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계가 초대형 유조선과 컨테이너선 수주로 위기 탈출의 돌파구를 찾아가고 있다. 올 들어 발주가 늘고 있는 유조선과 컨테이너선을 대거 수주하며 한국·중국·일본이 각축전을 벌이는 세계 조선업계에서 수주 1위 탈환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해양 플랜트 수주가 사실상 끊긴 상황에서 유조선과 컨테이너선이 올해 한국 조선업계를 먹여 살릴 주력 선종(船種)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기업, 세계 유조선 물량의 72% 수주
세계 최대 조선 회사인 현대중공업은 지난주 유럽 선사로부터 수에즈막스급(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가장 큰 배) 유조선 2척을 1억달러 넘는 금액에 수주했다. 이 회사는 올해 수주한 상선(商船) 15척 가운데 13척이 유조선일 정도로 유조선 수주에 성과를 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다른 조선업체들의 수주 물량까지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올 1분기 전 세계에서 발주된 유조선 60척 가운데 43척(71.7%)을 수주했다. 올해 1분기 전 세계 상선 발주 물량이 작년 1분기(823척)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든 211척이지만, 한국 조선 기업들은 유조선 분야에서 절대 강자로 자리 잡으며 총 수주 실적에서 중국과 일본을 앞질렀다.
유조선 발주 증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국제 유가(油價) 하락세와 관련이 있다. 유가 하락으로 세계 원유 수요가 늘고 있는 데다 향후 유가 상승을 예상한 투자자가 유조선을 해상 원유 비축 기지로 활용하려는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들어 비톨(Vitol), 트라피구라(Trafigura), 코크(Koch) 등 세계적인 원유 거래 기업들은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VLCC) 20여척을 최장 12개월까지 빌릴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 현물 시세보다 선물 시세가 높은 것을 노려 일정 기간 원유를 비축해 뒀다가 되팔기 위한 목적에서다.
30만t급 유조선 한 척이 실을 수 있는 원유의 양은 약 220만배럴. 지난해 우리나라 하루 원유 소비량(225만배럴)과 맞먹는 규모다. 현재 30만t급 유조선의 하루 임대료는 4만달러 안팎. 선박 연료비, 보험료, 금융 이자 등을 감안해도 원유 가격이 한 달에 1달러만 올라도 수십만달러의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박무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중국 조선사들이 건조한 선박에 대해서는 안전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어 앞으로도 한국 조선업체들에 수주 물량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도 잇따라 따내
1만8000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 1개임)급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이달 초 홍콩에서 수주한 세계 최대 크기인 2만1100TEU급 컨테이너선을 비롯, 올 들어 모두 10척의 컨테이너선을 수주했다. 100일 동안 지난해 컨테이너선 총 수주량(11척)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한진중공업도 지난주 프랑스 선사와 2만600TEU급 컨테이너선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컨테이너선 발주 급증의 주요인은 세계 1위 해운사인 머스크가 초대형 컨테이너선 투입을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연료 소모량이 기존 선박에 비해 20~30% 적어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는 게 매력이다. 업계에선 올해 30여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추가 발주될 것으로 예상한다.
컨테이너선 발주 증가에 힘입어 세계 3위로 밀렸던 일본 조선업계도 회생하고 있다. 일본이 올 1분기에 중국을 제치고 수주량 기준 세계 2위가 된 것은 쇼에이 키센 등 일본 해운사들이 이마바리조선 등 자국 조선업체에 2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를 대거 맡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