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산가들 사이에서 연금저축계좌가 신종 세(稅)테크 상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느 월급쟁이처럼 길어진 노후에 대비하려고 연금에 가입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세수 확보 차원에서 절세 상품을 속속 없애는 가운데, 연금저축계좌의 절세 혜택에 착안해서 세테크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연금저축계좌는 정부가 기존 연금저축을 12년 만에 재정비하면서 지난 2013년에 새롭게 선보인 상품이다. 신생아부터 은퇴자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1년에 1800만원까지 자유롭게 돈을 넣을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올해부터 연금저축계좌에서 중도 인출하는 금액에 대해 분리과세(16.5%)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자산가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연금저축계좌에서 주로 담는 연금저축펀드에는 올 들어서만 36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들어왔다.
문성필 한국투자증권 상무는 "연금이라고 하면 젊은 직장인들이 노후에 대비해 가입하는 상품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강하지만, 각종 절세 혜택이 부각되면서 연금저축계좌는 여유자금이 있는 자산가들까지 관심 갖는 세테크 상품으로 재조명받고 있다"고 말했다.
◇부부 연금 3600만원 채우기 열풍
서울 서초구에 사는 자영업자 이모(45)씨는 최근 전업주부인 아내와 함께 연금저축계좌를 개설하고 각자 1800만원씩, 총 3600만원을 넣었다. 이씨는 "(우리 부부는) 직장인처럼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연금저축계좌엔 별 관심이 없었는데, 해외펀드 수익은 과세가 이연되고 연금으로 수령하면 저율의 연금소득세를 내는 등 잘만 활용하면 세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가입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매년 3600만원씩 부부 한도를 꽉꽉 채워 가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부 연금 3600만원을 유럽과 일본, 중국 등 3개 해외펀드에 골고루 나눠 담았다.
한정 삼성증권 부장은 "해외펀드에 투자해서 수익이 나면 15.4%를 세금으로 내고 2000만원이 넘으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되지만, 연금저축계좌로 투자하면 수천만원 수익이 나도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55세 이후 연금으로 타면서 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세율이 3.3~5.5%로 낮다"고 말했다.
중도 해지 부담이 줄어든 것도 모객(募客)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박상규 한투증권 라이프컨설팅부장은 "투자 수익을 중간에 찾아 쓰는 경우 올해부터는 다른 금융소득과 합산되지 않고 분리과세(16.5%)되고 끝나기 때문에 최고세율(41.8%)을 적용받는 거액 자산가에겐 유리하다"고 말했다. 연금저축계좌로 여러 펀드에 가입하는 경우, 이익과 손실을 상계해서 순이익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것도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노용우 대우증권 연금사업추진부장은 "여러 개 펀드에 가입하는 경우 A펀드에서 100만원 손실이 났어도 B펀드에서 50만원 이익이 나면 세금을 내야 한다"면서 "하지만 연금저축계좌는 나중에 한꺼번에 합산해서 과세하기 때문에 최종 수익이 마이너스(-)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국내 주식펀드 투자 땐 불리
연금저축계좌는 현재 은행·증권사·보험사에서 가입할 수 있다. 특히 이달 시행 예정인 연금저축계좌 이동 간편화를 앞두고, 금융회사 간 고객 유치 경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연금저축계좌 이동이 간편화되면, 예전처럼 금융회사를 여러 번 방문할 필요 없이 새로 계좌를 옮기려는 금융회사에 한 번만 찾아가면 된다.
연금저축계좌를 선택할 땐 가입할 수 있는 상품 수가 얼마나 되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연금저축계좌는 하나의 계좌만 트면 여러 개의 펀드에 동시 가입해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인데, 가입할 수 있는 상품 수가 몇 개 되지 않는다면 원하는 투자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또 연금저축계좌로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세금 측면에선 불리할 수 있다. 국내 주식형 펀드는 원래 매매차익이 비과세인데, 연금저축계좌로 투자하면 안 내도 되는 세금을 내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연금저축계좌로 자금이 유입된 상위 10개 펀드 중 국내 주식형 펀드는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