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63)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관심을 끌고 있다.

장진호 전 회장은 1952년 태어나 서울고와 고려대를 나온 뒤 1979년 진로그룹에 입사했다. 1985년 아버지인 장학엽 전 회장이 사망한 뒤 1988년 진로그룹 회장으로 취임했고 진로종합유통, 진로쿠어스맥주 등을 잇따라 설립하며 사세를 확장시켰다. 이때 진로그룹은 소주(참이슬)와 맥주(카스)를 쌍두마차로 국내 주류 시장을 휘어잡았으며 유통, 건설 등에도 진출해 재벌그룹으로의 면모를 갖추면서 1996년 재계 24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무리한 확장이 독이 돼 1997년 외환위기를 버텨내지 못했고 계열사들이 잇따라 법정관리에 들어간 끝에 개별 매각되면서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대표브랜드인 카스는 OB에, 참이슬·석수·퓨리스는 하이트에, 진로발렌타인은 페르노리카에 각각 매각됐다.

2003년 9월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구속될 당시 장진호 전 회장

장진호 전 회장은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회사를 키운 것으로 전해졌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비자금을 전달했다가 1996년 8월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바 있고, 2013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선 “1980년대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500억원 대 정치자금을 전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장 전 회장은 생전 바둑 매니아로 알려졌다. 아마 5단의 실력으로 고려대 재학 시절 학교 대표를 맡아 70년대 고려대 바둑의 전성시대를 이끌었고, 1993년부터 10년 가까이 한국기원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아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대한사격연맹 회장을 맡았고 1992년에는 올림픽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도 지냈다. 장 전 회장은 이 공로로 1993년 체육훈장 청룡장도 받았다.

장 전 회장은 진로가 공중분해된 뒤 분식회계, 비자금 횡령 등 혐의로 구속돼 2004년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뒤 재기를 모색하면서 캄보디아, 중국 등을 떠돌아다녔다. 캄보디아에선 은행업, 중국에선 게임업체 투자 등을 하면서 재기를 노렸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고 지난 3일 심장마비로 굴곡 많았던 인생을 마감했다.

자녀로는 딸 윤정씨와 아들 형준씨가 있고, 형준 씨는 2007년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투자한 것 외에 특별히 알려진 행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