 코오롱은 손해배상금과 벌금을 앞으로 5년에 걸쳐 분할해서 낸다. 1심 재판에서 9억1990만달러(약 9840억원) 배상 판결을 받은 것에 비하면 배상 금액이 크게 줄었다.
듀폰은 합의에 만족한다는 반응이다. 스테이시 폭스(Fox) 듀폰 부사장은 "소송 결과는 듀폰의 영업 기밀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여러 산업에서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혁신적인 과학기술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오롱, 소송 종결이 도약 계기 될 것"
코오롱이 합의를 통해 소송을 끝내기로 한 것은 더 끌어봐야 실익(實益)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코오롱은 2005년 '헤라크론'이라는 브랜드로 아라미드 시장에 본격 진출했지만, 법적 다툼이 장기화하면서 생산과 판매에 막대한 차질을 빚어왔다. 아라미드 섬유는 미국이 세계 최대 시장이지만, 소송이 제기된 2009년부터 미국 수출길이 사실상 완전히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09년 800억원대이던 헤라크론 매출액은 지금도 연간 800억원대에서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타이어코드지와 에어백 등 매출 비중이 큰 다른 주력 제품까지 민·형사소송 여파로 미국에서 가압류되는 경우가 속출했다. 박동문 코오롱인더스트리 사장이 "헤라크론과 관련한 민·형사 분쟁을 해결하게 돼 기쁘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코오롱은 소송 종료에 따라 세계 아라미드 섬유 시장을 본격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연간 2조원 정도인 아라미드 시장 규모는 2020년엔 5조원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듀폰과 일본 데이진이 각각 시장을 40% 안팎 차지하고 있지만, 코오롱도 두 회사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마케팅 전략을 잘 세우면 성장 가능성이 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아라미드 소송으로 발목이 잡혀 있던 다른 주력 제품의 미국 수출도 다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손영주 교보증권 연구원은 "코오롱으로선 족쇄가 풀린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아라미드 섬유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만큼 코오롱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라미드 섬유
미국 듀폰이 1970년대 초 개발한 고강도·고내열성 섬유.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강도(强度)가 5배나 높고, 500도 이상 열에도 타거나 녹지 않는다. 방탄·방한·방열복 소재로 주로 사용되며, 항공기나 우주선에도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