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김춘호 지음|글항아리|368쪽|1만9000원
전남 강진 백운동에 가본 적이 있는가. 동백나무와 비자나무가 가득한 숲을 따라 걷다가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겨진 바위를 지나면 정원 하나가 나온다. 별서(別墅) 정원. 조선 시대 전통 원림이 그대로 보존된 이곳은 강진 사람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비밀의 정원이다.
저자인 정민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는 고문헌의 기록을 통해 백운동 별서를 더듬는다. 행정구역상의 위치는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546번지. 월출산 옥판봉의 남쪽 기슭을 끼고서 동쪽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일찌기 강진 지방 양반이었던 이담로(1627~?)가 중년에 지은 별장으로, 이담로가 말년에 둘째 손자 이언길을 데리고 들어온 이래 12대가 살아온 원주 이씨의 생활공간이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 백운동 별서를 묘사한 그림과 사진들로 독자의 관심을 돋군다. 2장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고문헌과 시문을 통해 백운동 별서의 조성 내력, 경치를 다룬다. 마지막으로는 백운동이 우리나라 차(茶)문화에 미친 영향을 조명한다.
백운동 별서정원은 신선이 살 것만 같은 유려한 풍경을 자랑한다. 조선 시대 유수한 문장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가 잘 아는 다산 정약용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곳 경치를 예찬한 백운동 12경 연작시를 썼다.
다산은 1812년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 유람길에 이곳에서 하룻밤 묵었다. 그는 다산초당으로 돌아온 뒤에도 이곳 풍광을 잊지 못해 백운첩을 짓고 백운동 별서의 모습을 노래했다. 또 제자인 초의에게 '백운동도'와 '다산도'를 그리게 한 뒤 자신의 시를 함께 적어 '백운첩'을 남겼다.
다산은 백운첩에서 백운동의 아름다운 12가지 풍광을 묘사했다. 백운동 뒤의 옥판봉부터 별서로 접어드는 길의 동백나무 숲과 오솔길, 100그루의 매화숲 등 모두가 절경이다. 조선시대에는 별서를 둘러싼 매화가 장관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대부분 유실되고 두 그루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산은 이 외에도 단풍나무가 비치는 폭포, 별서 마당을 돌아나가는 계곡 등을 백운동의 비경으로 꼽았다.
담헌 이하곤(1677~1724)과 인계 송익휘(1701~?) 역시 백운동 별서를 아낀 조선시대 문장가들이다. 이하곤은 강진 유람기인 '남유록(南遊錄)'에 한겨울에 붉게 핀 별서의 동백꽃밭을 인상 깊다고 기록했다. 송익휘는 강진으로 귀양와 있던 중 백운동에 들러 백운동의 풍광을 노래한 시 10편을 지었다.
백운동이 우리나라 차(茶) 문화사에 미친 영향도 주목할 만하다. 백운동 별서 근처에는 운당원 왕대나무 숲이 있다. 이 왕대나무 숲에는 야생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다산은 백운동의 주인이었던 이시헌을 통해 백운동 대밭에서 채취한 차를 구해 마셨다.
이시헌은 이를 계기로 차에 흥미를 갖게 됐고, 주변의 차 관련 기록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동다기(東茶記)'가 포함된 이덕리의 '강심(江心)'이란 문집을 필사해 동다기를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동다기는 당시의 차에 대한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기록이 담겨 있어 조선 차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저술로 꼽힌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이담로의 10세손인 이한영이 백운옥판차를 만들어 우리 차문화의 명맥을 잇기도 했다.
빼어난 정원의 아취가 글과 사진으로 느껴지는 향기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