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정치와 비즈니스의 경계선을 절묘하게 넘나들며 사업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정경(政經) 복합 경영자', '정치 상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초등학교 중퇴의 맨주먹으로 2조원대 사업을 일궜던 성 전 회장은 평소 경제인보다 정치 인맥 관리에 더 치중했고 사업의 고비 때마다 정치적 도움을 받아 사세(社勢)를 키웠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성 전 회장은 1981년 대아건설을 인수했는데 당시 건설사 도급 순위가 전국 169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아건설은 이후 무섭게 성장해 10년 만인 1991년 72위까지 97계단을 뛰어올랐다. 업계에서는 대아건설의 급성장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독보적인 기술력이나 브랜드 경쟁력이 없는데도 당시 충청도에서 발주한 관급공사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실제 1992년 국정감사에서는 대아건설이 1988년 이후 수주한 51건의 관급공사 낙찰률이 98%를 넘어 논란이 됐었다. 당시 대아건설은 충남지사 선거 과정에서 비자금 제공 혐의를 받았었다.

상장 폐지된 경남기업 14일 서울 동대문에 있는 경남기업 본사에 고(故) 성완종 전 회장을 애도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국내 1호 상장 건설사인 경남기업은 한국거래소(KRX)에 회생계획안을 제출하지 못해 이날 상장 폐지됐다.

성 전 회장은 이후에도 재계 인사들보다 정치권에 자주 얼굴을 보이고 인맥을 넓혀갔다. 성 전 회장의 한 지인은 "성 전 회장은 권력의 향방을 기막히게 읽고 '맨주먹 붉은 피'로 들이댄 사람이었다"면서 "공직이나 정치권에서 뜨는 사람이 있으면 30~40명씩 모아 성대한 축하연을 열어주곤 했다"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노무현 정부 들어 급속한 사세 확장의 디딤돌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 건설업체 오너에 불과했던 성 전 회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8월 경남기업을 인수하면서 일약 전국구 인사로 주목받았다. 당시 업계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을 삼켰다"는 말이 나왔다. 더구나 당시 경남기업 인수전에는 5~6개 기업이 뛰어들어 치열한 경합을 벌였었다. 이후에도 경남기업은 2004년 6000억원대였던 매출이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1조3000억원대로 3년 만에 2배 이상으로 급성장하며 승승장구했다.

실제 지금까지 검찰 수사와 마지막 남긴 메모 등을 종합하면 성 전 회장은 총선과 대선 등 중요한 정치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핵심 인사들에게만 정치 자금을 제공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성 전 회장은 2007년 이후 32억여원의 비자금을 만들었는데 2010년까지는 매년 4억원 이내로 인출했다가 총선과 대선이 있던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7억여원, 9억여원이 빠져나갔다. 이 시기는 성 전 회장이 홍준표 경남지사와 홍문종 의원에게 정치 자금을 줬다고 말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 당시 경남기업은 사세가 기울고 있었다. 3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적자를 냈지만 성 전 회장은 필요한 순간에 정치 자금을 제공하는 데는 인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로 일어섰던 성 전 회장은 결국 정치에 발목이 잡혔다. 성 전 회장은 2012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경남기업은 이때부터 경영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성 전 회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결국 2013년 2차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지난해 성 전 회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이후 정치적 힘을 잃고 돈줄도 막히자 정치권은 그의 마지막 구명 요청을 외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