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화가 스테판 마트(Stefan Mart)가 그린 돈키호테와 산초


"돈키호테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거나 그 일부를 쓴 것이다."(르네 지라르)
"전 세계를 뒤집어 봐도 '돈키호테'보다 더 숭고하고 박진감 있는 픽션은 없다."(도스토예프스키)

세계 유명 작가들이 첫 손에 꼽는 소설 돈키호테. 올해로 이 책 2권이 나온 지 400주년이 됐다. 때마침 세계적인 돈키호테 전문가인 호세 마리아 파즈 가고(José María Paz Gago, 57) 교수가 방한해 고려대와 건국대, 건명원, 한국영상문화학회 등에서 강연했다. 현재 스페인 라코루나 국립대 비교문학 교수인 그는 2004~2014년 세계기호학회 사무총장을 지낸 기호학자이기도 하다.

파즈 가고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돈키호테에 대해 “특히 지금처럼 유토피아 정신을 상실한 시대에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세계 문학 작품 중에 그림이나 공연, 영상 같은 시각 예술로 가장 많이 옮겨진 것이 돈키호테”라면서 “과거의 작품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작품이며 미래에도 살아남을 작품”이라고 했다. 그와의 인터뷰와 강연을 소개한다. 인터뷰는 지난달 18일 고려대에서 했다. 통역은 한국영상문화학회 회장이자 세계기호학회 부회장인 김성도 고려대 교수가 맡았다.

호세 마리아 파즈 가고 교수(사진 왼쪽)와 김성도 교수

-한국은 처음인가? 어떻게 오게 됐나?

처음이다. 한국영상문화학회와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초청으로 왔다. 올해가 돈키호테 2권이 나온 지 400년이 되는 해다. 오랫동안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연구해온 학자, 특히 기호학자로서 그 의의를 알리고 의미를 나누기 위해 왔다.

-돈키호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어릴 때부터 흠뻑 빠져 살았다. 열세 살쯤 중학생 시절부터 돈키호테를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대학에 간 뒤로는 돈키호테를 직접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박사 학위도 돈키호테 연구로 받았다. 돈키호테를 기호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내용의 논문을 썼는데 10년이 걸렸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돈키호테는 어떤 책인가?

스페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인생에서 한 번쯤 푹 빠져볼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내가 어린 시절엔 그랬다. 돈키호테란 작품이 바로 근대 소설의 효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갈수록 사람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스페인에서도 전보다 열기가 덜하다.

이런 현상은 유럽 전반의 대학 교육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고전 교육을 예전보다 경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 때문에 고전 읽기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고전 교육의 비중이 줄고 있는 이유는 뭘까?

문학 작품 자체를 전보다 덜 읽는다는 얘기다. '스펙터클의 사회'를 쓴 프랑스 사회학자 기 드보르와 페루 출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이런 말을 했다. "현대 사회의 일반 대중이 스펙터클한 볼거리들과 텔레비전, 자극적인 볼거리와 이미지, 영상, 기술 등에 빠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문학 작품을 덜 읽게 된다."

-지금 우리가 돈키호테를 읽어야 할 이유는 뭔가?

내가 생각하는 돈키호테의 장점 중 하나는 '시각성'이다. 돈키호테 원작을 읽는 사람은 줄었다지만, 지금까지 영화로 제작된 것만 해도 300편이 넘는다. 세계 문학 작품 중에 그림이나 공연, 영상 같은 시각 예술로 가장 많이 옮겨진 것이 돈키호테다.

그만큼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수히 많고, 오늘날과 같은 영상 시대에도 잘 맞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돈키호테는 과거의 작품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작품이며 미래에도 살아남을 작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돈키호테는 어떤 인물인가?

신분은 이달고다. 스페인 하급 귀족이다. 제일 빈곤한 귀족층이었다. 또한 독서광에다 이상주의자였다. 유토피아를 꿈꾼 인물이었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분명한 건 그가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정의를 가져다 주려 했고 가난하고 억압 받는 사람을 위해 싸우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그는 50세가 넘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집을 나갔다. 불의와 억압으로 가득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간 거다.

그런 점에서 지금처럼 유토피아 정신을 상실한 시대에 특히 읽어야 할 작품이다. 현재성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돈키호테의 문학적인 성취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나오는 일화들이 워낙 풍부해서 시종 웃으면서 읽어낼 수 있는 근대 소설이다. 줄거리를 이해한 후에 다시 읽어보면 유토피아에 대한 추구, 삶의 보편적인 진실처럼 심오한 메시지까지 드러낸다.

읽는 사람에 따라 분수에 맞게 다른 감동을 준다. 마냥 재밋거리로도 읽을 수 있고, 줄거리를 보면서 읽을 수도 있고, 심오한 삶의 진실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얘기가 바로 돈키호테다.

돈키호테 작품이 가진 메시지의 보편성은 그것이 가진 유토피아, 이상주의, 근대성, 그리고 현재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에서 읽어도 그 시대에 맞게 읽어낼 수 있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

-돈키호테가 이후 서양 문학에 끼친 영향은?

돈키호테 이전 서사 문학을 보면 한결같다. 영웅호걸이 나오고 늘 승리를 거둔다. 돈키호테에 와서 처음으로 주인공이 실패를 맛본다. 그것도 실패를 거듭한다. 처음으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실주의적인 인간이 등장한 것이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현실적인 조건, 그 딜레마를 모두 인정한다.

그는 살아있는 인물이고 생동하는 인물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반 영웅적(antihero)이라고도 하겠다. 기존 문학 작품에서 보듯 언제나 승리하는 위대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실패하는 모든 인간을 보여준다. 손쉽게 승리하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조건을 보여준다. 마치 우리들 같다. 늘 실패를 거듭하고 실패를 실험하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돈키호테 이후 서양 문학이 처음으로 상상의 세계를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돈키호테 이야기는 결국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제정신'을 찾는 것으로 끝이 난다. 세상을 바꾸지 못한 것 아닌가? 그래도 의미가 있나?

그렇다. 돈키호테는 원래 성공하는 사람이 아니다. 끊임없이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끊임없이 좌절하고 실패했다. 처음으로 처절하게 세상에 맞서지만 실패한 주인공이다. 그 점에서 근대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그렇게 처절히 실패하면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 속에서도 끝까지 꿈을 위해 싸우는 모습 자체에 의미가 있다.

-꿈에 젖어 사는 돈키호테와 대조를 이루는 인물이 산초다. 그에 대한 생각은?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우리 삶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허구의 인물이 아니란 얘기다. 산초 역시 그렇게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적 인물이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연재됐던 만화가 플릭스의 ‘돈키호테’

두 사람은 지극히 대조적이다. 돈키호테는 상상적, 시적인 인물인 반면, 산초는 산문적인 인물이다. 돈키호테가 모든 세상을 변형해서 본다면, 산초는 곁에서 늘 그 과대망상을 교정한다.

시각적으로도 두 사람은 기막힌 대비를 이룬다. 서양 문학사 전체에서 이렇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캐릭터는 거의 없다. 겉모습부터 그렇다. 돈키호테는 빼빼 마르고 키가 크며 산초는 뚱뚱하고 작달막하다. 한 사람은 이상을 향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교정한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돈키호테’

햄릿, 베아트리체, 파우스트 등 서양 문학사의 위대한 작가들이 만들어 낸 유명 문학 작품 주인공을 한 자리에 모아놓는다고 해 보자. 이들을 알아보기란 생각보다 어려울 거다. 하지만 돈키호테와 산초가 있다면? 한눈에 알아보고도 남을 것이다.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사람이 콤비를 이루니 인상이 굉장히 오래 간다.

그런데 돈키호테 소설 전체를 보면, 돈키호테와 산초 사이에 서로 변형이 일어난다. 원래 지극히 이상주의적이고 꿈 속에 살던 인물 돈키호테가 점차 현실적인 인물이 되어간다. 반대로 산초는 갈수록 돈키호테화(化)된다. 이렇게나 대조적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변화하는 모습이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여기에서 세르반테스의 천재성이 잘 드러난다고 본다.

-돈키호테에 대한 평가는 그 동안 어땠나? 변화가 있었나?

처음 출간된 17세기에는 작품의 유머러스한 면, 코믹한 면이 높게 평가됐다. 아주 코믹하면서도 세련된 작품이란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18세기까지도 그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독일 낭만주의가 번창했다. 그러면서 비로소 돈키호테의 초월성, 근원적인 메시지를 파악하게 됐다. 돈키호테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던 인물이다. 구원의 메시지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 점을 독일 낭만주의가 드디어 '이상주의(idealism)'로 해석하게 된 것이다.

슈뢰거를 비롯한 독일 당대의 최고 지성인들이 돈키호테를 주목하게 됐다. 돈키호테가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하고 세상을 구원하겠다며 집을 나선 건 당연히 이상주의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 독일 낭만주의는 돈키호테 속에서 현실에서 벗어나는 초월성의 개념을 처음으로 읽어냈다. 그런 면에서 돈키호테가 전하려고 했던 진정한 메시지의 전달은 19세기에서야 독일 낭만주의에 의해 실현된 거라고 하겠다.

-돈키호테는 패러디로도 유명한데?

돈키호테 자체가 당대의 중세 기사도 소설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동시에 당대에 횡행했던 부당함, 억압받는 사람들과 정치적 편견까지 다 풍자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풍자의 바닥에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책에는 숱한 유머가 가득하지만 돈키호테는 늘 사람을 도우려 한다. 즉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선(善)함'을 가진 인물이며 선을 실천하려는 인물이란 거다.

-돈키호테를 패러디한 작품들로는 어떤 게 있나?

가장 인상 깊은 작품으로는 러시아 그리고리 코진체프(Grigory Kozintsev)가 감독한 영화 돈키호테(1957)가 있다. 줄거리는 원작에 상당히 충실한데, 약간의 상징적인 장면들을 바꿔 넣어 원작보다 심각한 느낌을 강조했다. 가장 유명한 풍차 전투 장면이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동영상: 그리고리 코진체프 감독의 1957년 영화 돈키호테 중 일부)

돈키호테에 가장 열광하는 나라 중 하나가 러시아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러시아 문호들이 세르반테스를 굉장히 흠모했다. 그 영향이 남아 있다. 지금도 초등학생들이 돈키호테를 즐겨 읽을 정도로 사랑 받고 있다.

-러시아에서 돈키호테 열기가 높다는 건 의외다.

물론 스페인을 따라갈 정도는 아니다.(웃음) 차이가 있다면, 러시아는 돈키호테 작품에서 나타난 비극성에 주목하는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키호테가 역사에 의해 응징 받고 늘 실패로 끝나고 마는 그런 비극성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이상주의나 유토피아주의 같은 긍정적인 면을 주목한다. ‘돈키호테 같다’는 말은 ‘이상주의자’ ‘유토피아주의자’라는 의미로 쓰인다.

-올해가 돈키호테 2권 출간 400주년이다. 본래 저자는 1권까지 쓰고 있다가 다른 아류작이 나온 걸 보고 2권을 내게 됐다던데?

그렇다. 원래는 1권만 쓰려고 했다가 모작이 나오면서 분개해서 쓴 게 2권이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세르반테스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1권에선 중세풍의 구술이나 대화가 많이 나온다. 반면, 2권에서는 1권과 전혀 다른 기법들이 등장한다. 모작이 나왔기 때문에 세르반테스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품 세계를 펼치게 하는 동기를 부여 받았다. 2권 자체가 1권에서는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이야기가 되는 거다. 2권에 이르러 다양한 근대적 기법들이 나타나는 계기가 됐다.

-작가 세르반테스는 젊은 시절 시인이었다. 같은 시인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시는 어떻게 평가하나?

세르반테스는 '좋은' 시인이긴 했지만 '탁월한' 시인은 아니었다.(웃음) 희극도 썼지만, 탁월하지는 않다. 세르반테스의 천재성은 무엇보다 그의 서사 작품에서 나타났다고 본다.

-최근 세르반테스의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화제가 된 걸 외신에서 봤다.

하나의 증거나 단서 정도로 보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사실 마드리드에서 약간 정치적으로 다룬 느낌이 든다. 수천 구 이상의 시신이 발견됐던 곳인데, 뼈 몇 조각을 맞춰서 될 수는 있겠지만. 미디어 노이즈를 이용해 세르반테스에 대한 관심을 좀더 끌어내 보려고 한 것 같다.

설령 그게 진짜 세르반테스 시신이라고 하더라도, 진짜 중요한 유산은 유골이 아니라 지적 유산이고 작품 아니겠나.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와 동시대 작가로 셰익스피어가 있다. 둘 사이의 교류나 상호 영향은?

기가 막힌 우연인데 동시대 인물인 두 사람이 같은 날(1616년 4월23일)에 죽은 걸로 알려져 있다. 내년이면 사망 400주년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알고 있었는지를 놓고 아직도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정설은 셰익스피어가 생전에 마드리드 근처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는 얘기다. 셰익스피어가 영국 사절단의 일원으로 스페인을 방문했다는 거다. 당대에 이미 명성을 얻은 두 문호가 한 번쯤은 조우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작년 말 런던에서는 셰익스피어 작품이 하나 발견됐는데, 돈키호테의 내러티브를 각색한 극작품이었다. 제목이 '거만한, 지나친 호기심을 갖고 있는 신부들'이란 뜻인데, 세르반테스의 서사 작품을 드라마로 옮긴 것이다. 이것은 셰익스피어가 세르반테스의 작품을 읽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두 작가가 개인적으로 서로 알았든 몰랐든 더 중요한 사실은 동시대의 두 사람이 서양 문화사의 근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작품 속에서 근대적 인물상을 그려냈다. 세르반테스는 근대 소설의 신기원을 열었고, 셰익스피어는 희곡과 연극의 근대성을 확보했다.

-16세기말 사회의 부당함을 풍자하는 소설이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21세기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그 문제는 내가 책 두 권은 써야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웃음) 일단은 두 가지다. 내가 쓴 책 가운데 ‘경이로운 기계: 돈키호테에 있어서 테크놀로지와 예술’(2007)이라는 책이 있다. 돈키호테 시대에 나타나는 기술과 미술 작품 등에 대해 쓴 것이다. 그 당시를 보면 태엽으로 감아서 앞으로 가는 말 같은 기계가 많이 나온다. 자동화된 기계가 많이 나타나는 시대다. 기술 발전의 강도 차이는 있겠지만 그만큼 돈키호테가 나타난 시대 역시 변화와 변혁의 시기였다.

이 시대에 왜 돈키호테를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돈키호테를 읽으면 사람이 지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문학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읽고 나면 그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돈키호테가 지닌 보편성과 시각적 요소가 워낙 풍부하다 보니 지금도 새로운 실험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2012년에는 중국에서 돈키호테 영화를 마치 무협지처럼 만들었다. 돈키호테가 기사도 소설을 많이 읽어 미치광이가 된 장면을 오늘날 비디오 게임에 빗대 풍자한다. 새로운 시대에도 적용해서 재해석할 만한 요소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다. (동영상: 중국 영화 돈키호테 트레일러)

◆ 건명원 강의 요약

건명원에서 강연 중인 파즈 가고 교수와 김성도 교수

오늘 말씀드릴 것은 돈키호테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유럽, 서양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문학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 확신한다. 17세기 초 스페인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나온 작품이지만 세계에 내놓을 만한 문화적 기념비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문학사의 보편성과 세계 최초의 근대성이라는 차원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돈키호테는 지금까지 300편 이상의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서양 귀스타브 도레를 비롯한 숱한 서양의 일러스트 전문가들이 돈키호테를 한 번씩은 그렸다.

세계적인 영화 감독 오스 웰스도 30년 동안 돈키호테를 어떻게 영화화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강박에 시달리다가 결국 끝을 맺지 못했다고 한다.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돈키호테처럼 많이 인용되고 시각적인 풍요로움을 가진 작품은 거의 없다.

이 그림은 스페인 화가 마리아노 빌라바가 2005년에 그린 ‘돈키호테의 밤’이라는 작품이다. 굉장히 초월적이면서도 돈키호테가 갖고 있는 노스텔지아가 잘 표현됐다. 돈키호테 자체가 '과거'에 대해 엄청난 향수를 지녔던 사람이다.

사실주의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문학 사조다. 19세기 말까지 서양 대문호들이 주창한 장르다. 저 사실주의가 돈키호테에 다 녹아있다. 돈키호테 이전, 즉 고대나 중세에는 소설이 아니라 환상 세계였다. 거인이나 상상의 동물이 나오고 늘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비로소 돈키호테에 와서 처음으로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게 된다. 이런 사실주의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에라스무스와 같은 거장이 미친 시대적 영향력 덕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돈키호테의 근대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바로 '메타(Meta) 문학'이라는 점이다. 소설 안에 엄청나게 많은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을 보면 작품 속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등장한다. 그와 마찬가지다. 돈키호테 역시 서술자가 있으면서 동시에 또 다른 인물을 통해 다시 서술하게 만든다. 커다란 이야기 속에서 작은 이야기, 그 이야기 속의 작은 이야기. 액자 구조라 하는 구조가 돈키호테 안에 다 나온다.
돈키호테는 최초의 근대적 주인공이다. 그 이전 서사시와 기사도 문학에서처럼 승리하는 인간이 아니다. 철두철미하게 실패하는 인간이다. 그럼에도 세상에 맞서서 한 번도 좌절하거나 무릎 꿇거나 자기 꿈을 잃지 않았다. 누군가는 세상과 맞서야 한다. 돈키호테가 바로 그 인물이었다.

돈키호테는 후대 문학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살만 루시디, 도스토예프스키, 플로베르, 프루스트 같은 사람들이 세르반테스를 거의 신격화했다.

플로베르는 "나는 읽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세르반테스를 다 암송했다"고 했다. 말이 안 되긴 하지만.(웃음)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이야말로 인간의 사고에 대한 가장 위대한 표현"이라고 평했다.

다른 문학 작품에도 돈키호테를 반영한 주인공이 숱하게 등장한다. 로빈슨 크루소도 전형적인 돈키호테적 인물이다. 철저하게 '혼자'가 된 인물이다. 우리 역시 세상에 맞설 때 늘 혼자란 생각이 들지 않나. 조너던 스위프트의 걸리버도 그런 인물이다.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도 마찬가지다. 플로베르는 직접 이 작품을 두고 "나의 이야기이지만 또한 돈키호테 이야기"라고 고백한 바 있다. 프란츠 카프카도 돈키호테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 중 하나인데, 그가 쓴 극중 주요 인물은 돈키호테의 표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귀스타프 도레의 돈키호테 삽화

돈키호테는 어떤 면에서 현실적이고 보편적인가. 그는 50대 초반에 실존적 위기를 겪고 집을 나섰다. 그는 독서광이었다. 당시 나돌던 기사도 소설을 게걸스럽게 ‘삼켰다’. 그러다 보니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보편적 사실에 대한 관찰력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문학, 인간, 독서에 대해 굉장히 세밀하게 관찰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라는 보편적인 사실에 주목한다.
중요한 것은 세르반테스가 인간의 현실적인 조건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인간이 끊임없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딜레마를 포착한 작품이다. 그래서 독자 역시 자신의 정체성과 쉽게 동화할 수 있다. 그것이 돈키호테 독법의 큰 매력이다.

왼쪽부터 파블로 피카소, 안토니오 밍고테, 옥타비오 옥캄포가 그린 돈키호테

돈키호테의 이미지는 그 후에도 다양한 곳에 차용됐다. 피카소가 그린 돈키호테도 있고, 만화 돈키호테도 있다.

18세기 중국산 도자기에 그려진 돈키호테의 모습. 중국식 의상을 입고 있다.

1750년 중국에서 만든 도자기에도 돈키호테 이미지가 있다. 18세기 중국인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돈키호테라 할 수 있다. 전형적인 문화적인 혼종이다.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돈키호테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그림도 있다. 왼쪽에 돈키호테 이미지가 나오고, 반대 편에 풍차가 있다. 초현실적으로 다양한 돈키호테 풍경을 그려냈다.

돈키호테를 영화로 만든 것만도 300편이 넘는다. 세르반테스 시대엔 영화란 게 없었다. 그런데도 흥미롭게 돈키호테가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도 영화 기법과 잘 맞아 떨어지는 서사 방식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돈키호테의 현재성이다. 바로 이 순간, 2015년 봄에도 여전히 돈키호테의 메시지는 유효하다. 돈키호테가 다시 한 번 여러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더 많은 영감을 가져다 주길 희망한다.

◆ 질의 응답

-돈키호테 작품 속의 여러 장치가 품고 있는 천재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실 소설가 자신은 별 생각 없이 쓴 것을 우리가 확대 해석하는 건 아닌가?

그 말이 맞다. 저자는 의도 없이 썼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그렇게 풍부한 게 나왔다. 그게 바로 세르반테스의 천재성이다.

아르헨티나의 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말한 것처럼 돈키호테는 완전히 열린 작품이다. 보르헤스는 돈키호테란 작품이 모든 시대, 작품 속에서 늘 열려 있으며 각자의 독법에 따라 달리 읽히는 풍요로운 작품이라고 했다. 돈키호테는 ‘지구상의 두 사람이 결코 똑같은 독서를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다의적인 작품이다. 한 사람이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영감을 얻을 것이고, 20대, 30대, 40대, 50대에 각각 다시 읽어도 또 다른 영감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18세기 중국 도자기에 돈키호테가 들어간 그림을 보여줬는데 그 시대 중국인도 돈키호테를 읽었다는 증거인가?

18세기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상업적으로 중국을 지배했다. 당시 중국의 도자기를 엄청나게 수입하면서 자기네가 좋아하는 도식을 넣은 걸 주문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국도 소설을 읽었다기보다는 상업적인 결과물이다.

-돈키호테는 왜 멀쩡한 정신으로는 세상에 나가지 못했을까? 그런 설정의 의도는 뭘까?

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치지 않으면 세상은 안 바뀐다.(웃음) 이 건명원이란 학교도 일종의 ‘광기’ 아닐까 생각한다. 천부적인 광기라고 생각한다.

-돈키호테가 끊임없이 실패를 겪는다고 했다. 반대로 실패나 좌절을 자초한 사람으로 볼 수는 없나?

맞다. 사실 사람은 계속 넘어져야 성장한다. 또한 돈키호테는 끊임없이 현실에 충격을 가하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게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호세 마리아 파즈 가고(José María Paz Gago)

스페인 라코루나 국립대 비교문학 교수. 현대 서사학의 거장인 프랑스의 즈네트 교수의 수제자. 돈키호테의 기호학적 연구를 중심으로 문학기호학과 영상기호학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힌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 세계기호학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시인이며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은 10여개국 언어로 번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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