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지난해 국내주식에 투자해 4조7545억원의 손실을 봤다. 수익이 나도 모자랄 판에 원금을 까먹은 것이다. 다행히 채권과 해외주식 투자에서 수익을 내며 전체 기금 운용 수익률은 플러스를 기록했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에 투자해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것은 국내 증시가 몇년째 박스권(지수가 일정 범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에서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간 탓도 있지만 보수적으로 기금을 운용한 영향이 크다.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돈이기 때문에 투자 위험이 높은 자산을 사들이는 데 기금운용위원회는 물론 정부와 여론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서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은 최대한 안정적이고 수익이 확정된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기금을 운용해왔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그동안에는 수익률에 욕심을 조금 덜 내더라도 채권 등 안전자산에 투자해 손실 위험을 최대한 낮추는 방향으로 투자해왔다"면서 "하지만 기금 고갈이 예상되고 저금리 상황이 계속되자 주식은 물론 대체 투자도 확대하는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채권과 국내 증시 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해외 주식과 대체투자에 대한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지난해 국내 주식투자 수익률 -5.43%

국민연금 기금규모는 올해 500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급속한 노령화로 수급자는 늘어나고 가입자는 줄어들고 있어 기금이 언제까지 늘어날 수 없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은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기금운용을 잘해 수익률을 높여야 그만큼 기금 고갈시기를 늦출 수 있다.

국민연금이 '2015년도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한 운용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자산군별 수익률이 국내주식 -5.43% 해외주식 8.94% 국내채권 6.79% 해외채권 9.23% 국내대체투자 9.48% 해외대체투자 15.26% 등으로 집계됐다. 국내주식 성과가 가장 저조했다. 코스피지수 상승률이 -4.79%였는데, 이보다도 못했다는 얘기다.

전체 적립금 가운데 99.9%에 달하는 469조3000억원이 금융 부문에서 운용되고 있는데, 국내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17.9%(83조9000억원)다. 이밖에 해외주식 56조6,000억원(12.1%) 국내채권 260조5,000억원(55.5%) 해외채권 21조5,000억원(4.6%) 국내대체투자 22조2,000억원(4.7%) 해외대체투자 24조5,000억원(5.2%) 등이었다.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투자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지배구조 문제를 꼽았다. 공격적으로 자산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기금운용본부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운용인력 처우를 개선하고 인력을 충원하고 싶어도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거치는 절차 탓에 인력 보강이 쉽지 않다.

원종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장은 "기금운용위원회를 금융 전문가로 구성해 기금 운용 관련 전략적 결정을 총괄하는 기구로 격상하는 한편 기금운용본부 전체를 보건복지부 산하의 투자 전문 조직으로 구성해 고급 인적 자원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내부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자산운용사 한 임원은 "지금 국민연금은 정부와 국회 눈치를 보느라 좋은 인력을 채우지도 못하고, 원금을 보전하는데만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투자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국내 증시가 'MSCI'(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 선진지수에 편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몇 년째 답보 상태인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넘어 3000선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해봤지만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흥 지수보다는 선진 지수를 쫓아 움직이는 전세계 자금이 훨씬 많기 때문에 MSCI 선진 지수에 편입돼야 국내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몰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해외 연기금, 위험자산에 투자해 수익률 관리

2013년 세계 주요 연기금 중 가장 높은 운용수익률을 기록한 곳은 미국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로 18.4%를 기록했다. 캐나다 국민연금인 캐나다연금투자원회(CPPIB)(16.5%), 노르웨이 글로벌펀드연금(GPFG)(15.9%) 등도 두자릿수 수익을 거뒀다. 반면 국민연금은 4.2%의 수익을 거두는데 그쳤다.

수익률이 비교적 높았던 미국의 캘퍼스와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 노르웨이 글로벌펀드연금의 자산별 투자 비중을 보면 주식과 대체투자(부동산 토자, 사모 투자) 등 위험자산에 많이 투자했다. 미국 캘퍼스는 주식과 대체투자 비중이 각각 54%, 27%를 차지한 반면 채권투자 비중은 19%에 불과했다. 노르웨이 글로벌펀드연금은 주식투자 비중이 64%로 주요 연기금 중 가장 높았다.

국민연금은 채권에 투자하는 비중이 62%로 높다. 주식(29%)과 대체투자(9%)는 총 38%였다. 국민연금과 투자성향이 비슷한 일본 공적연금(GPIF)은 주식에 30%, 채권에 70%를 투자했다. 일본 공적연금의 2013년 수익률은 8.6%였다.

지지부진한 수익률에 국민연금도 자산별 투자비중을 조절하기로 했다. 올해 국민연금의 분야별 투자계획을 보면 자산 517조원의 10%에 달하는 52조원을 국내외 대체투자에 쏟아붓기로 했다.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비중은 지난 5년 사이 2.5배 늘었다. 국민연금은 올해 해외 주식과 해외 채권 비중도 소폭 늘리고 국내 채권비중은 낮출 예정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증시가 오랜 기간 답답한 구간에 머물러 있고 채권 투자로 수익을 내기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라며 "투자기간을 길게 잡아 30~40년을 본다면 위험자산 비중을 높게 가져갈수록 평균 수익률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