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고속버스 운송회사인 천일고속의 주가가 최근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1949년에 설립돼 여객 운송 사업 한 우물만 팠던 회사가 갑작스레 주식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영업환경에 특별한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천일고속이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증권 전문가들은 오너 일가의 차명 주식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갑자기 높아지며 이른바 '품절주'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품절주는 유통주식수가 적어 주가 변동 폭이 큰 주식을 말한다.
증여세를 내기 위해 고액 배당을 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주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증여를 통해 보유하고 있던 차명 주식이 드러났는데, 주식 보유 사실이 밝혀진 이상 세금을 피할 수 없다. 고액 배당을 실시해 증여세 일부를 충당하게 될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 38년간 알려지지 않았던 오너 지분
천일고속(000650)은 지난 9일 공시를 통해 박남수 명예회장(82)이 차명주식 68.77%(98만2944주) 전량을 손자 두 명에게 증여했다고 밝혔다. 박 명예회장이 손자인 박도현 대표이사와 박주현 부사장에게 증여한 주식의 가치는 9일 종가(6만8800원) 기준으로 676억원에 이른다.
일반적인 증여라면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겠지만 천일고속의 사례는 특별했다. 박 명예회장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없던 지분이 갑자기 드러났고, 이 지분 전량이 할아버지에게서 손자로 넘어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박 명예회장은 1977년에 천일고속이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했을 때부터 발행주식 전체의 68.77%에 해당하는 지분을 타인의 명의로 보유하고 있었다. 명의 신탁에 의해 친인척과 지인에게 지분을 맡겨뒀던 것이다. 자그마치 38년 동안 묻혀져 있던 주식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명의신탁한 주식을 보유할 경우 사업보고서 상의 주석과 별도 공시를 통해 이를 알려야 한다. 그러나 천일고속은 공시를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일반 주주들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
◆ 이틀째 상한가…품절주 등극?
이번 증여로 박 대표이사와 박 부사장의 지분율은 각각 43.15%, 36.16%로 크게 증가했다. 당초 두 사람의 지분율은 6.02%, 4.41%에 불과했다.
박 대표이사의 부친인 박재명 전 대표이사, 동생 박정현씨의 지분을 포함한 최대주주 일가의 지분은 85.87%에 이른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최대주주 일가의 지분율은 26.92% 수준이었다. 통상 최대주주 지분율이 70% 이상이면 품절주로 분류 되는데, 갑자기 지분율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 같은 소식에 주가는 곧바로 반응했다. 10일부터 오르기 시작하더니 13일과 14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3일만에 33%가 오른 것이다. 거래량도 급증했다. 평소 하루 1000주 내외로 거래되던 것이 9일 1만3000주로 증가하더니 14일엔 2만3523주까지 증가했다.
고액 배당을 기대하는 투자자도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천일고속 주주게시판에는 배당에 대한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증권업계에선 증여 주식에 대한 세율 50%에다 손자‧손녀에게 증여할 때 30%가 할증되는 점을 고려하면 증여세가 4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배당 실시 여부 확인해야
증권 전문가들은 품절주, 고배당 기대감만으로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분석한다. 유통 주식이 적을 경우, 급등 뿐만 아니라 급락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품절주 테마로 급등하며 주목받았던 신라섬유(001000)는 2월 말 5만500원까지 올랐다가 현재 2만원대 초반으로 하락한 상태다.
고배당 기대감 역시 마찬가지다. 배당의 재원은 당기순이익인데, 천일고속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48억원 수준에 그친다. 보유 현금 등을 동원하더라도 증여세를 채울만큼 고액의 배당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배당 실시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펀더멘탈(기초 체력)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수급 만으로 주가가 움직일 경우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