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12일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 유치를 위한 전략적 제휴를 선언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호텔신라가 범(汎)삼성가인 신세계그룹이 아니라 현대산업개발을 파트너로 고른 것만으로도 이례적인 제휴였다. 호텔신라가 면세점 2위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백화점을 한 곳만 운영하는 현대산업개발을 파트너로 정한 것은 부동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로 두 회사는 현대산업개발이 교통 요지인 서울 용산에 갖고 있는 아이파크몰을 시내 면세점 후보지로 정했다.
서울 시내 면세점 추가 사업자 신청 마감일(6월 1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사업권을 따기 위한 대기업들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제휴를 결정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물론이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 재벌 오너들이 직접 유치전을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면세점 1·2위인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지는 등 과열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번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서는 부동산과 입지가 당락을 좌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각 기업이 사업권 입찰 참가와 전략을 공개하면서 가장 큰 차별화 요인이 "어떤 지역에 어떤 건물을 갖고 있느냐"라는 점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지난 4개월 동안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보니 부동산과 입지 외에는 차별화 요인이 별로 없다"며 "요즘 업계에서는 '따면 부동산 탓, 못 따도 부동산 탓'이라는 말이 정설(定說)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참가 기업들, 입지적 장점 부각에 올인
이미 입지를 결정한 기업들은 각각 자신들의 입지가 접근성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서 앞선다는 점을 내세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최근 장기 임차한 서울 동대문의 패션몰 '케레스타'와 강남의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을 놓고 고심하다가 무역센터점으로 확정했다. 현대백화점 오중희 부사장은 "무역센터점은 한국의 세련된 강남 문화가 집약된 최적의 장소"라며 "앞으로 한전 부지 개발, 코엑스 한류 코너 등으로 관광객이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후보지로 정한 63빌딩이 이미 유명한 관광지라는 점을 앞세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화그룹이 일찌감치 63빌딩을 후보지로 정하고 관련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63빌딩은 면세점으로 활용할 공간이 넓을 뿐 아니라 인천공항에서 55㎞, 김포공항에서 15㎞ 거리로 접근성이 뛰어나다. 호텔신라·현대산업개발은 면세점 후보지인 아이파크몰이 있는 용산민자역사가 호남선 KTX, 전철 1·4호선, ITX청춘 등이 지나가는 서울 최고의 교통 요지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신세계그룹과 롯데그룹은 경쟁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입지 선정을 위해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으나 의외의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그룹 박찬영 부사장은 "후보지가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경쟁자들의 결정을 충분히 본 뒤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미 3곳의 서울 시내 면세점을 운영 중인 롯데면세점은 서울 동대문과 김포공항 인근 등을 후보지로 물색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찰 참가를 검토 중인 이랜드그룹도 서울 강남, 강서, 강북 등의 백화점을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큰 건물이 교통·관광 요지에 있으면 유리
입지의 중요성은 관세청이 지난 6일 발표한 심사 평가 기준에서도 나타난다. 심사평가 기준에 따르면 전체 1000점 중에 매장 규모와 접근성 등 부동산 입지와 관련된 항목의 배점이 300~350점에 달한다. 다시 말해 자기 소유의 건물로 임차료 부담이 적고, 교통 등 접근성과 관광객 유치 가능성이 높은 부동산을 가진 기업이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면세점 운영 능력이나 사회적 기여 등의 항목은 점수 차이가 미미할 것"이라며 "결국 입지와 건물의 편의성 등 부동산 관련 항목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