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신형(新型) 제네시스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북미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제네시스는 작년 폴크스바겐의 '골프' 등과 함께 '올해의 차' 최종 후보(3종)에 올랐고 올 들어선 2월 말 현재 미국 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157.1% 증가한 4242대가 판매됐다. BMW 5시리즈(6965대),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6745대)에 이어 미국 프리미엄 중형차 시장 3위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제네시스가 10위 안에 간신히 턱걸이한 점을 감안하면 눈부신 성과다.
이 신형 제네시스의 개발을 총괄한 PM(프로젝트 매니저)은 황정렬(58) 현대자동차 전무다. 1985년 기아차에 입사해 K7, K5, NF 쏘나타 등 현대기아차 그룹의 최근 히트작 개발을 대부분 총괄했다.
18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신형 제네시스의 선전(善戰)은 솔직히 꿈 같은 얘기"라면서도 "이 차는 '기본 성능에 충실하라'는 현대차의 새로운 개발 철학을 담은 최초의 차"라고 말했다.
"2009년 경영진과 열띤 토론 끝에 현대차의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일본차를 벤치마킹하는 데 머물렀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때부터 고객들이 가장 좋다고 느끼는 차를 만들자는 원칙 아래에 일본차는 물론 미국차·유럽차의 장점을 잘 버무려서 현대차의 새로운 맛을 내는 시도를 했어요. 4년간 도전 끝에 나온 게 신형 제네시스입니다."
그는 "작고 튼튼한 일본차가 고유가 시대를 기점으로 미국에서 승승장구했지만 미국차 고유의 승차감, 유럽차의 핸들링 같은 장점은 뛰어넘지 못했다"며 "이 모든 장점을 구현하기 위해 구형 제네시스의 3만여개 부품 모두를 바꿨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차 남양연구소의 인간공학기술팀을 보면, 현대차의 '완전 변신'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인간공학기술팀에는 자동차 회사의 주축 기술진이라고 생각되는 기계공학도는 드물다.
대신 인간공학, 심리학, 건축공학, 전자공학 등 다양한 전공자 30여명이 모여 있다. 이들의 모토는 "고객에게 안전하고 직관적이며 간결하게 제공하자"이다. 예컨대 운전자가 핸들을 잡을 때, 또는 실내에서 각종 버튼을 누를 때 어떻게 하면 가장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건축학도 출신 연구원은 원근법을 강조한 건축양식 이론까지 동원해 운전대 중앙 센터페시아(운전석과 조수석 중간의 대시보드)의 구조를 설계했다.
황 전무는 "결국 운전자가 '뭔지 모르지만 편안하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며 "제네시스만의 터치감을 살리기 위해 1년 동안 전 세계 수백 가지의 스위치를 가져다 놓고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고 말했다.
제네시스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무기는 '안전성'이다. 제네시스는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가 실시한 안전도 평가에서 '전(全) 세부 항목(25~28개) 100점'을 유일하게 받았다. 제네시스가 28개 세부 항목에서 모두 최고점을 받았지만 경쟁차 중 벤츠 E클래스는 2개, BMW 5시리즈는 3개, 렉서스 GS는 1개 항목에서 최고점을 받지 못했다.
황 전무는 "현대제철과 합작으로 초고장력 강판을 만들어 차체 무게를 18kg 이상 줄이면서도 안전성은 더 강화했다"고 말했다.
"차를 만들면서 히트할 것이란 예감은 어떻게 받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그는 "한 가지 기준이 있다. 시험제작(파일럿)하는 단계에서 기술자들이 '이거 괜찮은데요'라고 하면 대부분 성공"이라고 말했다. 최초의 소비자에게서 점수를 따야 한다는 얘기였다.
인터뷰를 마치려 하자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내가 너무 좋은 말만 했나 봅니다. 이제는 유럽 빅3, 미국 빅3, 일본 빅 3가 모두 우리를 견제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도 피가 마르는 시간이 이어질 겁니다" 그는 인터뷰 다음 날 신차발표회를 위해 중국 선전(深圳)으로 향했다.