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애초 통신용으로 배정했던 주파수까지 포함해 700메가헤르츠(㎒) 주파수를 지상파 방송과 통신이 나눠 쓰도록 방침을 바꿔,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국가의 주요 자원인 주파수 배분 정책을 이해 당사자인 방송사와 국회의 압력에 밀려 나눠먹기식으로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이 대역을 통신용으로 결정하고 있는데 한국만 방송 위주로 할당할 경우 글로벌 정보통신 경쟁에서 외딴섬이 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보통신기술, '외딴섬' 되나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최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 회의에 나와 "700㎒ 주파수를 방송과 통신이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균형 있게 분배하겠다"고 말했다. 700㎒ 주파수는 698~806㎒ 사이의 108㎒ 대역 폭을 말한다. 이 가운데 국가 재난 통신용으로 할당한 20㎒ 폭을 제외한 88㎒ 폭을 통신과 방송 모두에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통신용으로 40㎒ 폭을 우선 배정하기로 했던 기존 주파수 활용 계획을 뒤엎은 것이다.

700㎒ 대역 주파수는 전파 도달 거리가 길고 장애물을 피해 가는 성질(회절성)이 뛰어나 통신에 적합하다. 기지국을 많이 설치하지 않아도 돼 효율도 높다. 과거에 이동통신 서비스가 나오기 전에는 이 주파수는 아날로그 방식의 지상파 방송용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각국 방송사들이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하면서 이 주파수는 더 이상 쓰지 않고 반납해 나라마다 통신용으로 재(再)할당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 이 주파수를 이동통신용으로 사용하거나 사용하기로 한 국가는 미국·독일·영국 등 세계적으로 115개국이 넘는다. 우리나라도 이명박 정부 시절에 통신용으로 용도가 정해졌다.

하지만 풀HD(고선명) 방송보다 4배 이상 화질이 선명한 초고화질(UHD) 방송이 나오자, KBS·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은 "UHD 방송용으로 700㎒ 대역의 별도 주파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관 부처인 미래부가 입장을 바꾸지 않자 방송사들은 국회의 담당 상임위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정부를 압박했다. 지상파는 국회 미방위에서 주파수 문제를 논의할 땐 대부분 방송 카메라를 동원했고, 관련 의원들은 700㎒ 주파수와 관련해 방송사 측 입장을 대변해 미래부를 압박했다.

지상파 등쌀에 비효율 자초한 정부

세계 각국은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이동통신을 통한 데이터 사용량이 폭증해 만성적 주파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2020년까지 비어 있는 주파수 가운데 통신용으로 500㎒~1500㎒ 대역 폭을 추가 확보하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우리나라도 당장 내년 상반기까지 125㎒ 폭을 확보해 통신사들에 할당해야 한다. 하지만 700㎒ 재배정 문제로 차질이 빚어졌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주파수를 더 받아도 모자라는 판에 방송과 나눠 쓰라는 것은 통신을 포기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사들이 700㎒를 요구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통신용으로 쓰는 주파수를 우리도 통신용으로 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같은 주파수 대역에 쓰는 단말기(스마트폰)와 기지국 등 통신 장비를 쓸 수 있어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예컨대 700㎒ 대역에서 광대역 전국망을 구축할 경우 국제 표준에 따르면 2조4000억원이 든다. 반면 다른 나라들과 다른 방식을 쓸 경우 비용이 2배 이상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6.8% 가구 위해 전 국민 편익 희생

700㎒ 주파수를 방송에 배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시청자는 대부분 케이블TV나 IPTV(인터넷TV)에 가입해 지상파 방송을 시청한다. TV 안테나로 방송 전파를 직접 수신해서 보는 가정은 6.8%에 불과하다.

미래부는 지상파 방송사들에 4개 채널을 전송할 수 있는 24㎒ 폭을 배정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상파는 지역 방송국용 주파수까지 더 넓은 대역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덕규 목원대 정보통신융합공학부 교수는 "700㎒와 같은 글로벌 공용 주파수를 활용해야 통신 서비스의 품질을 높일 수 있고, 통신 요금 인하(引下)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