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잡지에서 보도사진으로 명성을 날리던 50대 후반의 사진가가 있었다. 그는 자신만의 사진을 찾기 위해 골몰하다가 '방랑'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내 이야기냐고? 천만에. 무엇보다 나는 아직 50대 후반은커녕 진입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명성을 날린 적도 없었던 것 같긴 하다.)
사실은 레이몽 드파르동이라는 사진가가 쓴 책 '방랑' 이야기다. 드파르동은 프랑스 사진가다. 42년생인 그는 오랫동안 신문과 잡지를 위한 사진을 찍었고,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사진가들의 모임인 매그넘 에이젼시의 멤버라는 정도만 말해도 그의 내공은 미루어 짐작이 될 것이다. 그런 그가 50 후반 나이에 '방랑'을 시작했다.
이 책에는 그가 떠돌아다니며 찍은 사진과 그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방랑의 목적이 자신의 사진을 찾기 위한 것이었으니, 이 책은 자기가 평생 찍었던 사진에 대한 이야기나 마찬가지이다.
내가 글 첫머리에 농담처럼 '내 이야기 같지 않느냐'고 썼는데, 실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쓴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착각까지 했다. 심지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나 자신을 묻고 뭐고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주문이나 받고, 신문 사진부장이나 하면서 조용히 지낼 수도 있지 않을까?'
예술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반동' 또는 '회의'는 작가에게 중요한 동력이다. 드파르동은 저널리즘 사진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비판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런 이야기는 누구보다 사진기자 출신인 내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이지만,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중매체의 이미지와 더불어 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경험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은 어떤가.
'요즘 사진가들은... 사람의 얼굴 초상에 몰두한다. 매우 위험한 일이다. 텔레비전에서 수많은 사람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텔레비전의 역할이다. 텔레비전이 텅 빈 화면이나 공허한 시간을 보여줄 수 있을까? 어림없다.'
그는 시종일관 텅 빈 것을 찾아 간다. 텅 빈 것을 찾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방랑이다. 뉴스를 찾아가는 출장도 아니고, 멋진 곳을 찾아 가는 여행도 아니다. 의미 없는 일상의 장소를 찾아간다.
먼저 어떻게 해야 방랑을 할 수 있는지 말한 후에는 그 방랑이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행 사진을 좋아하는 분들이 관심 가질 만한 부분이다.
사람들은 각자 사는 환경에 따라서 보는 방법도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어 수직으로 뻗은 빌딩숲에 사는 도시인과 보이는 것이라고는 지평선뿐인 평야에 사는 유목민의 보는 방법은 다르다는 이론이다. 나는 오랫동안 여행을 하면서 내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 바뀌기를 바랐다. 여행을 하는 동안 별안간 낯선 것과 조우하고, 낯선 나머지 어쩔 줄 몰라하는 순간을 만나고 싶었다.
그 비슷한 이야기를 드파르동이 책에서 하고 있었다. 그는 사막에서 보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사막을 촬영하면서 나는 기대할 것 없는 것을 촬영하는 법을 배웠다... 사막에서는 촬영할 것이 거의 없다. 바로 이런 점이 엄청나게 참신하다. 사막에서 현대적인 것을 환상적으로 배운다.'
평생 치열하게 한 가지 일을 한 사람이 그 동안의 것을 다 버리고 떠나는 힘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렇게 떠난 후 방랑을 거쳐 드파르동은 자신의 새 사진을 얻어 돌아왔다.
그가 지금 내 앞에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파르동 형님, 다 버리고 사진마저 비우고 싶었다고 했는데, 이거 사진이 너무 멋진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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