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은 유니폼 얻기도 어려워
교육 없이 투입하고 업무 지시도 제각각
"이 수료증이 150만원짜리인 셈이예요. 150만원 정도를 덜 받았으니까요."
서울에 사는 김모(23)씨는 기자에게 호텔 인턴 수료증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겨울, 호텔리어의 꿈을 위해 인천 모 5성급 호텔의 동계 인턴십에 지원했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굉장히 기뻤다. 크고 유명한 호텔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단 생각에 신이 났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인턴을 시작하자, 김씨의 기쁨은 얼마 못 가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최저임금도 안되는 낮은 월급, 체계조차 잡혀 있지 않은 주먹구구식 교육 등이 원인이었다. 김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호텔 인턴의 하루를 재구성 해봤다.
◆ 인턴은 유니폼 얻으려 애걸복걸…교육 없이 업무 투입, 안전사고 일어나기도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오전 5시 반, 김씨는 집을 나섰다. 김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는 '얼리 포지션' 인턴이다. 호텔이 인천 끝자락에 있다 보니 통근시간만 편도 두시간 정도 소요된다. 김씨는 매일 첫차를 타고 출근한다.
30분 전 미리 호텔에 도착한 김씨는 건물 뒷편에 나 있는 직원 전용 출입구로 들어갔다. 지하에 있는 직원 탈의실로 내려가 사물함에 소지품을 내려놓고 유니폼 배급 부서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텔은 유니폼 규정이 엄격하다. 옷이 더러워서도 안되고, 악세사리 등으로 튀어서도 안된다. 호텔 직원들은 퇴근할 때 유니폼을 반납하고, 출근하면 세탁된 유니폼을 지급받아 입어야 한다.
그러나 김씨 같은 인턴들이 깨끗한 유니폼을 입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이날도 김씨는 '유니폼 퇴짜'를 맞고 탈의실로 돌아왔다. 인턴들한테까지 줄 유니폼 여유분은 없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김씨는 어제 입었던 유니폼을 꺼내 입었다. 김씨는 "인턴들은 새 유니폼 받는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전날 입었던 유니폼을 반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못받을 경우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식음료 파트 중에서도 뷔페 레스토랑(이하 레스토랑)에서 일해 유니폼이 쉽게 더러워진다. 대충 물로 큰 얼룩만 지워낸 채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김씨를 비롯한 인턴들은 들어가면 지배인 등 맨 윗 사람에게 인사를 한 뒤 업무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날 김씨와 인턴 여럿의 업무는 시작부터 차질을 빚었다. "유니폼이 깨끗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배인에게 꾸지람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 등은 다시 유니폼 부서에 가 "혼나고 왔다. 제발 남는 거 하나만 달라"고 애걸한 뒤에야 직원용 새 유니폼을 받을 수 있었다. 담당 직원은 "최대한 빨리 갖다 달라"며 신신당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김씨의 공식 업무가 시작됐다. 레스토랑에 소속된 인턴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폴리싱'이다. 폴리싱이란 접시, 스푼, 포크, 나이프, 물잔 등을 린넨 천으로 닦는 일을 말한다. 뷔페다보니 식기구는 끊임없이 나오고, 인턴들의 폴리싱도 끊기지 않는다. 김씨는 카운터 뒷편에서 동료 인턴과 수백 개의 식기구를 닦기 시작했다. 물방울 얼룩이 남아있으면 더러워 보이고, 고객 불만이 들어올 수도 있어 꼼꼼하게 힘주어 닦아야 한다.
폴리싱을 어느정도 끝내고, 김씨는 홀 서빙을 시작했다. 김씨는 "접시를 치울 때, 트레이(쟁반)에 한꺼번에 올려 주방으로 가져가는데 이 무게가 엄청나다"며 "선배들은 트레이에 접시를 균형있게 올리는 방법, 손목에 무리 안가게 트레이를 드는 방법 등을 알고있지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손목을 다쳐 반깁스를 한 동료 인턴도 있다고 김씨는 덧붙였다.
11시가 되자 김씨와 동료 인턴들은 직원 식당으로 가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김씨는 '점심시간이 인턴 생활 중 유일하게 좋은 점'이라고 표현했다. 정직원들은 바쁘다보니 30분 안에 빠르게 식사를 마쳐야 하는 반면, 인턴들에겐 1시간 식사 시간 만큼은 보장되기 때문이다.
◆ 선배마다 다른 업무 방식, 애꿎은 인턴들만 혼나...인턴 시급은 알바생의 6분의 1
김씨는 쓰고 난 린넨 냅킨을 세탁실에 맡기란 지시를 받았다. 호텔 린넨 냅킨은 세 가지로 구분돼 있다. 폴리싱용은 빨간색, 손님용은 흰색,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건 초록색이다. 김씨는 예전에 교육받았던 대로 냅킨 색깔을 구분해 세탁 봉투에 담았다.
그러나 김씨는 곧바로 한 선배께 꾸지람을 들었다. 바빠 죽겠는데 그걸 언제 구분해서 담고 있냐는 이유였다. 김씨는 "이전에 구분하라고 교육받아서 그랬다"며 "시정하겠다"고 했지만, 선배의 화는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김씨는 "일단 교육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게 문제"라며 "선배들마다 업무 방식이 다르다보니 가르침을 받는 우리 인턴들로서는 헷갈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호텔 통합 매뉴얼이 있지만, 선배들 각자 해석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데, 자신의 방식에 맞지 않는 인턴들은 혼을 낸다는 것이다. 김씨는 또 "호텔 일이 감정노동이다보니, 선배들도 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많다"고 전했다. 사소한 일에도 선배들이 인턴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잦은 데 대한 설명이었다.
이후 김씨는 3시 퇴근 전까지 폴리싱과 서빙을 반복했다. 김씨는 "원래 내가 생각하던 호텔리어는 이런 게 아니었다"며 "객실 서비스쪽에 가고 싶었지만, 처음 인턴들의 전공이나 지망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파트 배정이 이루어 졌다"고 말했다. 김씨 뿐만 아니라 동료 인턴들도 불만이 있었다. 대학에서 호텔외식을 전공해 식음료 파트로 오고 싶었던 한 인턴은 김씨와 반대로 객실 파트에 배정받았다고 했다.
김씨는 "교육 목적이라며 돈도 적게 주는데 자기가 배우고 싶은 분야에도 갈 수 없는 건 억울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호텔 인턴들은 교통비와 소정의 월급을 포함해 한달에 51만원, 두달 간 총 102만원을 받았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1250원인 셈이다. 김씨에 따르면 교통비만 지급할 뿐 이 소정의 월급조차 주지 않는 호텔도 많다. 반면 김씨와 같은 일을 하는 이 호텔 아르바이트생들은 시급 8000원을 받고 있었다. 이는 김씨 시급의 6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턴들의 퇴근은 대체로 정시에 맞춰진다는 점이다. 3시가 조금 넘자 김씨는 선배들에게 인사하고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김씨는 곧바로 영어학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호텔리어가 되려면 외국어는 필수"라는 말을 남기고 김씨는 지하철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