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진 전 KT 사장

80년대 초 과학기술 정책의 일환으로 거의 복제 수준의 8비트 PC 5천대를 교육용 컴퓨터라는 명목으로 학교 현장에 보급한 적이 있다. 갑자기 괴물을 받아 든 학교 현장에서는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베이직 언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새로운 걸 가르치기 시작하니 동네 마다 순식간에 컴퓨터학원 열풍이 불었다. 30 여년이 지난 지금, 시범기간을 거쳐 2017년부터 초등,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코딩을 포함시킨다고 한다.

사실 미국, 영국, 핀란드, 일본 등 많은 나라가 대학 뿐 아니라 초,중, 고등학교에서도 코딩을 가르치고 있다. 경영학을 가르치는 것보다 프로그램 천재들이 창업자로 대성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해서 코딩 교육을 강조한다. 기계공학의 대표적인 산물인 자동차도 25% 정도가 소프트웨어일 정도로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니 소프트웨어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다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적어도 내가 만나거나 지켜본 IT 대가들은 수학의 천재적 소양, 뛰어난 직관력, 풍부한 상상력, 논리적 탁월성 등을 가진 사람들이었지 프로그램 기술자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말을 잘 하려면 언어 이전에 사고력, 논리력, 상상력,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 영어로 연설을 잘하고, 소설을 잘 쓸 수 있으려면 영어를 배우긴 해야 하지만 영어를 잘 한다고 명연설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지자면 코딩은 창의력, 상상력, 논리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에 불과하지 코딩기술 자체가 엄청난 걸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물론 여러 교육프로그램에서 시도되고 있는 코딩은 단순히 과거처럼 프로그램 언어를 기술로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레고 블럭을 쌓듯 논리적 모듈들을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논리력, 사고력, 창의력이 상호작용 속에서 향상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결국 교육 현장이 문제인 것이다. 선진국에서 추구하는 대로 코딩과 창의력, 사고력 등이 상호작용 하도록 교육시킬 수 있는 교사, 시설, 교육프로그램 등 제반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교육에서 시작부터 하고 보면 과거에 했던 것처럼 프로그램 교육과정이 언어 하나 더 가르치는 형태로 진행될 것이고, 바로 프로그램 사교육 열풍으로 이어질게 뻔하다.

최근에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학의 달을 맞아 창의력을 향상시키겠다고 다양한 과학행사가 열리고 있는데, 과학 탐구 대비반이라는 사설 학원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창의력을 키우겠다는 본래의 취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일정한 성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다. 이게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소프트웨어 기반 사업을 하는 기업에서 평생을 보내고, 소프트웨어 인력을 중히 여겨왔던 나로서는 소프트웨어 교육을 대대적으로 시킨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소기의 목적과 다른 광풍이 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사교육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준비과정에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을 주문한다.

또한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국가의 핵심으로서 역할을 하게 하려면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교육받은 인재들이 배출되었을 때 그 인재들을 받아줄 사회적 그릇이 있어야 한다. 소프트웨어 전문가 되는 것이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것보다 성공 확률이 높아야 한다. 지금같이 소프트웨어 분야가 3D 업종 취급 받거나 거기서 일하는 인재들이 시간제 노동자 취급 받는 환경에서는 아무리 교육시켜봐야 소용 없는 일이다. 소프트웨어 교육을 국가 정책으로 채택하기 이전에 그 산업풍토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최근에 중소 IT 기업을 도와준다며 공공정보화 사업에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했는데, 중견IT 서비스 기업의 이익율은 0%대라고 한다.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가치 산정보다 투입된 인력 원가 기준으로 소프트웨어 가치를 책정한 결과다. 빌 게이츠가 한국에서 회사를 키웠다면 그 소프트웨어의 대가를 과연 얼마나 받았을까라는 질문들을 한다. 우리의 풍토를 비꼬는 말이다. 소프트웨어 가치평가제도, 구매제도, 소프트웨어 회사 거래제도 등을 정비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라고 하는 무형의 산물을 물리적인 제품을 생산 유통하는 틀로 묶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소프트웨어 기반의 벤처회사를 미래가치가 아닌 현재의 장부 기준으로 거래하도록 하는 풍토에서는 우수한 인재를 모을 수 없다. 이래가지고는 소프트웨어를 아무리 강조하고, 교육시켜도 소용 없는 일이다.

아울러 소프트웨어 생산만 중요한 게 아니라 유통하는 능력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미국, 이스라엘, 스웨덴 등이 소프트웨어 강국이 된 배경은 생산능력 뿐 아니라 세계시장에 유통시킬 수 있는 능력과 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마케팅 인재 육성과 지원을 소프트웨어 중심국가 틀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