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에는 독일 유전자(gene)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한국적인 디자인이 보이나요?"
고든 바그너(Gorden Wagener) 다임러그룹 디자인 총괄은 지난 3일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 2015'에서 기자와 만나 "기아차는 피터 슈라리어 현대차그룹 디자인 총괄 사장이 맡으면서 보여준 성과는 의미가 있지만, 점점 독일차 느낌이 난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임러그룹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모회사다.
고든 바그너 총괄과 피터 슈라이어 사장은 모두 자동차 디자인계의 거장으로 꼽힌다. 두 사람은 20여 년 전 폴크스바겐그룹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슈라이어 사장은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에서 활동하다 2006년 기아자동차에 합류, 지금은 현대·기아차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바그너 다임러그룹 디자인 총괄은 "기아차가 빠르게 성장한 점은 놀랍지만, 한국 자동차로서의 정체성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차는 아직 독일 느낌은 안 나지만, 슈라이어가 맡았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만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일본차도 독일차를 많이 따라가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고든 바그너가 2008년 39세의 나이로 다임러그룹의 디자인 총괄직을 맡자 자동차 업계는 '파격적인 인사'라며 떠들썩했다. 디터 제체 다임러그룹 회장이 메르세데스 벤츠의 경쟁력을 키워 BMW부터 롤스로이스까지 대응한다는 어려운 임무를 맡긴 인물이 입사 11년된 바그너였기 때문이다. 고든 바그너는 1968년 독일 에센에서 태어났다. 그는 에센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후 영국왕립예술대에서 운송디자인을 전공했다.
바그너 총괄은 제체 회장의 기대에 부응해 디자인에 젊은 감성을 불어넣어 메르세데스 벤츠 고객층을 아버지 세대에서 아들 세대로 끌어내렸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전 차종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그는 "자동차 디자이너는 지구촌 곳곳을 다니면서 디자인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 삶·브랜드에 변화를 주는 게 좋다"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바그너 총괄은 "파워트레인(변속기·엔진)이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디자인은 그렇지 않다"면서 "디자인은 브랜드에 얼마나 잘 맞는지, 얼마나 새롭게 차를 그려 나가고 선이나 균형에 얼마나 솜씨를 내는 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각 모델을 디자인해 벤츠가 선도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며 "우리는 시장보다 3~5년 앞서 일한다"고 설명했다.
그를 롤 모델로 삼는 자동차 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바그너는 "디자인은 9시부터 5시까지 시간을 정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며 "나는 늘 낮이든 밤이든 스케치를 하고, 새벽 3시에도 영감이 떠오르면 일어난다"고 말했다.
바그너는 "하지만 자동차에는 그것을 디자인한 사람이 보이므로, 디자인 하는 사람도 즐기면서 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면서, "무엇보다 감각(taste)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디자인 영감을 어떻게 받느냐는 질문에 "여행을 많이 다닌다"며 "한 모델만 계속 보면 익숙해져서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가 어려워 때로는 무조건 열심히 매달려 있기보다는 잠시 있던 환경에서 떨어져 있다가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